"맨손으로 무력 막아선 시민" 한강 수상소감, 뜨거움이 북받쳤다 [기고 | 노벨상 수상을 축하하며]

2024-12-10

한강 작가가 노벨 문학상 수상 소감을 처음 발표하며 ‘한국 문학을 가까이하며 함께 자랐고 한국 문학이 내 영감’이라고 말할 때, 오래전 일이 떠올랐다. 독일에 머물면서 문학 행사에 참여하러 다니던 때였다.

젊은 작가였던 나는 책에서나 봤던 선생님들과 함께 행사를 치른다는 들뜸 속에 틈틈이 그분들의 사진을 찍곤 하였다. 지금 기억으로 시인 정 선생님, 소설가 임 선생님, 그리고 한강 씨가 호텔 로비에 서 있던 아침, 얼른 셔터를 누르지 않을 수 없었다. 문학청년 때부터 나에겐 별과 같은 작가들이어서 눈앞의 장면을 남겨두고 싶다는 마음이 컸다. 어느 날 한강 씨에게 단정한 메일이 왔다. 그 사진을 보내주면 좋겠다고. 슬며시 웃음이 났다. 한강 씨도 존경하던 작가들과 찍은 사진을 나처럼 간직하고 싶은 거라고 이해해서. ‘한국 문학’에 대한 한강 씨의 존경의 마음을, 나는 거기서 본 것 같았다.

그 후로도 한강 작가와 여러 차례 해외 문학 행사에서 만났다. 그중 2014년 12월 로마 사피엔차 대학에서 열린 문학 포럼이 가장 생생하게 남았다. 한 이탈리아 작가의 제안으로 즉석에서 노래를 배워 허밍으로 부르는 시간이 생겼다. 언어와 국경을 넘어 모두 한마음이 되자는 의미로. 나를 비롯해 다른 한국 작가들이 쑥스러워하는 사이, 고개 숙이고 앉아 있던 한강 씨가 머뭇거리다가 마이크를 잡곤 천천히 저음의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행사장에 한강 씨 목소리가 고요하게, 파동 하듯 멀리 퍼져가는 것을 나는 듣고 보았다. 그러면서 순간 깨달았다. 지금 한강이라는 한국 작가의 문학적 울림에 포럼장에 모인 많은 청중이 귀 기울이고 숨죽여 듣고 있다는 사실을. 외국에서 경험한 문학 행사 중에서 한국 작가의 어떤 소리에 그토록 집중하고 관심을 보이는 세계인들을 지켜보기는 처음이었고, 그래서인가 노벨 문학상 발표 소식을 듣자마자 그 순간부터 생각났다. 그 배음(背音)처럼 들리던 우리의 언어, 그때부터 한강은 이미 세계적인 작가가 될 준비가 돼 있었을지 모른다.

노벨 문학상 시상식을 앞둔 기자 간담회에서 나도 다른 많은 사람처럼 그의 ‘목소리’를 기다렸다. 이 시대 계엄이 벌어진, 한강 소설의 고통스러운 한 부분이 재현된 것 같은 믿지 못할 날들 속에서. 세계 언론이 주목하는 가운데 한강 작가가 맨손으로 무력을 막아서던 시민들의 행동에서 희망을 보았으며 강압으로 언론을 막는 과거의 상황으로 돌아가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고 말할 때 가슴에서 뜨거운 감정이 북받쳐 올라왔다. 2017년 ‘문학과 사회’ 겨울호에 한강 씨가 발표한 단편소설 ‘작별’을 읽었을 때처럼.

소멸하는 존재를 그려낸 그 아름답고 슬픈 단편에 이런 문장이 나온다. “얼마나 사랑해야 우리가 인간인 건지”. 인간이기에 우리는 질문해야 한다. 이 혼란의 날들 속에서 얼마나 사랑해야 하는지, 얼마나 사람이 인간적이어야만 하는지. 그의 지극한 문학이 그렇게 말하는 듯하다.

한림원 노벨 문학상 수상자 강연에서 한강은 “어쩌면 내 모든 질문의 가장 깊은 겹은 언제나 사랑을 향하고 있었던 것 아닐까

?

”라고 말했다. 스톡홀름에 울려 퍼질 그의 시상식 소감을 앞두고, 작가 지망생 시절에 읽었던 첫 소설집 『여수의 사랑』을 오랜만에 책장에서 꺼내 보았다. 그는 생존하기 위해 사력을 다하는 보통 사람들을 이미 뜨거운 눈으로 바라보고 있으며 그들과 ‘빛’을 따라 걷겠다는 의지를 갖고 있었다. ‘타자’를 살펴보는 일, ‘타자’에 대해 상상하는 일이 작가의 역할이며 그것이 바로 소설의 일이라고 알고 있었다. 이십오 세의 젊은 작가 시절부터.

세계 문학의 궤도 안으로 한강 작가가 한국 문학 최초로 큰 박수를 받으며 당당히 입장한 이 결정적인 순간을 오래 기억하고 싶다. 이것이 마침내 시작한 한국 문학의 세계화를 향한 본격적이고 마땅한 언명(言明)처럼 느껴져서. 또한 한강이라는 아시아 여성작가가 처음 열어젖힌 이 좁은 문으로 그리 멀지 않은 날에 한국 문학이 다시 연이어 호명되기를 기대하게도 된다. 꿈 같았던 일이 이제 가능해진 것이다.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동료 작가로서 독자로서 노벨 문학상 수상을 거듭 축하한다.

Menu

Kollo 를 통해 내 지역 속보, 범죄 뉴스, 비즈니스 뉴스, 스포츠 업데이트 및 한국 헤드라인을 휴대폰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