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성장 좋다? 체감경기 '암울'…한국판 '바이브세션' 우려

2024-10-24

반도체 수출 훈풍·고용률 역대 최대·1%대 물가상승률…

정부가 경기 회복세를 강조할 때마다 언급되는 경제 지표들이다. 한 마디로 한국 경제의 상태는 ‘나쁘지 않다’는 의미다. 하지만 경제 주체들은 표면적으로 나타난 지표와 체감 경기와의 괴리가 크다고 반박한다. 실제 경제 상황과는 별개로 경제 주체가 ‘심리적 불경기’를 느끼는 이른바 한국판 ‘바이브세션(vibecession)’이 가시화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바이브세션은 ‘vibe(분위기 또는 느낌)’와 ‘recession(경기 침체)’의 합성어다. 최근 미국에선 인플레이션이 둔화하고 일자리가 늘어나는 골디락스(너무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이상적인 상황)에도 정작 미국인들의 경제 심리는 살아나지 못하고 있는 점을 꼬집는 말로 사용되고 있다.

한국, 경제지표 양호?…시장 반응과 괴리

문제는 한국도 유사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우선 미국과 마찬가지로 표면적인 지표는 양호하다. 24일 통계청에 따르면 9월 기준 고용률은 1년 전보다 0.1%포인트 증가한 63.3%를 기록했다. 1982년 월간 통계 작성 이래 9월 기준 가장 높다. 같은 기간 실업률은 0.2%포인트 하락한 2.1%로 완전고용 수준에 이르렀다는 평가가 나온다.

고공행진하던 물가는 안정세를 찾았다. 9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1.6%(전년 동월 대비)를 기록하며 2021년 3월(1.9%) 이후 처음으로 1%대로 내려왔다. 한국은행의 물가 안정 목표치(2%대)를 밑도는 수치다. 올해 국내·외 연구기관이 예측한 연간 경제성장률은 2.5% 안팎이다. 정부는 1인당 국민소득 2만 달러 이상 주요 20개국 중 미국과 함께 가장 높은 전망치라고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경제 주체들의 경기 인식은 사뭇 달랐다. 기업경기실사지수(BSI)에 소비자동향지수(CSI)를 반영한 경제심리지수(ESI, 순환변동치)는 2022년 7월(100.1) 이후 100을 넘어본 적이 없다. 경제심리지수는 민간 경제 주체의 경제심리를 보여주는 지수다. 수치가 100 미만이면 과거 평균보다 비관적임을 나타낸다. 올해 들어선 1~10월까지 93을 유지 중이다.

기업 심리는 더욱 얼어붙고 있다. 한국경제인연합회가 매출액 기준 600대 기업을 대상으로 BSI를 조사한 결과 11월 전망치는 91.8로 전월 대비 4.4포인트 하락했다. 지난해 10월(6.3포인트 하락) 이후 13개월 만에 가장 큰 낙폭이다. 그나마 물가 상승세 둔화와 기준금리 인하 영향으로 소비자 심리를 나타내는 CSI는 9월보다 1.7포인트 오른 101.7을 기록했다.

“질적인 부분 하락”…불안 심리 내수부진으로

정규철 한국개발연구원(KDI) 경제전망실장은 “경제 주체의 위축된 심리를 알기 위해선 경제 지표의 세부 내용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예컨대 고용의 경우 8월 기준 전체 임금 근로자 중 비정규직이 차지하는 비중은 38.2%를 기록했다. 2003년 이후 역대 두 번째로 높은 비중이다. 정규직과의 임금 격차는 174만8000원으로 역대 가장 컸다. ‘재정일자리’로 지칭되는 60세 이상의 취업이 늘면서 고용 착시 현상도 나타난다. 고용 구조가 코로나19 사태 이후 바뀐 영향도 있지만, 질적인 부분은 과거보다 나빠졌다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물가는 다소 안정됐으나 소비자들의 부담은 여전히 크다. 임금 상승률이 물가 상승분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어서다. 고용노동부의 사업체 노동력조사에 따르면 올 상반기 물가 수준을 반영한 근로자 1인당 월평균 실질임금은 354만3000원으로 1년 전(355만8000원)과 비교해 0.4%(1만5000원) 감소했다. 최근 배추(53.6%)·무(41.6%)·상추(31.5%)를 중심으로 오르는 채소류 물가(11.5% 상승)는 소비자의 장바구니 체감물가를 크게 높이고 있다.

경제 주체들의 불안한 심리는 결국 ‘내수 부진’으로 드러나고 있다.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의 ‘최근 소매판매 현황과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1~6월) 소매판매액지수(불변지수 기준) 증가율이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2.4% 줄었다. 이 지수의 증가율이 마이너스면 실질 소비량이 이전보다 줄었다는 뜻이다. '카드 대란'으로 내수 소비가 크게 꺾였던 2003년(-2.4%) 이후 가장 낮은 수치다. 통계청의 소매판매액지수(불변) 추이에서도 2022년 2분기에 0.2%(전년 동기 대비) 감소한 이래 9개 분기 연속 감소 중이다. KDI는 또 다른 내수 지표인 건설투자도 고금리·고물가로 부진이 이어지면서 성장률을 끌어내리고 있다고 진단했다.

수출마저 흔들…금리 인하 목소리도

최근 들어선 그나마 경제를 견인하던 수출도 흔들리는 모양새다. 올해 3분기 한국 경제는 전 분기보다 0.1% 성장하는 데 그쳤다. 자동차와 화학제품을 중심으로 수출이 전 분기 대비 0.4% 감소하면서 성장률을 깎아 먹었다.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과 교수는 “과거보다 수출이 한국 경제를 끌어주는 힘이 약해졌다. 정부의 지나치게 낙관적인 경기 전망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하 교수는 “특히 거시적인 경기 지표는 정확하게 현실을 반영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며 “결국 질적인 측면을 들여다봐야 한다.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완화하고 실질 소득을 높이는 등의 질적인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내수 부진을 해소하기 위해 금리를 낮춰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정규철 KDI 실장은 “한 차례 인하됐지만, 여전히 금리가 높다. 물가 상승률이 1%대까지 내려왔기 때문에 지금 금리 인하를 하지 않으면 오히려 저물가로 갈 수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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