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서 동학속으로] (7)부안 백산

2024-07-08

인간의 적은 인간이었다.

인간을 정복대상삼아 침략자 방어자는 영웅으로 추앙되고

뺏은인골 전리품으로 잔혹한 전쟁역사 자랑삼아 기록했다,

인간을 연구대상으로 선구자 추종자로 연결고리를 만들고

사람을 소비대상으로 생산자 소비자로 넥타이를 졸라맸다.

무력깃발 앞세워 무고한 녹두 백성들 절대 인권 짓밟았고

열강 패권에 내몰려 역사전쟁 전사로 목숨을 걸게 하였다.

부자가 빈자 식자가 무식자 강자가 약자를 지배하는 세상

약육강식 동물과 무엇이 다르며 인간의 이성은 무엇인가?

생명을 위협하고 지구의 생태계를 무너뜨리는 환란기에는

지구촌도 생명체이기에 주기적인 지변을 일으키고 있었다.

인간의 욕망이나 무지전란으로 일어나는 인재지변이 있고

화재나 수재, 풍재, 지재에서 발생하는 천재지변이 있다.

인재지변 중 가장 큰 것은 인간끼리 벌이는 전투전란으로

의식주보다 더 많은 경제력으로 대량 학살 무기를 만든다.

자타공히 선진국임을 자처할 만큼 국방력 강화에 몰두하고

자국이익을 위한 무력전쟁으로 광적인 지도자만 양성된다.

공동대응한 팬데믹에 백신도 공유치 못한 제 잘난 인간들

지구촌 전쟁놀이 스포츠 보듯 강 건너 불구경만 할것인가?

천재지변 지재지변 인재지변으로 도움이 절박했던 조선에

인간의 적은 맹수도 외계인도 아닌 바로 우리 인간이었다.

 /백승기 박사

▲백산성에 집결한 장군들(윤재민 (주)RNS 대표, 신지식장학회 청년국장)

1894년 음력 3월 25일(양력 4월 30일) 마침내 때가 되었다. 백산에 동학농민군 8,000여 명이 ‘제폭구민(除暴救民)’과 ‘보국안민(輔國安民)’의 기치를 내걸고 모여들었다.

전봉준 장군이 이끄는 동학농민군 비롯하여, 태인대접주 김개남은 1,300여 명을 이끌고 합류했고 무장대접주 손화중 세력의 3,500여명, 금구대접주 김덕명 등 인근 동학 접주들이 모두 참여했다.

김덕명 장군은 금구 원평을 중심으로 태인과 김제, 익산, 고부 등지에 포교를 많이 하여 당시 동학의 교세가 가장 강하고 동학교도의 수가 가장 많았다. 해월 최시형 선생과 사제지간으로서 동학사상을 실천하는데 가장 모범을 보였다.

김개남 장군은 키는 작지만 총명하고 용맹하여 동학농민군 중 관군이 가장 두려워하는 인물이었다. 후일 체포되었을 때 전라감사 이도재는 그의 명성과 두려움에 한양까지 압송하지 않고 즉결 처형시켰다. 백성들이 끌려가는 김개남 장군을 보며 ‘개남아 개남아 김개남아. 수많은 군사 어디다 두고 짚둥우리에 묶여 가다니 그게 웬 말이냐’ 라고 노래를 부르며 한탄하였다. 죽은 이후에도 그의 수급(首級)은 한성부로 이송, 12월 25일 서소문 밖에서 3일간 내걸렸다가 이후 남부 각 지방에 조리돌렸다고 하니 그 두려움이 얼마나 컸는지 알 수 있다.

손화중 장군은 선운사 마애불에서 비기를 꺼냈다는 소문을 통하여 새로운 세상이 도래함을 널리 믿게 하였다. 손화중 장군은 김개남장군과 함께 총관령을 맡아 무장, 고창 지역, 장성, 광주 인근의 농민군을 통솔하였으며 동학농민군 지도자 중 비교적 온건한 성향으로 알려져 있다.

백산에 모인 동학농민혁명군은 음력 4월 7일 관군 천여명과 싸워 황토현 전투에서 승리하고 전주성을 점령한다. 이후 조정과 전주화약을 맷고 집강소를 설치하여 치안과 행정 담당하여 참여 자치를 통해 폐정개혁을 추진하는 성과를 거둔다.

다시금 백산에 모였던 동학농민군과 장군들의 의기가 충만해지고 함성이 힘차게 울려 제2의 전주화약과 같은 자치행정권이 실현되어 전북특별자치도의 특별한 성과가 이루어지기를 바란다.

 ▲백산성의 역사적 의미 <신동만 한국나그네연맹 회장> 부안 백산성(扶安 白山城)이 역사 전면에 부상한 것은 크게 두 번 있었다.

첫 번째는 백제부흥운동 시기인 663년이다. 660년 웅진성주 예식진의 반역으로 백제 31대 의자왕이 당군에 받혀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비도성과 웅진성을 제외한 나머지 200여 성은 온전했으며 백제 부흥운동이 불같이 일어났다. 그리고 일본에 있는 왕자 부여풍을 모셔와 32대 풍왕(豊王)으로 옹립하였다.

663년 8월, 풍왕이 백제부흥을 지원할 왜의 구원병 중 선발대를 맞이한 곳이 바로 백산성이다. 그때의 지형은 지금과 상당히 달랐다. 성의 동쪽 바로 아랫마을이 항구 회포다. 여기서부터 백강(동진강) 상류로 15리 이상 바닷물이 들어오는 기수지역이었고 상류로 수십 리까지 배가 드나드는 수로였다.

두 번째는 동학혁명 시기다. 전봉준 장군은 고부봉기 이후 농민군을 해산하고 일부 병력만 이끌고 백산성에 주둔하여 사태를 관망하다 무장으로 이동하여 기포(起包)하였다. 1894년 3월, 동학농민군 8,000여 명을 이끌고 다시 백산성에 진주하여 조직을 완비하였다. 백산성은 전봉준 장군이 총대장 되어 동학농민군을 이끌고 전주감영을 점령하고 집강소를 설치했던 혁명의 출발지였다.

 ▲서면 백산이오, 앉으면 죽산이라 <김주원 (주)뱅기노자 대표, 교사> 호남평야 가운데 낮은 산, 백산의 높은 존재감! 어학사전에 ‘중국 말갈의 한 부족’, 개마고원에 있는 두 개의 산, 백두산을 한때나마 백산이라 부른적이 있었다. 부안군 백산면 용계리, 동진강 연안에 있는 백산은 산 전체가 흰색 바위로 덮여 있어 붙은 이름으로 해발 47.4m다. 이곳에는 삼국시대 축조된 것으로 추정하는 백산성이 있으며, 1894년 동학군의 지휘소인 호남창의대장소가 설치된 곳이다. 백산에 모인 군중은 지휘부를 비롯한 혁명군을 조직하고, 봉기의 대의와 지향하는 바를 밝힌 ‘백산 격문’, ‘사대 명의’, ‘12개조 군율’을 선포한다. 용감무쌍한 말갈의 부족, 개마고원의 산, 백두산 등과 연관지어 생각해보면 부안의 백산은 작은 산이나 그 쓰임이 매우 당당함을 느끼게 된다.

‘서면 백산, 앉으면 죽산’이라는 유명한 말이 있는데 본래 벽골제 논두렁에 서서 보면 백산까지, 앉아서 보면 죽산까지 보인다하여 호남평야의 드넓음을 표현한 것이다. 동학 당시 동학군의 무기는 변변한 것 없이 대부분 죽창을 들었고 흰옷을 입었으므로 수많은 사람이 모여들어 봉기의 기치를 올릴 때는 하안 산을 이룬 듯하고, 앉아 휴식을 취하면 죽창이 산을 이룬 듯하여 “서면 백산, 앉으면 죽산이다”라 하였다.

▲싸우지 말고 놀아야 한다! <고개희 전사들 사무총장, 교보생명 신논현지점장> 노는 데 피곤한 게 어디 있냐며 지치도록 놀고 있노라면 얘들아! 싸우지 말고 놀아라! 어른들이 말씀하셨다.

놀이를 통해서 사고력도 생활습관도 이어지기 때문이다.

놀이중 이기고 지는 게 없는 가위바위보는 세계의 공통놀이이고 시작과 끝이 하나로 만나는 윷놀이는 무시무종(無時無終)의 고유문화다.

세상이 교실이고 놀이터고 싸움터라 하였다.

박물관에 전시된 문화유산들도 그때는 그들의 생활이요 그들의 문화며 그들의 놀이터였다.

싸우지 말고 평화로이 놀아야 한다. 왜 전쟁놀이를 하는가?

싸우면서 크는 게 아니라 전리품 때문에 역사기 멍들고 있다.

싸우지 말고 평화를 유지하려면 제발 놀이터는 빼앗지 말아야 한다.

▲오호애재(嗚呼哀哉)라<이주원 디자인 원 대표> 

백두산(白頭山 2,744m)은 한반도에서 가장 높은 산이며, 만약 백두산이 서울 한복판에 있었다면 산체는 경기도 전체를 덮고도 남을 것이라 한다. 그에 비하여 부안 백산성은 어떠한 모습이었을까. 해발 47m에 불과한 이곳에서 호남창의대장소(湖南倡義大將所) 명의로 격문을 발표하고 동학농민혁명군 1만 명이 모여 그 모습을 이루었으니 이는 백두산에 비하여 높이와 넓이의 차이는 있으나 부안 백산성의 기상은 백두산 이상의 모습이었을 것이다.

나는 부안 백산성에서 배들평야와 만경평야를 내려다보며 당시의 모습들을 그려본다.

성난 민심은 죽산(竹山)으로 이루어져 모든것을 집어삼키듯이 호령하는 모습에서 어느 순간 하나둘씩 스러져 간다. 하나둘씩 사라져 간다. 오호애재(嗚呼哀哉)라.

 <기획취재팀>

▲취재기자단

△이방희 제2사회부장(부국장/팀장)

△방선동 기자(제2사회부/부안)

▲자문위원

△백승기 도시공학박사, ‘무릉도원 상상캠프’슈퍼바이저

△박창보 글로벌사이버대 선도문화학과 특임교수

△김주원 (주)뱅기노자 대표, 교사

△고혜선 안중근장군 전주기념관장

△고개희 전사들 사무총장, 교보생명 신논현지점장

△신동만 한국나그네연맹 회장

△윤재민 (주)RNS 대표, 신지식장학회 청년국장

△김세용 전사들 산악대장

△이주원 디자인 원 대표

 부안=방선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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