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어디에서 부는지

2024-09-30

우버 차량은 펜실베이니아 대학 캠퍼스를 향해 달리고 있었다. 전날(9월 10일) 미국 대선 TV 토론 취재 현장에서 직접 들은 해리스의 말 한마디 때문에 잡아탄 우버였다. “와튼 스쿨에서도 트럼프의 경제 정책이 재정 적자를 폭발적으로 증가시킬 거라고 지적했고….” 트럼프가 펜실베이니아대 경영대 와튼 스쿨 출신임을 상기시키면서 비꼰 말. 도대체 어떤 곳이기에.

우버는 필라델피아 도로를 미끄러지듯 달리는 중이었고, 나는 예순쯤 돼 보이는 백인 운전사에게 어색한 말투로 질문을 던졌다. “해리스가 이겼단 평가가 많던데 어제 토론은 어땠어요?” “글쎄요, 보다 말다 해서….” “트럼프가 워낙 거짓말을 많이 하던데요.” 우버 기사는 더는 말을 섞고 싶지 않다는 듯 창문을 내리더니 내 쪽으로 얼굴을 돌렸다. “도대체 뭐가 거짓말이란 거죠?”

그 운전사는 모른 체했거나 부정하고 싶었겠지만, 트럼프는 토론 내내 사실이 아니거나 확인할 수 있는 이야기를 아무렇지 않게 늘어놨다. 예컨대 그는 ‘오하이오 주 스프링필드에선 이민자들이 개와 고양이를 먹는다’는 거짓말을 수천만 명이 지켜보는 생방송 도중에 공공연히 꺼냈다. ‘(민주당 지지 성향 일부 주에선) 출산 후 낙태가 이뤄진다’는 거짓말은 또 어떤가. 공적 무대인 TV 토론에서 태연하게 거짓말을 늘어놓는 공직자 후보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질문은 꼬리를 물었지만, 트럼프를 향한 맹신을 감추지 않는 그에게 차마 더 물어볼 순 없었다.

한 달 남짓 남은 미국 대선은 이성적 판단이 아닌 맹목적 믿음의 대결로 변질되는 것 같다. 거짓말이 중요한 게 아니라 거짓말일지라도 기꺼이 믿으려는 유권자들이 결집해 ‘트럼프 바람’을 다시 일으키는 중이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해리스 쪽에도 이 같은 맹신의 바람은 분명히 있다. 역사상 최악의 양극화 선거가 될 것이란 암울한 전망이 점차 현실로 굳어져 가는 모양새다.

세계 최고 경영대라는 와튼 스쿨은 진리를 탐구하는 젊음으로 찬란했다. 저 나이 무렵 이곳에서 공부했다는 트럼프도 지금과는 다른 모습으로 진리를 좇았을까. 진리나 진실과 무관한 지점에서 거짓말이 쏟아져도 초박빙 판세가 미동조차 하지 않는 희한한 대선이다. 역사상 가장 예측하기 어려운 대선이라는 미국 언론들의 분석이 호들갑만은 아닌 것이다. 가을의 초입이었지만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엔 더운 바람이 불었다. 어디에서 오는지,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는 바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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