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은 ‘민란’이 먼저였어야 했다

2024-12-26

그의 숨은 사실상 멎었다. CPR(심폐소생술)로 되살릴 만한 상태를 넘었다. 워낙 죄가 명명백백해서다. 한 법조인은 윤석열 대통령의 12·3 내란 사태를 두고 촌철살인 같은 비유를 날렸다. “CCTV 앞에서 ‘공연음란죄’를 범한 거랑 마찬가지다.”

윤 대통령이든, 헌법재판관이든 막판에 구차한 변명만 늘어놓고, 몽니를 부린들 결말을 되돌릴 순 없다. 만에 하나라도 뒤집힌다면, 들불이 헌법재판소 철문을 달궈 녹여낼 것이다. ‘87년 체제’의 산물인 헌재의 존재 가치까지 따져들 수밖에 없다. 역사는 본디 물결대로 흘러가게 내버려둬라, 제발!

이번 사태는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을 되뇌게 한다. 곧 “지도자가 조롱과 경멸의 대상이 될 때 위험하다”고 했다. 윤 대통령이 딱 그 짝이다. 나라님이 비판의 대상이 아닌, 조롱거리로 전락한 순간 정치생명은 끝이다.

박근혜는 왜 탄핵이 됐을까 의아해하는 이들이 요사이 많다. 실은 최순실씨 때문만이 아니다. 지난달 뒤늦게나마 진도 팽목항에 다녀왔다. 힘없이 날리는 빛바랜 노란 리본들을 둘러보며 새삼 권력의 본질을 돌아봤다. 시민 생명과 재산을 지켜주지 못하는 지도자는 저잣거리로 끌어내려 마땅하다. 향후 우리 헌법에도 독일 기본법(제2조)처럼 ‘생명권’까지 명문화해야 할 것이다.

단지 12월3일 ‘서울의 밤’ 때문에 시민들이 윤 대통령 축출을 요구하는 게 아니다. 또한 나라님이 술 먹고 늦잠 자 지각하든, 혹 알코올성 치매로 전두엽이 망가져 충동조절을 못하든, 하필 ‘그날’ 성형외과에 갔든 무슨 대수인가. 백성들 삶에 걱정만 안 끼친다면야, 그따위 것들은 애교 아닌가.

무엇보다 경제가 엉망진창이다. 채소, 과일 가격이 폭등하더니, 동네 가게들은 문 닫기 일쑤다. 내려오던 집값은 들쑤셔 놓았다. 이러다 중남미 꼴 나는 게 아니냐는 걱정들이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윤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초저성장과 양극화 등 경제문제를 들고는 “이를 해결할 정치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한다”고 했다. 어처구니없는 자가당착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정권의 흥망성쇠를 가름한 열쇠는 밥그릇이다. ‘이밥에 고깃국’을 약속하던 북녘 체제가 영속할 수 있을까. 그나마 박정희 소장이 평가받은 건 ‘쌀밥’ 덕이지만, 1979년 그날의 경제가 나락으로 가고 있었다.

지금 금융지표가 2008년 금융위기 수준이다. 환율이 15년 만에 최고인 달러당 1466원을 넘었고, 주가는 16년 만에 처음 6개월 내리 하락했다. 그 후폭풍은 수입자재 가격 상승에 따른 서민 피해로 이어진다. 계란 한 판에 7000원을 넘나든다. 소비자심리지수(CCSI)는 코로나19 이래 최대로 곤두박질쳤다. 고물가·고금리·고환율의 3중고다. 이런 와중에 대통령이 시민들 상대로 선전포고를 한 격이다. 이 정도면 ‘제폭구민, 척양척왜!’를 내건 민란이 먼저 일어났어도 이상치 않다.

이제 내란 주동자와 동조 일당의 귀에 마키아벨리의 조언을 새겨줘야 한다. “…아주 짓밟아 뭉개버려야 한다. 왜냐면 사소한 피해에는 보복하려 들지만 엄청난 피해에는 감히 복수할 엄두조차 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 뿌리가 민정당이든, 신한국당이든 이번 기회에 ‘부관참시’라도 하는 게 이 땅의 민주주의와 경제를 반석에 올리는 첫걸음이다.

이런 맥락에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먹사니즘’은 시의적절한 구호다. 사실 먹사니즘이 별거냐. 예컨대, ‘전국집에누워있기연합’이 이 엄동설한에 분연히 떨쳐나와 “제발 그냥 누워 있게 해줘라, 우리가 일어나야겠냐”라고 하지 않게 하는 거다.

다만 틈틈이 엿보이는 먹사니즘의 단면들에 걱정도 앞선다. 종합부동산세 후퇴, 금융투자소득세 폐지, 가상자산 과세 유예 같은 것들이다. 이런 걸로 서민들 주머니까지 두둑하게 해준다면야 굳이 마다할 건 없다. 현실 정치는 교조에 빠져선 안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편 증세’ 같은 얘기는 쏙 빼놓다니 참 걱정스럽다. 그저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식이라면 그의 먹사니즘은 단지 집권 자체가 목표인 통속 삼류소설로 전락할 수 있다.

괴물과 맞서다 ‘또 다른 괴물’이 되진 말자. 극작가 베르톨트 브레히트는 “파시즘이 남긴 최악의 유산은 파시즘과 싸운 자들의 내면에 파시즘을 남기고 떠난 것”이라 꼬집었다. 2016년 촛불혁명 때처럼 쉽게 권력을 쥐여줘선 안 된다. 주권자들은 누구에게 나라를 맡겨도 될지 눈을 더 부릅떠야 할 때다.

제 무덤 파고드는 패잔 반란병들의 “일시적 소란”은 느긋하게 보고 즐기면 그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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