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들에게 배우는 야생의 지혜

2024-10-07

외딴 시골살이를 하면서 사람 이외의 존재들과 특별한 관계를 맺는 일이 없다면 하루하루가 무료하고 따분할 것이다. 새들 우짖는 소리에 잠이 깨어 하루를 시작하고, 텃새와 철새들이 날아들어 별서 숲에 생기를 불어넣어 주기 때문에 삶의 경이와 감흥이 살아 있는 나날을 영위할 수 있다.

며칠 전만 해도 그랬다. 유통기간이 지난 견과류가 있어 새들 먹이로 주려고 작은 절구에 빻고 있는데, 안채에 있던 그녀가 창문을 열고 호출했다. “어서 좀 와봐요. 푸르고 넓은 하늘을 놔두고, 왜 하필 새가 화목난로 연통을 타고 들어왔는지 모르겠네요.”

나는 절구질하던 손길을 멈추고 서둘러 안채 거실로 들어갔다. 거실 뒤쪽 벽 가까이 놓인 화목난로 옆에 서 있던 그녀는 손으로 사고뭉치가 있는 쪽을 가리켰다. 방화유리를 통해 난로 안을 들여다보니, 어떤 새인지는 알 수 없었으나 뭔가 퍼드득거리고 있었다. 겨울이 아니면 사용하지 않는 화목난로. 우선 나는 녀석을 내보낼 요량으로 난로 문을 쓱 열어주었다. 숯검정을 잔뜩 뒤집어쓴 꼬맹이가 날아 나왔다.

숲속 집에 생기 불어넣는 새들

멀리서 바라보면 그걸로 족해

그들만의 삶의 방식 존중해야

“참새네요. 호기심도 많지. 어쩔려구 연통 속으로 들어오누? 불 안 피우는 시절이게 망정이지….”

난로에서 나온 참새는 거실 공간을 날아다니다 열려 있던 마루 문으로 쑥 들어가 마루 공간을 헤집고 다녔다. 난 빨리 참새를 내보낼 요량으로 빗자루를 들고 따라갔는데, 참새는 서까래와 서까래 사이를 날아다니다가 대들보 위로 사뿐 올라가 앉았다. 천정이 어두컴컴해 플래시로 비춰보니 참새는 납작 엎드려 있었다. 마루 문을 열어놓고 계속 빗자루를 휘둘러 녀석을 쫓아내려 했으나 요리조리 꼰작대며 나갈 기미가 없었다.

참새 내보낼 방도를 찾지 못한 우리는 마침 외출할 일도 있어 마루 문을 열어놓은 채 집을 나섰다. 한 시간쯤 후에 돌아와 보니, 참새는 어디로 사라졌는지 종적이 묘연했다. 마루 구석구석을 샅샅이 둘러본 그녀가 중얼거렸다.

“그래, 참새야. 우린 서로 간 곳을 모르는 것도 나쁘지 않아. 되도록 서로 멀리 떨어져, 따스한 눈빛을 교환할 수 있으면, 그걸로 족해!”

나는 그녀가 하는 말에 전적으로 공감해 고개를 끄덕였다. 이것은 야생의 존재들과 살며 나름 터득한 지혜. 야생의 DNA가 온전히 살아 있는 참새를 비롯한 새들과는 함께 살 수가 없다. 사람에겐 안락한 공간이라도 야생의 새들을 그 공간에 가두면 그들에겐 무덤이 될 수도 있으니까.

새들의 삶의 방식을 연구한 생물학자 제니퍼 애커먼은 말했다. “포유류에게는 포유류의 방식이, 새에게는 새의 방식이 있다”(『새들의 방식』). 물론 새들의 삶의 방식은 저마다 다르다. 새들은 그 모습과 생활방식이 천태만상인데, 우리 집 정원으로 날아드는 새들의 삶의 양태도 그러했다.

지난 봄날엔 딱새 때문에 한바탕 소동이 있었다. 우리 집 한옥 처마 밑엔 제비 둥지가 여러 채. 제비들은 옛 둥지에 들지 않고 거의 늘 새로운 둥지를 튼다. 그런데 어쩐 일로 딱새 부부가 제비 둥지에 날아들어 신방을 차렸고 곧 알을 낳고 새끼를 깠다. 네 마리였다. 날개가 자라 날기 시작한 후, 무슨 까닭인지 알 수 없었으나 딱새 새끼 두 마리가 바닥에 떨어져 죽어 있었다.

며칠 후 저물녘, 마당귀에 있는 수돗가에 딱새 새끼 한 마리가 물을 먹으러 나왔다가 돌아가지 못하고 수로에 빠져 있었다. 나는 녀석을 살리려고 사다리를 놓고 물에서 건진 새끼를 둥지에 넣어주었다. 제비 새끼를 그렇게 살린 일이 있었기 때문. 하지만 아침에 일어나서 보니 딱새 새끼 두 마리가 둥지 아래 바닥에 떨어져 죽어 있었다. 난 죽은 딱새 두 마리를 꾸지뽕나무 밑에 파묻어주며 자책했다. 사람 손길을 타지 않은 야생을 내 측은지심이 죽게 만들었다고!

하여간 이런 새들을 통해 나는 야생 수업을 하는 셈. 사람과 공존하는 지구 위 생명들의 생태를 익히는 수업은 어쩌면 내 삶이 끝나는 날까지 해야 할지도 모른다. 인간 중심의 생활방식이 내 몸에도 배어 있기 때문이다. 생물다양성을 자연의 거대한 보물창고로 비유한 생물학자가 있는데, 우리가 지금까지 지구에서 발견한 생물들은 아주 사소한 것에 불과하다고 한다. 인간이 발견하지 못한 생물들이 훨씬 더 많으리라는 것. 그렇다면 우리는 지구 생명들의 다양성에 대한 존경과 경외하는 마음을 항상 갈무리하고 살아야 하리라.

고진하 목사·시인

Menu

Kollo 를 통해 내 지역 속보, 범죄 뉴스, 비즈니스 뉴스, 스포츠 업데이트 및 한국 헤드라인을 휴대폰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