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민숙의 시가 꽃피는 아침] (213) 강계순 시인의 ‘선운사 꽃무릇’

2024-10-05

‘선운사 꽃무릇’

- 강계순 시인

전신의 힘 쏟아 지어올린

작고 섬세한 선홍의 집들, 꽃무릇은

야윈 몸 흔들리는 키로

농익은 슬픔 천지에 듬뿍듬뿍 뿌리면서

닿을 수 없는 땅의 아득함 눌변의 그리움을

떨면서 바람에게 고백하고 있었다.

육자배기 같은 목쉰 바람 한 자락

어디선가 아득히 묻어와서 흐르는

환하게 밝은 선운사 골짜기

몇 백 년 묵은 뒤뜰 늙은 동백나무도

꽃무릇 깊은 그리움에 덩달아 병이 들어

드문드문 피어나고 시름시름 떨어지면서

아프고 허망한 사랑의 뒷모습

묵언으로 시늉하고 있었다.

<해설>

세상에 꽃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꽃은 계절마다 피어나 늘 우리의 눈과 마음을 즐겁게 해줍니다. 꽃무릇은 봄, 여름 다 보내고 초가을에 피는 꽃입니다. 이 꽃의 꽃말은 참사람, 다시 만날 날을 기다림, 환생, 이런 의미부터 시작해 죽음까지 다양한 꽃말을 지니고 있습니다. 꽃무릇은 꽃이 먼저 피고 입은 나중에 나오고, 상사화는 반대로 잎이 먼저 나오고 꽃은 여름에 피지만 이 둘다 수선화과에 속한다고 합니다.

요즘은 어느 절에서나 쉽게 꽃무릇을 볼 수 있지요. 속세를 떠나 산사에서 수행하는 스님들의 그리움을 달래 주기 위해서인지 절마다 무더기로 피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시인은 꽃무릇이 유명한 선운사에서 꽃무릇을 보고 꽃대 위에 하늘하늘 지어 올린 선홍 빛집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습니다. “농익은 슬픔 천지에 듬뿍듬뿍 뿌리면서 / 닿을 수 없는 땅의 아득함 눌변의 그리움을 / 떨면서 바람에게 고백하고 있었다. ”

그 선홍의 집은 다름 아닌, 농익은 슬픔이며 아득히 닿지 못한 그리움입니다. “몇백 년 묵은 뒤뜰 늙은 동백나무도 / 꽃무릇 깊은 그리움에 덩달아 병이 들어 / 드문드문 피어나고 시름시름 떨어지면서 / 아프고 허망한 사랑의 뒷모습 / 묵언으로 시늉하고 있었다. ”

뒤뜰의 늙은 동백나무도 꽃무릇처럼 그리움에 병이 들었는지 드문드문 꽃을 피우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시인은 사랑의 허망함을 읽어 내 동백을 꽃무릇과 잘 대비해 놓았습니다.

시월의 가을날, 선운사의 꽃무릇이 방석처럼 쫙 펼쳐져 있는 풍경이 아련하게 떠올라 다시 가보고 싶은 마음입니다.

강민숙 <시인, 문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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