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성덕 시인의 '풍경']선운사 상사화

2024-10-04

선운사 골짜기로 상사화 만나러 갔습니다. 사람들 몇 출입을 막은 줄을 넘어가 가는 꽃을 붙들고 있었습니다. 찰칵찰칵, 아직 마음 붉다며 화양연화를 증명하려는 듯했습니다. 다짐하듯 관리사무소에 확인까지 했건만, 아뿔싸 작년처럼 꽃은 거반 돌아가고 꽃대마저 뭇발길에 부러진 게 태반이었습니다. 꽃과 잎만 영원히 못 만나는 줄 알았건만 나와 상사화도 영 연이 닿지 않는 모양입니다.

선운사 골짜기로 미당(未堂)이 동백꽃을 보러 갔다지요. 채 피지 않은 꽃만 보았다지요. 한때 마음을 주었을까요? “막걸릿집 여자의 육자배기 가락에/작년 것만” 생각다 말았다지요. 급한 마음에 그만 꽃을 못 본 거지요. 미당은 조급했고 나는 늦었습니다. 세상 누구라도 딱딱 맞아떨어지는 정박(正拍)을 꿈꾸지만, 꼬이고 어긋나는 엇박자인 게 인생인 듯싶습니다. 동백이 미당을 만나주지 않은 것은, 상사화가 나를 기다려 주지 않은 것은 더 간절하고 더욱 안타까워야 꽃이 피고 절정이라는 은유인 듯만 합니다. 발밑 돌멩이 주워 누군가 쌓은 돌탑 위에 한 층 올렸습니다. 미당의 시구 속 막걸릿집 아낙의 육자배기 가락이나 웅얼거리며 돌아오는 길이 멀고 멀었습니다. 못 만난 이름인 듯 멀리서 별만 깜박거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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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운사 #안성덕 #상사화

기고 gigo@jj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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