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6월 초 유럽에서 혜성처럼 등장한 인디 사이키델릭 록밴드인 ‘벨벳 선다운’은 스포티파이에서 단기간에 80만~90만명의 청취자를 끌어모았다. 결성한 지 두 달도 되지 않았지만 이미 두 장의 앨범을 발매했으며, 오는 14일에는 “영화적인 얼터너티브 팝과 몽환적인 아날로그 소울”이 담긴 세 번째 앨범이 나온다.
보컬인 게이브 패로, 기타리스트인 레니 웨스트, 베이시스트인 마일로 레인스, 드러머인 오리온 리오 델 마 등 4명의 멤버들은 이 갑작스러운 인기 상승에 아마도 지금 얼떨떨한 기분일 것이다. 만약 이들이 인간의 감정을 느낄 수 있는 존재였다면 말이다.
이들이 6월5일 발표한 데뷔곡 ‘플로팅 온 에코스’는 “어디선가 들어본 듯한 편안한 선율과 목소리”라는 반응을 얻으며 영국, 스웨덴, 노르웨이 스트리밍 순위에서 빠르게 1위에 올랐다.
그러나 밴드에 대한 호기심으로 자세한 정보 검색에 나선 온라인 커뮤니티 이용자들은 뭔가 이상함을 느끼기 시작했다. 멤버들의 공연 이력이나 언론 인터뷰 등을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밴드는 의혹을 불식시키려는 듯 6월 말 인스타그램 계정을 개설하고 멤버들의 사진을 공개했지만 오히려 논란은 증폭됐다. 사진에서 기타를 잡은 손가락이 실제 사람 손가락 모양과 다르다거나 마이크 줄이 소맷자락으로 연결돼 있다는 등의 의혹만 커졌다.

벨벳 선다운 공식 엑스 계정은 “소위 ‘기자’들이 아무 증거도 없이 벨벳 선다운을 ‘인공지능(AI)가 생성한 것’이라는 게으른 주장을 퍼뜨리고 있다”고 반박에 나섰다. 그러면서 “이건 농담이 아니다. 우리는 캘리포니아의 비좁은 방갈로에서 진짜 악기, 진짜 마음, 진짜 영혼으로 땀 흘리며 음악을 썼다”며 “모든 코드, 모든 가사, 모든 실수는 인간적”이라고 주장했다.
이 모든 논란이 진행되는 동안 벨벳 선다운의 노래를 유통한 스포티파이는 침묵을 지켰다. 그러나 스포티파이의 경쟁 스트리밍 업체인 ‘디저’는 “이 밴드의 두 번째 앨범은 100% AI로 생성된 것”이라며 “우리는 AI가 100% 생성한 콘텐츠는 허용치 않겠다”고 선언했다.
결국 7월 5일 벨벳 선다운의 엑스 계정은 이 밴드가 실존 인물이 아닌 AI라고 실토했다. 입장문에는 “모든 캐릭터, 서사, 음악, 목소리, 가사는 AI 지원으로 만들어진 원조 창조물”이라면서 “인간도 기계도 아니고, 우리는 그사이 어디쯤 산다”고 적혀있다.
음악 전문매체 롤링스톤스는 스포티파이에서 벨벳 선다운의 노래가 인기를 끈 이유는 스트리밍 플레이리스트가 인간의 선택이 아닌, 알고리즘이 주도하는 형태로 점차 전환하고 있기 때문일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다만 이런 소동에도 “청취자들은 이들의 음악을 즐기는 데 아무 문제가 없는 듯하다”고 텔레그래프는 9일(현지시간) 전했다. 심지어 이 밴드는 예정대로 오는 14일 차기 곡 발표를 예고했다. 지난 2일 밴드의 계정에는 “그들은 우리에게 진짜가 아니라고 한다. 아마 너희도 진짜는 아닐 것”이라는 도발적인 홍보 문구가 올라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