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운, 시인·수필가

“형님, 여기 좀 보세요.”
함께 오름 산행을 하던 한 선생님이 자신의 가족 단톡방을 보여준다. 예쁘고 앙증맞은 꽃 사진 밑에 “우리 각시가 더 고와!”라는 문구가 적혀있다. 아들과 딸이 보낸 댓글도 보인다. “우리 아빠 최고!”, “당연해요!” 등이다. 그런데 그 분의 각시는 말이 없다.
한 선생님은 오름 산행을 하면서 여기저기 금방 꽃망울을 터트린 난방초의 꽃들을 열심히 찍고 있었다. 바람꽃, 노루귀, 현호색, 제비꽃, 깽깽이풀, 얼레지, 할미꽃들이다. 그리고 그는 바위 사이에 고개를 내민 제비꽃을 단톡방에 올리고, 그 밑에 ‘각시가 더 고와!’하고 붙임 글을 써넣었다.
가족들의 가슴이 얼마나 따뜻해졌을 것인지 짐작되었다. 침묵으로 응답한 그의 각시 님은 아마 이런 신랑의 마음을 가슴 깊이 오래 간직하고 싶어, 대답을 미루고 있었을 것이다. “한선생, 정말 대단하다! 어떻게 이런 문구와 생각을 해냈지?” 그의 뛰어난 감성과 위트를 칭찬하며 한몫 거들었다. 아마 평소의 생활 모습과 생각이 자연스레 드러났을 것이다. 그도 흐뭇한 듯 허공을 향해 허허로운 미소를 지어 보낸다.
정상에 이르자 그는 주변 경관을 설명하기 시작한다. 원뿔 모양으로 손에 잡힐듯한 오름의 여왕 다랑쉬, 뒤에 보이는 은월봉, 오른쪽 대수산봉, 성산일출봉, 식산봉, 말미오름, 지미봉 등, 가히 오름의 군락지라 강조한다.
오름을 한바퀴 돌고 둘레길을 따라 내려온다. 이중 분화구 옆을 지나다 길가에 앙증맞게 올라온 고사리를 두어 개 꺽어들고 분화구가 폭발할 듯 큰 소리로 노래하기 시작한다. 구성지며 애환이 서려 있다. 제주도가 낳은 아버지 사랑이 지극한 양지은의 ‘떠나는 님아’라는 트롯이다. ‘가려거든 울지 말아요, 울려거든 가지 말아요. 그리워 못 보내는 님, 못 잊어 못 보내는 님. 당신이 떠나고 나면 미움이 그치겠지만, 당신을 보내고 나면 사랑도 끝이 난다오.’
녹음한 것을 다시 들려주면서 부인에 대한 이야기를 계속한다. 오래전 수목원을 거닐면서 크고 예쁜 낙엽을 주웠다. 낙엽에 “당신과의 만남은 나에게 가장 큰 행운이며 행복입니다!”라고 써 주었다. 지금도 화장대 밑에 놓고 늘 보고 있다고 자랑한다.
한 선생은 제주의 모든 것을 무척이나 사랑하는 친구다. 제주의 자연환경은 물론이요, 제주 역사에 대한 조예가 깊다. 또 제주의 여러 길과 유적들을 살피며, 하나하나에 애정을 쏟고 쉬임없이 관찰하고 알리는 일을 한다.
특히 그는 성산일출봉을 무척 사랑한다. 그가 보내온 사진에는 성산에서 바라본 일출은 물론이거니와 한라산 정상으로 지는 장엄한 일몰 모습이 많다. 그는 새벽 네댓 시에, 때론 저녁 아홉 열 시에도 성산의 광치기 해변, 너럭바위로 출사한다. 사실 제주의 절경 중의 절경은 광치기 해변에서 바라본 성산일출봉이다. 접근성, 바다 위에 떠오르는 고성의 매력, 시간과 계절에 따라 변화무상한 경치를 감상하기엔 광치기 해변에 비할 곳이 그리 많지 않다. 성산일출봉의 동쪽 해변을 따라 나 있는 이 해변은 일출봉에서 섭지코지로 이어지는 해변으로 넓은 용암대지, 해초가 뒤덮인 평면 바위 군락으로 가장 넓은 곳은 아이들이 축구 경기를 했을 정도로 끝없이 길고 평탄하다. 이 바위 군락이 너럭바위다. 원래 ‘광치기’는 제주어로 ‘넓은 빌레(너럭바위) 밭’의 뜻을 가지고 있다. 드넓게 펼쳐진 암반들의 모습이 마치 광야와 같다고 해서 ‘광치기’라는 이름이 붙여졌다는 설이 있다. 그는 유튜브 방송에 수많은 제주의 이야기거리를 생생히 담아 전하고 있기도 하다.
한라산 정상을 백번 이상 오르기도 했고, 모든 오름을 섭렵하여 오름에 대한 일가견을 형성하였으며, 둘레길, 올레길을 모두 파악했고, 제주의 역사도 종횡으로 꿰뚫고 있기도 하다. 그는 진정한 제주인이고 탐라인이다. 그래도 원래는 소박한 가장으로 부인 사랑이 지극한 자연인이기도 하다. 언젠가 부인이 지극 정성으로 싸준 도시락을 함께 하면서, 내게도 한 점 건내준 ‘도새기 아강발(돼지족발 발목 아랫부분)’이 지금도 입가에 많은 침을 고이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