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선헌의 시와 그림] 산책 4계: 가을

2024-11-14

대전 미소가있는치과Ⓡ 송선헌 대표원장

가을은 여름에서부터 잉태되었고 떨어짐(Fall)을 예견하기 시작한다.

바빴던 공간들이 한산해진다.

성깔 빠른 잎들은 벌써 헌신에 힘쓰고, 준비 중인 것들은 마른 냄새를 풍긴다.

긴 줄 알았는데 결실을 위한 충전이 필요한, 짧은 시간이 서둘러 필요하다.

영원은 짧은 희열 후의 잔해들로 만들어진다.

팽창에서 유지 또는 축소로 몸집을 바꾼다.

숲속에선 주고받는 것들만이 긴밀하게 살아가고 있다.

가을엔 영적, 육적인 시-공간이 더 넓어진다.

그리고 꼭 다음과 함께 가을의 전설은 흔적을 남긴다.

낙엽은 계절이 한참 성숙되었음을 알린다.

갈수록 짧게 느껴지는 것은 나이에 대한 상대성이론 때문이다.

나무 사이가 점점 많이 보이는 것부터가 가을의 의미다.

같은 시간 산책로가 한산한 것은 일교차가 크다는 일기예보랑 같다.

건조함은 나처럼 마르다는 것과 어울린다.

산책로에는 한여름보다 힘들어 하는 이들이 적다.

가을의 진행 속도는 바람처럼, 아니면 중년의 시간처럼 빠르다.

가을은 색과 준비라는 단어를 만든다.

음력 9월 9일쯤이면 9개의 마디가 생긴다는 구절초가 향긋하게 보인다.

이 계절엔 체중이 늘어나는 느낌이다.

산속 사찰에서도 무청이 걸리고 겨울을 준비하는 소리가 가끔 들린다.

계절도 변했으니 감사가 더 많아야 한다.

이젠 솔잎만큼이나 내 반성이 산책길에 가득하다.

목욕탕의 나처럼 나무들의 나체를 쉽고 훤하게 볼 수 있다.

낙엽지면 풍수쟁이는 명당을 찾아 다녔을 것이다.

벗은 만큼 풍욕을 즐기는 계절 또 다른 저항을 위한 기다림이 있을 것이다.

생존을 위한 독소를 품은 아름다움이 단풍이라면 이건 실망스런 사실이다.

계단에 쌓인 수고한 잎들을 밟고 가기가 미안한 아침도 있다.

나무들은 가볍게 벗는데 나는 내복까지 껴입는다.

정상에 앉으면 과거가 풀어지고 아침에 만나던 단골들이 줄어든다.

점점 해가 그리운 시간이다.

추상(秋霜)처럼 엄할 때도 있어야 한다, 특히 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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