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바꿈 논란 707 특임단장 김현태

그는 한때 육군사관학교에서 태권도를 가장 잘하는 생도였다. 태권도 6단이고 테니스, 골프, 족구, 볼링, 승마 등을 잘하는 육군의 ‘인싸’였다. 육사 57기(1997년 입학)로 2004년엔 자타공인 한국 최고의 대테러 부대 707 특수임무단 팀장을 지냈고, 이후 UN 평화유지군 활동 등으로 이라크·레바논·아랍에미리트 등을 누볐다. 2023년 12월엔 707 특임단 단장을 맡았다. 열정을 다 하면 수년 내에 ‘별’도 달 수 있지 않을까 기대도 했다. 2024년 12월 3일 밤의 ‘그일’이 있기 전까지.
김현태(48) 대령. 그는 12·3 계엄사태 때 가장 충격적인 장면으로 꼽히는 707 특임단의 국회 침투를 지휘했다. 오후 10시 28분 윤석열 대통령의 계엄 선포 1시간 20분쯤 뒤(오후 11시 49분) 국회에 가장 먼저 도착한 헬기에 그가 타고 있었다. 대원들에게 유리창을 깨라고 지시한 것도 그다.
‘눈물의 사죄’ 했던 707 특임단장, “말 바뀐 것 아니다”
증언 따라 의인 대접받다가 회유됐다는 비난 받기도
“황당한 가짜뉴스 방치하는 언론과 국방부에 서운”
피고인 변명일 수 있지만, 사실관계 제대로 검증해야

김 대령은 윤석열 대통령 심판사건에서 증인의 위치에 서 있다. 상관인 곽종근 전 특전사령관은 윤 대통령으로부터 ‘의원을 끌어내라’는 취지의 지시를 받았다고 증언했다. 김 대령이 곽 전 사령관으로부터 어느 선까지 지시를 받았느냐가 주요 쟁점이다. 그 과정에서 그는 내란범과 의인을 왔다 갔다 하는 평가를 받았다. 당시의 모든 사실관계를 파악할 수 없는 상태에서 한 말들은 진영에 따라 다른 해석이 나왔다.
거대한 역사의 소용돌이에 휘말린 그의 입장이 궁금했다. 피고인의 주장을 그대로 전하는 것과 징계 절차가 진행 중인 상황에서 인터뷰가 조심스러웠지만, 논란의 중심에 있는 그의 입장을 들어볼 필요는 있었다. 지난 7일 경기도 이천시 장호원읍에 있는 7군단에서 김 대령을 만났다.
기자회견 뒤 입장 달라졌다 비난받아
지난달 28일 검찰 비상계엄 특별수사본부는 내란 중요임무 종사와 직권남용 등의 혐의로 김 대령을 군사법원에 불구속기소 했다. 국방부는 지난 4일 직무정지를 위한 분리 파견을 단행했고, 김 대령은 707 특임단을 떠났다.
김 대령의 첫인사는 담담했다. 그는 “잘 먹고 잘 자야 한다는 지인들의 조언에 잘 따르고 있다”고 근황을 전했다. 책상과 의자 한 세트만 덩그러니 있는 사무실에 출근하고 있다고 했다. 김 대령은 “시간이 지나면서 많은 것을 알게 되고 보니, 당시 기억도 명확해지고 제 개인적으로는 사실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지금은 더 이상 휘둘리거나 흔들릴 게 전혀 없는 상태”라고 했다. 주요 문답의 요지를 추렸다.
말이 바뀌었다는 비판을 받고 있는데.
“처음에 단편적인 정보만 갖고 기자회견을 하게 됐다. 기자들이 오히려 더 많이 알고 질문을 하더라. 잘 몰랐던 ‘의원 체포’니 ‘끌어내라는 지시’ 등을 집요하게 물어봐서 혼란스러웠던 측면이 있다. 다시 정리하면, 내가 받은 지시는 ‘국회의사당 및 의원회관을 봉쇄하여 건물을 확보하라’는 것이었다. 나는 당시 곽종근 사령관과만 통화했고, 사령관으로부터 ‘국회의원을 끌어내라’는 지시는 없었다.”
국회 유리창을 깼고 ‘의원 150명이 넘으면 안 된다’는 말까지 들었는데 의원 체포 목적으로 보는 게 상식적이지 않나.
“소화기 공격까지 받아 앞이 잘 보이지 않는 다급한 상황이어서 150명에 대한 의미는 깊이 생각하지 못했다. ‘(본회의장에) 들어갈 수 없겠냐’는 취지의 사령관 말에 저는 ‘더 이상 무리수를 둘 수 없다’고 했다. 유리창을 깬 것은 정문 앞에 사람들이 많이 몰려 국회 안에서 봉쇄하기 위해서였다. 일단 국회를 확보하면 추가 지시가 있을 것으로만 생각했다. 항의하는 국회 관계자들에게도 ‘계엄사에 문의해 달라’는 말만 했다.”
8자 형 케이블타이는 의원 체포용으로 보이는데.
“케이블타이는 특임단이 항시 휴대하는 개인품목이다. 보급품도 아니고 개인이 구매한다. 그래서 형태도 다양하다. 당일 국회 건물 봉쇄 임무를 부여받고 부대원들에게 문을 잠가야 하니 케이블타이와 청테이프, 자물쇠 등도 챙기라고 지시했다. 8자 모양으로 된 케이블타이는 수갑 용도는 맞지만, 당일엔 그걸 엮어서 올림픽 문양처럼 문을 봉쇄하는 데 썼다. 그런데, 문이 너무 커서 잘 안 되더라. 그래서 소방 호스나 청테이프를 사용했다.”
김 대령 주장의 사실 여부는 결국 법원의 판단을 통해 확인될 수밖에 없다. 그의 주장과 행보는 정치적으로도 논란이 되는 상황이다. 지난해 12월 9일엔 “부대원들은 죄가 없다. 죄가 있다면 무능한 지휘관의 지시에 따른 죄뿐이다”라며 눈물의 기자회견을 했다가 지난달 6일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6차 변론기일에선 “(의원을) 끌어내라는 지시는 없었다”고 주장해 말이 바뀌는 것처럼 비쳐졌다. 지난달엔 국회 국방위원회에서 곽종근 전 특수전사령관과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만남을 언급하며 이른바 ‘야당 회유설’에 불을 댕겼다. 반대로 민주당은 국민의힘이 김 대령을 회유한 것 같다고 주장했다.
김 대령은 “헌재 재판을 지켜보면서 내가 아는 사실을 정확히 말해야 한다는 걸 알았다. 정형식 헌법재판관이 ‘곽종근 전 특수전사령관에게 들은 이야기만 정확히 말하라’고 지적하는 것도 참고가 됐다”고 했다.
“무기 사용하려 했다는 건 거짓 프레임”
707 특임단이 사용한 메신저 내용 등이 공개돼 저격수 배치, 탄약 개봉 등 의혹도 이어지고 있다. 김 대령은 언론사에 직접 전화를 하며 항의했다고 한다. 그는 “특임단의 통상적인 훈련 방식을 두고 국민을 상대로 무기를 사용하려 한 것처럼 거짓 프레임을 만들고 있다. 군 전체를 모독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과거 무자비한 폭력을 행사했던 10·26, 12·12 계엄군과 동일시하지 말아달라”고 덧붙였다.
그렇다면 그는 첫 번째 기자회견에선 무엇을 사죄한 것일까. 김 대령은 “당시엔 부대와 부대원을 지키는 걸 최우선으로 생각했다. 당시 상황에 대해서 막연하게, 군인이 국회에 간 것 자체가 불법이라고 하니 그것조차 모르고 간 것부터 죄송하다는 취지였다. 뭔가 잘못된 상황인 건 맞으니까”라고 말했다. 김 대령은 당시 회견에서 “부대원들은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에게 이용당한 가장 안타까운 피해자들”이라 했고 여전히 같은 생각이라고 했다. 윤 대통령에 대해서는 “처음 판단에서 조금 달라지고 있다. 헌재의 결정을 지켜봐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을 아꼈다.
“가짜뉴스로 보청기가 이어폰 둔갑”
김 대령은 자신을 둘러싼 주장과 관련해 “언론에도 크게 실망했고, 내가 항의해도 그걸 방치하는 국방부에도 서운했다”고 말했다. 모든 주장을 사실로 인정할 수 없지만, 실제로 정치권과 광장에서 나오는 주장들에는 사실이 아닌 내용이 적지 않다고 했다. 국정조사와 기자회견 등에서 김 대령이 ‘이어폰으로 누군가와 소통하며 답변한다’는 지적을 받은 게 대표적이다. 그는 실제로 청력이 나빠 보청기를 착용하는데 그게 이어폰으로 둔갑한 것이다. 김 대령은 “난청·이명은 특임대원들 직업병 같은 것이다. 사격이나 폭파 훈련을 많이 해서 귀가 안 좋다. 과거엔 ‘전쟁 때도 귀 막고 쏠 거냐’라고 해서 귀를 막지 않고 훈련을 했다. 보청기를 안 끼고 대원들끼리 대화하면 목소리가 엄청나게 커진다”고 설명했다.
야당 정치인이 출연한 유튜브 채널에선 그가 윤 대통령과 술을 자주 마시는 사이라는 주장도 나왔다. 김 대령은 “결코 그런 적 없다. 말도 안 되는 거짓을 사실처럼 말하는 게 어이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제 뉴스나 인터넷 정보의 헤드라인만 보지 않고 원본을 찾아본다. 몇 시간이 걸리더라도 원본 영상을 다 봐야 정확하게 파악이 된다는 걸 알았다”고 말했다.
피고인 신분인 김 대령이 보신을 위해 일방적으로 주장을 펴는 것일 수도 있지만, 명백히 잘못된 사실은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어설프게 넘긴 오류들이 헌재나 법원의 결정 이후에 우리 사회의 신뢰를 무너뜨리는 불씨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윤 대통령에 대한 공수처 수사와 검찰의 구속 기소 과정에서의 절차적 흠결이 법원의 구속 취소라는 초유의 결정으로 이어진 것도 따지고 보면 중간 과정에서 안이하게 한 판단이 부른 대혼란이다. 김 대령은 언론과 국방부에 가짜뉴스를 따지는 이유에 대해 “군의 사기와 국가의 운명이 달린 문제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김 대령은 곽종근 전 특정사령관에 대해서는 안타까움을 나타냈다. 김 대령은 “사령관님을 존경하고 좋아하는데, 민주당에 이용만 당하고 ‘팽’ 당한 상태가 아닌지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민주당 등 진보 진영에서는 김 대령이 국민의힘에 의해 회유를 당한 게 아니냐는 의혹을 계속 제기하고 있다. 구속기소된 곽 전 사령관은 “윤 대통령으로부터 의원들을 끌어내라는 지시를 받았다”는 취지의 주장을 유지하고 있다. 그 지시가 김 대령과 특임단에 도달한 것인지 여부는 이미 변론이 종결된 탄핵심판에서는 지엽적인 문제가 됐을 수도 있다.
김 대령은 “제가 아는 사실을 다 얘기하고 그 판단은 헌법재판소나 법원에서 올바르게 해줬으면 하는 게 전부다”고 했다. 이어 “20년 넘는 군 생활 즐겁게 미련 없이 했다. 언제든 떠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가장 걱정되는 건 가족이다. 70대 후반의 부모님, 아내와 세 자녀가 그의 안위를 염려하고 있어서다. 기자회견을 한 12월 9일이 아내 생일이고, 하루 전은 결혼기념일이었는데 늘 하던 조촐한 케이크 파티를 하지 못했다. 김 대령은 “군 출신인 아내가 최근 SNS에 ‘옳은 것을 보고도 행동하지 않는 것은 비겁한 것이다’는 공자 말씀을 올려 줬다. 앞으로 그 말대로 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