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선 땐 유연한 실용 강조하더니 입법 몰아치기
실용주의 구호와 반기업 행보 사이 국민은 혼란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달 4일 취임하면서 “유연한 실용정부가 될 것”이라고 했다. 대선 기간 경제성장을 첫 번째 공약으로 강조했고, 기업 지원을 약속했다. 선거 한 달 전 경제5단체장 간담회에선 “경제와 산업을 정부가 제시하고 끌고 가는 시대는 지났다”고 말했다. 중도와 실용을 앞세운 건 더불어민주당도 마찬가지다. 이 대통령 공약에 의구심이 제기될 때마다 엄호에 나섰다. 민주당 상임공동선대위원장이던 김민석 국무총리는 “한국 경제가 하강 침체기에 들어온 지금은 누가 정권을 잡아도 무조건 2년 정도는 나라를 안정시켜 줘야 한다”고 말했다. 여당 지지자들이 “대선에서 진보 어젠다가 실종했다”고 불평할 정도였다.
그러나 정부 출범 두 달도 안 돼 통합·실용주의 약속의 진정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최근 여당은 개혁 입법을 내세우며 기업 활동을 위축시키는 노란봉투법(노동조합법 2·3조 개정안)과 더 세진 상법 개정안을 국회 상임위에서 밀어붙였다. 상법과 노조법뿐 아니라 ‘방송 장악’ 논란을 빚는 방송 3법까지 강행할 태세다.
한국경영자총협회 등 13개 주요 협회는 어제(30일) 기자회견을 열어 “우리 산업경쟁력을 심각하게 저하할 것”이라고 호소했다. 주한 미국상공회의소는 “한국의 경영 환경과 투자 매력도에 미칠 수 있는 부정적 영향에 대해 깊은 우려를 표명한다”는 입장을 냈다. 주한 유럽상공회의소도 역시 “한국에 투자한 해외 기업들은 노동 규제로 인한 법적 리스크에 민감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경제성장을 대표 공약으로 내건 정부가 출범하자마자 해외 투자 기업에까지 불안감을 안긴 것이다.
기업에 적대적인 법안을 여당이 밀어붙이고 있다. 당심이 70% 반영되는 8·2 전당대회를 앞두고 정청래·박찬대 당대표 후보가 강경 지지층 표를 얻기 위해 기업을 때린다는 분석이 나온다. 여당이 기업을 옥죄는 악역을 맡고 이 대통령은 유연함을 보이는 역할분담론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이 대통령은 어제도 비상경제점검 TF 회의에서 배임죄 재검토와 경제형벌 합리화 TF 운영을 제시했다.
하지만 이 대통령이 실용 메시지를 내도 여당이 기업을 압박하는 법을 강행하면 친기업 약속은 별 의미가 없다. 이 대통령은 배임죄의 문제점을 거론하며 “한국에서 기업 경영 활동을 하다가는 잘못하면 감옥에 가는 수가 있다며 국내 투자를 망설이는 경우가 있다”고 지적했는데, 해외 기업들이 지목한 건 여당이 강행하는 노란봉투법이다. 이 대통령의 실용주의와 여당의 반기업 행보 사이에서 국민은 헛갈린다. 여당은 다음 달 4일 국회 본회의에서 국내외 기업의 투자 의지를 꺾는 법안의 강행 처리를 재고해야 한다. 미국과의 관세 협상으로 가슴이 타들어 가는 국내 기업을 더욱 궁지로 몬다면 ‘유연한 실용정부’ 공약은 신뢰를 잃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