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야흐로 커브의 시대다. 자동투구판정시스템(ABS)이 적용되면서 커브의 효과가 극대화될 것이라던 전망이 숫자로 입증되고 있다.
커브와 관련해 가장 눈에 띄는 투수는 단연 LG 우완 임찬규다. 원래도 커브를 많이 던지고 잘 던졌던 임찬규는 ABS 도입 이후 커브를 더 적극적으로 던지고 있다. 2022년 18.6%, 2023년 23.4%였던 커브 구사율을 ABS 적용 첫해인 2024년 28.3%까지 끌어올렸다. 올해는 28.7%로 더 올렸다. 리그에서 2번째로 커브 구사율이 높은 같은 팀 손주영(21.5%)과 비교해도 차이가 크다.
결과는 대단히 좋다. 임찬규는 평균자책 2.89로 리그 전체 5위다. 국내 선발 중 유일한 ‘2점대 투수’다.
임찬규는 단순히 커브 구사율만 올린 게 아니라 활용법도 다양화했다. 커브 하나만 가지고도 구속 변화로 상대 타자를 농락한다. 지난해까지 임찬규와 호흡을 맞췄던 포수 출신 허도환 MBC스포츠플러스 해설위원은 “임찬규는 원래도 커브가 좋았지만, 구속까지 뜻대로 조절하는 수준은 아니었다. 그런데 지금은 80㎞를 던지다가도 110, 120㎞를 자유자재로 던진다. 그러면서 볼·스트라이크까지 구분해서 던지는 경지까지 올랐다”면서 “그런 커브를 던지다가 140㎞ 속구를 던지면 타자한테는 150㎞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구단별로는 SSG가 돋보인다. 지난해(13.9%)에 이어 올 시즌도 커브 구사율 13.4%로 리그 전체에서 가장 높다. 외국인 원투 펀치 드류 앤더슨과 미치 화이트가 커브 구사율 20.9%, 19.5%를 각각 기록 중이다. 이번 시즌 선발과 불펜을 오가며 깜짝 활약 중인 최민준(22.4%)도 공 100개 중 20개 이상이 커브다. 김광현(16.4%), 문승원(15.7%) 같은 베테랑 투수들도 커브 비중이 눈에 띄게 커졌다. 문승원의 경우 2023시즌 6%였던 커브 구사율이 올해는 그 2배가 넘는다.
SSG가 원래부터 커브를 많이 던지는 팀은 아니었다. 2022시즌 10.9%로 리그 4위, 2023년도 10.7%로 4위였다. ABS가 도입된 2024시즌부터 커브 비중을 의도적으로 끌어 올렸다.
이숭용 SSG 감독은 “지난해 감독 부임하고 가장 많이 이야기한 게 커브였다. 이유는 단 하나, ABS 때문”이라고 했다. 이 감독은 “커브를 던질 줄 아는 투수는 무조건 던져야 하고, 다른 투수들도 커브 연습을 많이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고 말했다.

올 시즌 SSG는 팀 평균자책 3.54로 전체 2위다. 마운드의 힘으로 중위권 레이스에서 앞서 달리고 있다. SSG 마운드의 진화를 커브 하나만으로 설명할 수는 없지만, 커브를 배제하고 말하기도 어렵다. 변화된 환경에 적극적으로 대처한 효과를 보고 있다.
ABS 시대가 열리면서 과거에는 볼 판정을 받았던 각도 큰 커브가 이제는 스트라이크로 잡히고 있다. 타자 입장에서 대처하기가 쉽지 않다. 이동현 스포티비 해설은 “커브가 투수 손을 떠나고 공이 뜨는 순간 타자들은 볼이라고 판단을 하는데, 그런 공들이 ABS 높은 존에 계속 물리고 있다”고 짚었다. 허도환 해설은 “ABS 존 위아래 선에 걸리는 각도 큰 커브는 사실 칠 수가 없는 공”이라고 했다.
물론 실전에서 커브를 주무기로 활용한다는 게 말처럼 쉽지는 않다. 실제로 올 시즌 리그 전체로 따졌을 때 커브 구사율은 8.6%에 그치고 있다. 2023년 9.6%, 2024년 8.8%에 비해 오히려 더 떨어졌다.
커브는 가장 기초적인 변화구에 속하지만 능숙하게 던지기는 어려운 공이다. 이동현 해설은 “커브는 다른 공에 비해 릴리스 포인트를 많이 올려야 한다. 제구 잡기가 까다롭다”고 설명했다. 허도환 해설은 “손목을 꺾어서 던져야 하는 공 아니냐. 제구도 어려운데, 실투가 나오면 장타로 연결될 위험도 크다”고 말했다.
ABS 시대가 열리면서 커브가 새삼 주목받고 있다. 위험 부담도 크지만, 효과 또한 입증되고 있기 때문이다. 얼마나 빠르게 새 트렌드에 적응하느냐에 따라 향후 각 구단의 희비가 엇갈릴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