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업계, 자재·인건비 부담 가중···규제·공법 생태계 대전환 '절실'

2024-10-22

건설산업이 한계에 봉착했다는 경고가 나온다. 공사비 부담은 최근 3년간 급격히 오른 반면 층간소음‧내진‧내화 등 품질은 여전히 개발도상국 수준에 머무르고 있어서다. 전문가들은 신공법과 신소재를 도입해 산업을 고도화해야 하는데, 기술 인력을 양성하기 힘든 구조적 한계가 이를 가로막고 있다고 지적한다.

준공 기준 1만2032가구로 역대 최대 재건축 단지로 꼽히는 '올림픽파크포레온'(둔촌주공 재건축)이 입주를 코앞에 두고 또다시 공사가 멈췄다. 2022년 재건축단지 초유의 6개월간의 공사 중단을 겪은 지 2년 만이다. 이번엔 단지 내 도로, 공공건축물, 조경 등을 맡은 업체들이 공사비 인상을 요구하며 18일부터 작업을 중지했다.

올림픽파크포레온 외에도 수많은 현장에서 공사비 갈등이 빚어지고 있다. 성북구 장위4구역은 지난해 일반분양을 끝내고 입주까지 반년밖에 남지 않았지만 공사비 협상이 원활하지 못해지자 GS건설이 공사 중단을 예고한 상황이다. 강서구 방화6구역은 공사비 갈등 끝에 지난달 HDC현대산업개발과 결별했다.

자재비와 인건비는 공사비 갈등을 유발하는 가장 중대한 요소로 꼽힌다. 건설업에서 가장 중요한 자재는 철근과 콘크리트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에 따르면 철근은 지난 3년간 누적 64.6%, 시멘트 가격은 54.6% 올랐다. 건설 현장 시중 노임도 25.3%가량 올랐다. 인건비가 오르면서 모든 세부시공단가가 같이 올랐다.

실제로 건설 원가 부담을 나타내는 지표인 건설공사비지수는 2020년 100에서 지난해 127.9로 약 28% 올랐다. 현장에선 건설공사비지수의 상승률보다 더 원가 부담이 크다고 입을 모은다. 업계관계자는 "건설공사비지수는 기준점이 2015년으로 멀어 실체감 원가 상승 부담보다 수치상 상승률이 더 낮다"면서 "실제 현장에서 느끼는 비용 증가는 50% 수준"이라고 했다.

원가가 오르자 부실시공도 늘어났다. 지난해 4월 인천 검단신도시 아파트 현장에선 지하 주차장이 붕괴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2022년 광주 화정동에서 공사 중이던 신축 아파트는 고층에서부터 무너져 내리는 참사를 겪었다. 하자심사분쟁조정위원회(하심위)에 따르면 2019년부터 지난해까지 하심위에 접수된 하자 분쟁 사건은 연평균 4400여건에 달한다.

전문가들은 공사비 갈등과 하자 문제를 해결하려면 신공법과 신소재 등을 도입해 현장 공사에 드는 시간과 비중을 줄여야 한다고 조언한다. 시멘트에 물과 모래‧자갈을 섞어 만드는 콘크리트를 붓고 굳히는 기존의 습식공법에서 현장에서 물을 쓰지 않는 '건식공법'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

대표적인 건식공법으로는 'PC공법'과 '모듈러공법'이 있다. PC공법은 공장에서 주요 골조나 벽체를 생산한 뒤 현장에서 바로 시공하는 공사방식이다. 모듈러공법은 모든 구조물과 마감재 등을 정형화(모듈화)해서 생산하고 현장에서 조립하는 공법을 말한다.

실제로 미국이나 일본, 유럽 등 대부분의 선진국에선 '건식공법'이 보편화돼 있다. 선진국들이 우리나라와 다르게 건식공법을 주로 쓰는 것은 '건물구조'와도 관련이 있다. 우리나라는 벽체와 지붕(슬래브)에 건물 무게 하중을 분산시키는 '벽식구조'가 대부분이다. 반면 선진국에선 기둥과 보로 무게 하중을 분산시키고 벽체는 가볍고 성능 좋은 신소재를 쓰는 '라멘구조'나 '철골구조'를 채택한다.

다만 현장 전문가들은 아파트와 같은 고층 공동주택에선 신공법과 신소재를 도입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입을 모은다. 신공법으로 공사를 시행할 기술 인력이 부족하고, 양성할 여건도 되지 않는다는 것이 이유다. 고층 건물을 건식공법으로 지으려면 설계와 시공이 정밀하게 이뤄져야 한다. 조그마한 오차만으로도 공장에서 생산한 자재를 제대로 조립할 수 없는 상황이 생기기 때문이다.

기술 인력을 키워내기엔 건설 현장의 고령화와 국내 인력 감소 문제가 심각하다. 업계관계자는 "현재 국내 현장은 고령자가 외국인이 대부분이라 기술 전수가 쉽지 않다"면서 "기술이 있는 외국 건설사에 시공을 맡기고 싶어도 인허가와 자격 등 규제로 인해 장벽이 쳐져 있는 상황"이라고 했다.

신공법과 신소재를 도입하기 위한 기본 전제인 '라멘구조'와 '철골구조'가 공사비가 비싼 것도 장벽으로 작용한다. 라멘구조와 철골구조는 층간소음과 구조안정성, 내부구조 변경 등에서 벽식구조보다 월등한 성능을 가진다. 다만 벽식구조에 비해 12~30%가량 공사비가 비싼 것이 흠이다. 높이 제한이 있는 곳에선 같은 높이에서 층수가 2~3개 층이 적은 것도 분양 수익 측면에서 불리하다.

전문가들은 후진국형 공법과 소재를 퇴출하도록 규제를 강화하거나, 선진국형 공법과 소재에 대한 과감한 인센티브를 부여하는 방식으로 건설산업을 선진화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대형 건설사 현장소장 출신 건축시공기술사 A씨는 "원래 라멘구조가 건축구조의 기본인데, 우리나라는 산업화 시대에 빨리, 싸게 짓는 방법으로 벽식구조로 건물을 지어온 게 지금껏 이어지고 있다"면서 "20~30년 쓰고 각종 문제가 생기는 벽식구조를 버리고 50~100년을 쓰는 건물을 지어야 할 때"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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