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른 학교를 졸업해 일자리를 갖는 게 목표입니다. 더 높은 급수의 한국어능력시험을 치면서 미래를 준비할 생각입니다.”
2026년 초 울산과학대학을 졸업하는 아베드 에마드(24)씨의 새해 포부다. 그는 지난 8월 같은 대학을 졸업한 네자무딘 아이샤(20)씨와 결혼식을 올렸다. 이들은 3년 전 탈레반 치하 아프가니스탄 탈출해 울산에 정착한 아프간 특별기여자들의 자녀다. 자녀들끼리 결혼하면서 새로운 가정이 탄생한 것이다. 에마드씨 부부는 아프간 특별기여자들이 울산에 터 잡은 현대중공업 중앙아파트에 신접 살림을 차렸다. 에마드씨는 “아프간에선 20∼22세쯤 결혼을 하는 문화가 있다. 아버지가 결혼을 제안했고, 저 역시 낯선 나라에서 서로를 위해준 아이샤에게 특별한 감정이 생겨 결혼을 하게 됐다”면서 “앞으로도 한국에서 내 가족과의 미래를 그려가고 싶다”고 말했다.
탈레반에 아프간 정부가 넘어간 2021년 8월, 한국 정부의 ‘미라클 작전’으로 391명의 특별기여자가 한국에 입국했다. 특별기여자 중 28가구(150여명)는 울산으로 왔다. 이들의 가장 28명이 현대중공업 엔진기계사업부의 12개 협력사에서 일하게 됐고, 현대중공업은 1985년에 지어져 임직원 사택으로 쓰던 중앙아파트를 제공했다.
31일 찾은 울산 동구 서부동의 중앙아파트. 아파트 출입구에 설치된 안내판에는 한글과 다라어(아프간 공용어)로 쓰인 안내문 한 장이 걸려 있었다. ‘밤 9시 이후엔 밖에서 큰 소리로 얘기하는 것을 삼가달라’는 내용이었다. 2년 전 다라어로만 쓰인 안내문이 잔뜩 붙어있던 것과는 달라진 모습이었다. 안내문을 살피고 있자니 히잡을 쓴 여성이 “안녕하세요”라며 인사를 건넸다. 그는 “처음 왔을 때보다 한국말이 많이 늘었다”면서 “친해진 한국인 이웃도 있다”고 말했다.
3년여 시간이 흐르면서 울산 속 작은 아프가니스탄 같은 이 아파트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아파트에서 특별기여자 가족들을 돕던 통역가와 다문화지원센터 직원은 올해 초쯤 완전히 철수했다. 7명의 가장이 인천으로 일자리를 옮기면서 가족들과 함께 이사를 갔고, 지난해 한 집(5명)이 같은 이유로 더 이사가면서 지금은 22가구 129명이 살고 있다. 올해 3명의 아이가 더 태어나면서 자녀들은 모두 87명이 됐다. 내년 9명이 더 대학에 진학해 대학생이 더 늘어나고, 초중고에 다니는 48명의 아이들은 한 학년씩 더 올라간다.
아베드 하피즈 압둘(50)씨는 아들인 에마드의 결혼으로 네자무딘 네자미(55)씨와 사돈이 됐다. 401호에 사는 그는 아내, 자녀 4명과 함께 왔다. 15년간 아프간에서 간호사로 일한 그는 지금은 선박엔진 업체인 지테크에서 전기 설비 일을 하고 있다. 탈출 직전엔 한국 협력 병원에서 7년간 근무했다. 하피즈씨는 처음엔 낯설던 일도 이제는 많이 적응됐다. 그는 “처음엔 직업이 너무 달라서 어렵고 힘들었다. 지금은 처음보다는 많이 익숙해졌지만, 아직 어려운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하피즈씨는 2년 전 소원했던 승용차도 구입했다. 아프간 가족들은 주말이나 명절에 가족과 함께 승용차를 타고 근교 등으로 나들이를 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는 “차를 운전해 인천에 있는 친구를 만나러 가기도 하고, 가족들과 서울, 경북 포항 등으로 놀러가기도 했다”고 말했다. 3년의 세월동안 승용차를 구입한 아프간 가족은 17가구가 됐다.
한국 생활에 맞춰 기도시간은 바뀌었다. 무슬림들은 해가 떠 있는 동안 5번 기도를 하는데, 하피즈씨는 새벽과 저녁엔 집에서 기도하고, 낮에는 점심시간의 5∼10분 정도만 기도에 쓴다. 그는 “한국문화에 맞춰서 기도를 드리고 있다”며 “한국인 직장동료와 서로의 집에 초대하면서 한국문화도 더 많이 알아가는 중이다”고 했다.
아이들은 학교에 잘 적응하고 있다. 아프간 특별기여자들의 자녀들은 병설유치원과 초·중·고등학교에 각각 배정됐다. 1년 뒤엔 7명이 대학생이 됐고, 지금은 대학을 졸업한 자녀들도 있다. 처음 울산에 왔던 해엔 아프간 학생들의 학교 배정에 대해 기존 학생 학부모들이 사전에 동의를 구하지 않았다는 등의 이유로 울산시교육청에 불만을 제기하기도 했지만, 이제는 옛 이야기다. 현대고에 재학 중인 압둘라 미르자이(17)는 “한국인 친구들이 많아졌다. 점심시간, 방과 후, 주말에 운동장에서 축구를 하고, 배달앱으로 떡볶이, 피자, 라면 등을 시켜 먹기도 한다”고 말했다. 울산과학대 글로벌비즈니스학과에 진학한 사라 라히미(21)씨는 올해 졸업을 앞두고 있다. 그는 “한국어와 영어 실력을 좀 더 늘려 간호학과에서 더 공부하려고 한다. 간호사가 되는 것이 꿈이다”고 했다.
엄마들의 생활은 여느 가정주부와 비슷하다. 남편과 아이들이 직장·학교에 가 있는 동안 집안일을 하고, 대송시장이나 마트에 가서 장을 본 뒤 식사를 준비한다. 저녁엔 한국어 공부도 한다. 한국인 친구를 둔 엄마는 부러움의 대상이다. 야쿠비 나쉬마(42)씨는 “친해진 한국인 할머니에게 목걸이를 선물했더니 신라면 한 박스를 받았다. 중학생인 막내아들이 라면을 너무 좋아해서 신나했다”라며 웃었다.
한국살이 3년차를 맞았지만, 아프간 특별기여자들의 새해 ‘코리아드림’은 여전히 굳건하다. 아프가니스탄에서도 새해는 나우루즈(Nawrouz), 새로운 날로 부르면서 소원을 비는 등 소중하게 여긴다. 한국과 다른 점은 아프가니스탄은 페르시아력 1월 1일인 춘분(3월 21일)을 우리 음력 1월 1일처럼 ‘명절’로 여긴다.
새해를 맞은 그들의 바람은 무엇일까. 슈크리아 무자데디(47)씨의 새해 바람은 이란에 있는 두 자녀가 한국으로 와 함께 사는 것이다. 그는 “성인인 아이들은 특별기여자의 자녀 자격으로 한국에 올 수 없었다. 아침 저녁으로 통화를 하지만, 그래도 남편과 5명의 자녀가 다같이 모여 살 길 바란다”고 말했다. 하피즈씨의 새해 소망은 여느 한국인 부모들과 다르지 않다. “한국에선 여자들도 공부할 수 있고, 일을 할 수 있다. 아이들이 공부 잘 하고, 잘 적응하고, 잘 살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하피즈씨는 한국 정부에 고맙다고 꼭 전하고 싶다고 했다. “집과 친구, 모든 것을 버리 고 고국을 떠났던 것을 생각하면 지금 제가 하는 일에 만족감이 높을 순 없어요. 그렇지만 나와 가족을 탈레반으로부터 탈출시켜줬고, 지금껏 안전하게 지켜주고 지원해주는 한국 정부가 고맙다고 생각합니다.”
울산=글·사진 이보람 기자 boram@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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