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계에서 쌓은 전문 지식을 활용해 기업을 설립하는 ‘교수 창업’ 열기가 심상치 않다. 과거에는 의료·바이오, 전기전자·기계·화학 등 일부 업종에 국한됐다면 최근 들어 교육, 뷰티, 보안 등 창업 분야를 대폭 넓혀가고 있다는 평가다. 플랫폼의 시대가 저물고 딥테크 시대가 떠오르면서 벤처투자업계에서 교수 창업자에 대한 선호도가 커진 것도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3일 서울대에 따르면 지난해 대학 측으로부터 창업 승인을 받은 사례는 18건으로 집계됐다. 올해 상반기 기준으로는 11명의 교수가 창업 허가를 받았다. 서울대 창업심의위원회에 참여하는 한 인사는 “매달 창업을 희망하며 휴직을 신청하는 교수들이 평균 5명에 이른다”면서 “일부 이공계에 한정됐던 창업 열기가 이제는 전공을 가리지 않고 광범위하게 확산되고 있는 추세”라고 말했다.
실제 과거에서는 찾기 힘들었던 분야에서 창업을 시도하는 사례가 하나둘 생겨나고 있다. 서울대 교육학과 교수를 지낸 오현석 대표가 설립한 앱티마이저가 대표적이다. 오 대표는 안식년이던 2022년 서울과학종합대학원대학교 인공지능(AI) 석사 과정에 등록한 뒤 올해 초 기업을 설립했다. AI를 활용해 학생을 대상으로 적성에 맞는 전공을 찾아주는 서비스를 한다. 대학의 학문 분야와 학과 정보를 충실히 반영해 대학생이나 직장인 등 성인들이 활용할 수 있는 적성 검사는 세계 최초라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이화여대 사업화 공모전을 통해 창업한 1호 회사인 큐빅도 유사한 예다. 설립자는 배호 이화여대 사이버보안학과 교수다. 이 회사는 국내에서 보기 드물게 차등 정보보호(Differential Privacy) 기술을 자체 개발했다. 차등 정보보호 기술은 데이터에 노이즈를 주입해, 민감 정보를 비식별화(익명화·가명화)하는 프라이버시 강화 기술이다. 빠르고 효율적인 데이터 처리가 강점으로 현재 네이버클라우드, 이대목동병원 등과 협업 중이다. 네이버 D2SF, 브이엔티지, 이화여대 기술지주의 시드 투자를 받은 데 이어 씨엔티테크, 한국산업은행 등이 참여한 프리A 투자도 유치했다.
교수 창업은 앞으로 활성화될 가능성이 크다는 게 중론이다. 교수 창업에 보수적이던 각 대학교 분위기도 180도 달라져 최근에는 오히려 권장하는 추세다. 투자 시장 분위기도 어느 때보다 우호적이다. 딥테크 스타트업에 대한 투자 수요가 급증하면서 오히려 투자사들이 각 대학 연구실 문을 두드리며 투자를 먼저 제안하는 게 흔한 풍경이 됐다고 업계 관계자들은 이구동성으로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