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출신 고혜원 한국직업능력연구원장 인터뷰
학창시절 사회활동에 관심, 이화여대 정외과 진학
‘경력단절 여성’ 최초로 제안해 지원 법률도 제정
각계각층에 있는 제주인의 인맥 적극적인 활용 필요
“청년들이 장래 진로와 직업에 대해 막연한 두려움을 가져서는 안 됩니다. 더구나 수능 점수로 진로를 결정하면서 나중에는 전공을 바꾸는 사례가 나오고 있죠. 본인이 가장 하고 싶은 일과 재미있는 분야를 진로로 설정해 학창시절부터 착실히 준비해야 합니다.”
고혜원 한국직업능력연구원장은 미래의 인재를 키우려면 가장 잘 하는 일에 흥미와 동기 부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학창시절, 사회활동에 많은 관심
고 원장은 1964년 제주시 이도1동에서 출생했다. 아버지는 남제주군 농촌지도소장으로 정년퇴임했고, 어머니 역시 같은 직장에 다닌 공무원이었다.
부친의 인사이동에 따라 여러 학교를 옮겨 다녔지만 서귀포초와 신성여중, 신성여고(27회)를 졸업했다.
1982년 이화여대 정치외교학과에 입학한 계기는 학창시절 사회활동에 관심이 많은 것을 지켜본 부모의 권유 때문이었다. 3남매 중 장녀인 그는 부모의 지지와 응원에 힘입어 이화여대에서 학·석사와 행정학 박사를 취득했다.
박사학위 과정 중에 영국의 서섹스대학에서 방문연구원으로 논문을 준비했고, 박사가 된 후에는 미국의 뉴욕주립대학 스토니브룩 캠퍼스, 조지메이슨 대학에서 방문학자로 연구를 수행했다.
고 원장은 “저도 진로와 직업에 대해 고민이 많았지만, 인생의 방향을 알려주고 지지해 준 부모님에게 감사를 드린다”고 밝혔다.
▲27년 동안 연구자의 길을 걷다
고 원장은 민간연구소에 근무할 당시 결혼과 출산으로 잠시 경력이 단절됐지만, 1997년 한국직업능력연구원이 개원하면서 공채 연구원으로 입직해 27년 동안 연구자의 길을 걸어왔다.
일과 가정을 양립할 수 있었던 것은 가족이라는 ‘한 팀’으로서 연구자 생활을 이해해 준 남편과 독립적인 딸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했다. 남편은 부산대 정외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딸은 미국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
고 원장은 “퇴근 후에는 가정에 충실하기 위해 딸이 대학에 입학하기 전까지는 저녁 약속을 잡지 않았다”고 회고했다.
한국직업능력연구원 수장에 오르기 전까지 고 원장은 기획재정부 공공기관 경영평가위원, 국무조정실 자체평가위원, 중앙노동위원회 공익위원, 세계은행 컨설턴트, 서울시 일자리위원회 위원, 학교법인 한국폴리텍 및 한국고용노동교육원의 비상임이사 등 직업훈련과 고용 정책의 전문가로 활동해왔다.
▲‘경력단절 여성’ 제안, 법으로 제정되다
‘일·가정 양립’, ‘양성 평등’이란 말이 생소했던 2008년 국회에서 공청회가 열렸다.
고학력 여성들이 결혼·출산으로 퇴사하는 문제를 논의하는 자리에서 고 원장은 처음으로 법안의 명칭으로 ‘경력단절 여성’이라는 용어를 국회의원들에게 제안했다. 이후 ‘경력단절 여성 등의 경제활동촉진법’이 국회에서 제정됐다.
고 원장은 “법적 용어로 최초로 제안한 ‘경력단절 여성’이란 말이 정부부처의 관할 업무가 됐고, 여성고용을 지원하는 법령이 제정돼 뿌듯하다”고 말했다.
저출생 극복을 위해 정부가 지난해부터 장려한 육아휴직과 근로시간 단축 확대에 남성들에 대한 혜택이 강화되도록 한 배경에도 고 원장의 치밀한 자료 분석과 연구로 이뤄낸 성과물이었다.
또한 직업능력개발훈련을 실시할 수 있도록 국가에서 전 국민에게 훈련비를 지원해 주는 ‘국민내일배움카드’의 개발도 고 원장이 2008년에 연구를 수행하면서 정착시켰다.
▲정책과 실무 겸비한 여성 전문가로 ‘우뚝’
고 원장은 언제 어디서든 제주 출신인 것을 자랑스럽게 여겼다.
세종시 세종국책연구단지에 입주한 한국직업능력연구원은 200여 명의 정규직 가운데 절반인 104명이 박사학위를 보유한 인재들이다.
고 원장은 당차고 강인한 제주 여성의 장점을 최대한 보여주되, 함께 일을 하는 구성원에게는 따뜻한 마음으로 상대를 배려해준다는 평이다.
이러한 노력으로 직업능력개발과 고용노동에 대한 다양한 부처의 자문을 수행하는 전문가가 됐다.
그 공로로 고 원장은 2022년 우리나라 인적자원개발(HRD) 분야 연구자로서는 최초로 ‘직업능력개발유공 석탑산업훈장’을 받았다.
고 원장은 여기에 머물지 않고 양성평등 정책개발 전문가로 거듭났다. 또한 우리나라의 직업능력개발 경험을 외국에도 전파하고 개발도상국을 지원했다.
직업능력개발에 대한 정책과 실무를 두루 겸비한 그는 학술활동에도 전념하면서 한국직업자격학회 차기 회장에 선출돼 내년부터 임기를 시작한다.
고 원장은 한국직업능력연구원이 태동한 배경에는 구직자는 일할 직장이 없고, 구인자는 일 할 사람을 찾지 못하는 ‘일자리 엇박자(Mismatch)’ 가 존재하기 때문인데, 취업준비생과 실직자들이 꿈을 잃지 않도록 행복한 사회를 만드는 직업능력개발 연구기관이 되겠다고 다짐했다.
고 원장은 제주가 발전하려면 지역 인재를 키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고 원장은 “관련 통계를 보면 제주지역 고교 졸업생 41.6%는 타 지역 대학에 입학하고, 제주에서 대학을 졸업한 29.4%는 다른 지역에서 취업을 하면서 지역 인재 유출이 심각하다”며 “지역인재들이 고향 발전에 기여할 수 있도록 네트워킹을 강화하고, 각계각층에 있는 제주인의 인맥을 적극적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제주특별자치도·제주일보 공동 기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