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깍두기 취급·독박 육아 없는 사회…엄마에게 확신 준 독일 기업 문화

2024-11-03

“한국에서 아이를 낳고 독일로 돌아가기로 결심했을 때 큰 걱정이 없었어요. 전에 하던 일과 완전히 다른 업계에 뛰어들지라도 일과 가정을 양립할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고, 그게 한국과 가장 큰 차이라고 생각합니다.”

지난 9월 독일 바트조덴에서 만난 이봄나래(38)씨는 현재 현지의 한 물류 회사에서 일하고 있다. 과거 독일에서 성악 전공으로 유학한 경험을 살려 출산 전 한국 시립합창단원으로 활동했지만 2019년 독일로 재이주하며 새로운 일에 도전했다.

재이주 당시 두 살배기였던 딸아이는 현재 초등학교 2학년이 됐고, 아이의 성장에 따라 봄나래씨의 근무 형태도 변화했다. 올해부터 아르바이트 개념의 미니잡(Minijob) 대신 시간제 근무인 ‘타일자이트(Teilzeit)’를 시작했다. 근무 시간이 늘었지만 육아에 차질을 주지는 않는다. 여전히 ‘풀타임’인 전일제(Vollzeit) 근무보다 훨씬 유연하게 일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전 8시 반에 출근해 12시 반에 퇴근하면 학교 수업을 마치고 돌아온 아이를 돌보기에 충분하다.

“잔업이 남았는데 아이 하교 시간이 임박했을 때는 아이를 픽업한 뒤 마저 일을 해도 되고, 이런 경우가 매우 흔합니다. 학교 가을 방학(1~2주) 때 방과 후 프로그램에 보낼 여력이 안 되면 방학 내내 사무실에 아이를 데려와 일하는 동료도 많아요.”

독일 프랑크푸르트의 한 국립 병무병원에서 임상 심리학자로 일하는 김민주(35)씨 역시 2년 간의 육아 휴직을 마친 뒤 올해 시간제 근무로 일터에 복귀했다. 기존 주 38시간 근무의 65% 수준 (주 25시간)으로 일하기로 했을 때 단축 퍼센티지에 대한 결정권은 온전히 본인에게 주어졌다. 덕분에 매일 오후 1시께 퇴근 후 오후 3시 반에 공립 어린이집에서 하원한 아이를 데려온다.

이들은 입을 모아 유연한 근무 제도와 기업의 배려, 가족 친화적인 사회 분위기가 출산 및 육아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말한다. 아이를 키운다고 해서 부모 중 한 명이 노동시장에서 도태되거나 일을 포기하지 않아도 된다는 믿음이 들었다는 것이다.

봄나래씨는 “가정의 소득과 관계없이 주변 아이 엄마 대부분이 일하길 원하고, 일하고 있다”면서 전일제보다 시간제 근무가 육아와 병행하기에 가장 편리해서 오히려 더 인기가 많은 편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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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일제와 시간제는 똑같이 정규직이고 모든 조건이 차별 없이 동일한데 오직 ‘근무시간’만 차이가 나죠. 짧은 시간 일한다고 해서 노동 연속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은 누구도 하지 않아요. 매일 출근하는 데 왜 흐름이 끊기겠어요?

이어 봄나래씨는 “아이를 독일에서 낳지 않은 탓에 육아휴직(엘턴자이트)와 부모수당(엘턴겔드) 수혜 대상조차 아니었지만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면서 유연한 근무 환경이 돌봄에 가장 효과적이라고 말했다.

민주씨 역시 “정부 지원금보다 중요한 것은 여성이 ‘엄마’를 넘어 개인의 삶에 대한 성취감을 느낄 수 있도록, 일을 지속할 수 있도록 돕는 근무 구조와 이를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직장 동료의 인식”이라고 강조했다. “단축 근무로 전환하거나 돌발 휴직을 내도 동료에게 업무 부담이 더 간다는 부담은 전혀 느끼지 않습니다. 그 걱정은 회사가 해야 할 몫이라는 생각이 당연하게 사회에 깔려 있거든요."

이처럼 엄마가 눈치 보지 않는 근무 환경은 가족 친화적인 법과 제도에 기반한다. 통상 근무시간이 주당 35~40시간인 전일제와 주당 20시간 이하인 시간제 근무는 모두 정규직으로, 노동법상 같은 법적 권리와 동일한 사회보장 혜택을 가진다.

특히 여성들이 출산·육아와 커리어 중 한쪽을 포기하지 않도록 한 점이 눈에 띈다. 독일의 육아휴직 제도 ‘엘턴자이트’ 역시 엄마의 경력 단절을 최대한 방지하는 구조로 짜여 있다. 최대 3년 간의 휴직 기간 중 12개월 동안 지급하는 ‘부모 수당’은 남편이 휴직하는 경우에만 2개월이 연장돼 아내의 독박 육아를 방지한다. 이어 2015년 추가된 ‘엘턴자이트 플러스’ 제도는 부모가 12개월을 꽉 채워서 쉬지 않고 일찍 복귀해 시간제 근무를 하더라도 부모수당을 24개월에 나눠 자유롭게 받을 수 있도록 했다.

이처럼 정부가 이끌고 기업이 적극 협조한 가족친화적 근무 환경 덕분에 독일의 여성 취업률과 합계출산율은 각각 2000년대 초반 약 58%,1.3명 내외에서 2021년 기준 72%, 1.58명으로 상승했다.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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