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리포트] 넘쳐나는 ‘정의의 사도’

2025-01-26

독선과 망상에 사로잡힌 상태

근거 없는 거짓말·폭력 행사도

정의 구현 위한 방편이라 생각

혼란 잡을 정치권도 방조 논란

일본 효고현 다케우치 히데아키(竹內英明) 전 효고현의회 의원이 지난 18일 세상을 떠났다. 경찰은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보고 있다. 생전 그는 자신과 가족을 겨냥한 비방중상, 위협에 큰 고통을 주변에 호소했다고 한다.

불행은 사이토 모토히코(齋藤元彦) 효고현 지사의 직원 대상 갑질, 지사 지위를 이용한 부적절한 처신 등을 주장하는 효고현청 국장의 내부고발이 지난해 3월 터져나오면서 시작됐다.

내부고발은 사이토 지사가 물러나야 한다는 주장으로까지 이어지며 파문이 확산됐고, 효고현의회는 다케우치 전 의원을 포함한 특별위원회를 구성해 조사에 나섰다. 이 과정에서 고발 내용을 뒷받침하는 현청 직원의 증언 등이 언론을 통해 알려졌고, 버티던 사이토 지사는 결국 사임했다.

하지만 끝이 아니었다. 사이토 지사가 자신의 사임으로 실시된 선거에 나서 당선돼 지사로 복귀하면서 상황은 복잡해졌다. 선거 과정에서 선거 결과가 나온 이후 사이토 지사 지지자 일부가 특별위원회를 이끌었던 이들을 지속적으로 공격했다. ‘사이토 서포터’를 자임한 ‘NHK로부터 국민을 지키는 당’ 대표 다치바나 다카시(立花孝志)가 대표적인 인물이다. 그는 특별위원회가 사이토 지사에게 유리한 정보를 은폐했다고 주장하며 위원들의 집을 찾아간 영상을 올렸다. 해당 영상은 수십만 회의 조회 수를 기록했고 “(사이토) 지사를 모함하고 현민의 눈을 속인 죄는 무겁다”는 등의 댓글이 달렸다. 심한 공포에 가족들을 대피시킨 위원도 있었다. 다치바나는 선거 후 다케우치 전 의원이 “체포될 예정”이라는 허위사실도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렸다.

이런 일련의 상황이 다케우치 전 의원의 죽음을 이끌었다. 하지만 다치바나는 책임을 느끼지 않는 듯 보인다. 아사히신문에 따르면 다케우치 전 의원이 세상을 떠난 뒤에도 “체포되는 게 나았다”거나, 체포가 예정되어 있었다는 것이 허위라는 보도를 “거짓말”이라고 단언하는 등의 태도를 보였다. 사이토 지사는 “분별없는 비방중상 등을 멈춰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으나 다치바나의 행위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언급을 피했다.

다케우치 전 의원의 죽음을 둘러싸고 효고현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에는 생각이 다른 상대방에 대한 비방과 위협, ‘아니면 말고 식’의 허위사실 유포, 책임의 부재가 두드러진다. 지난해 12월 계엄령 선포 사태 이후 한국 상황과 닮았다.

상당한 수준의 민주주의 시스템을 이룬 21세기 한국에서 일어날 것이라 상상조차 못했던 어처구니없는 사태는 초유의 혼란으로 이어지고 있다. 어떻게 헤쳐갈지, 무엇이 옳은 방향인지를 두고 논쟁이 뜨겁다. 치열한 고민의 과정에서의 충돌은 마땅한 것으로 크게 걱정할 건 아니다. 문제는 ‘나만 옳으니 이견은 허용하지 않겠다’는 독선이다. 지난 19일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구속영장을 발부한 서울서부지방법원에서의 난동은 극단적인 사례다. 법원을 부수고, 판사와 법원 직원들을 위협한 난동 가담자들은 자신들의 행위를 선이라고 여겼을 것이다. 가당치도 않은 이런 확신은 SNS, 유튜브 등에서 좌우를 가리지 않고 넘쳐난다. 그들은 스스로를 ‘정의의 사도’인 양 여기는 듯싶다. 이런 망상 속에서 생각이 다른 사람은 악으로 치부된다. 근거도 없는 거짓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고, 폭력조차도 ‘정의사회 구현’을 위한 마땅한 방편이라 생각하는 이유다.

혼란을 바로잡아야 할 정치권도 마찬가지다. 정치적 이익을 두고 주판알을 튕겨 본 게 분명한 말과 행동에 거리낌이 점점 없어지고 있다. 법원 난동을 옹호하고, 폭력을 선동한다고 해석해도 무방한 발언과 행태를 보며 정치인으로서 최소한의 양식은 갖추고 있는 것인가 싶은 의심마저 든다.

치열한 논쟁과 그에 따른 갈등은 자연스럽다. 문제는 그것이 치유와 화해, 건강한 합의로 이어질 수 없는 형태로 표현되는 것이다. 다케우치 전 효고현의원의 죽음과 서부지법 난동 사태는 이런 문제가 낳은 처참한 결과다.

누군가는 ‘심리적 내전’이라고 평가하는 지금 상황을 제대로 된 ‘종전’으로 마무리할 역량을 우리는 갖고 있는 것일까.

강구열 도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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