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추픽추 선언문·이시마 성명 채택
‘미국 우선주의’ 앞세운 트럼프 경계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가 다자간 교류를 기반으로 한 역내 경제발전 도모라는 비전을 공유하며 16일(현지시간) 막을 내렸다. 이번 정상회의는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을 앞두고 보호무역 기조가 강화될 수 있다는 우려 속에 선제적으로 자유무역 가치에 방점을 뒀다는 해석이 나온다.
APEC 21개 회원국 정상과 대표는 이날 페루 수도 리마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마지막 세션을 끝으로 전체 공식 일정을 마무리했다. 의장국 페루의 디나 볼루아르테 대통령은 폐막 연설에서 “우리는 역내 경제성장과 회복력을 위한 공동의 약속으로 단결하고 있음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APEC 회원국은 다자무역 질서에 대한 지지를 재확인하는 이른바 ‘마추픽추 선언문’을 채택했다. 선언문에는 “자유롭고 개방적이며 공정하고 차별이 없고 투명하고 포용적이며 예측 가능한 무역 및 투자 환경을 조성하기 위한 노력을 이어갈 것”이라며 “공정한 경쟁을 촉진하기 위해 시장을 개방하겠다는 우리의 의지를 재확인한다”는 내용 등이 담겼다.
APEC 회원국은 ‘공식 경제’와 ‘글로벌 경제’로 전환을 촉진하기 위한 ‘리마 로드맵(2025~2040)’ 지지 의사도 밝혔다. 공식 경제는 합법적 틀 안에서 이뤄지는 경제 활동을 뜻한다. 이른바 ‘지하 경제’나 미신고 가사노동 등을 아우르는 비공식 경제의 반대 개념이라고 페루 정부는 소개했다. 로드맵에는 공식·글로벌 경제로의 전환이 경제성장 촉진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강조하면서, APEC 지역 전체에 비공식 경제가 널리 퍼져있는 만큼 포괄적 접근방식이 필요하다는 내용이 담겼다.
APEC 회원국은 아울러 아시아·태평양 자유무역지대(FTAAP) 의제에 대해 새로운 시각을 담은 ‘이시마(Ichma) 성명’도 내놨다. 이시마는 페루 과거 리마 수도권 지역에 자리 잡았던 문명이다. 볼루아르테 대통령은 “아시아 태평양 지역의 경제 통합, 무역과 투자 촉진 등을 통해 새로운 국제무역 이슈에 대처하기 위한 노력”이라고 설명했다.
페루 일간 엘코메르시오 등은 회의 기간 일부 정상이 자유무역의 가치를 강조하려는 모습을 보였다고 전했다. 특정 국가나 지도자에 대한 구체적 언급은 없었지만, 사실상 ‘미국 우선주의’를 강조해온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을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고 현지 매체들은 분석했다.
이번 회의에서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이나 중동 분쟁과 같은 이슈를 직접적으로 다루거나 선언문에 관련 내용을 명시하는 움직임은 없었다고 EFE통신은 보도했다. 2022년 APEC 정상회의에선 대다수 회원국이 우크라이나에 대한 러시아의 침공을 비판했지만, 지난해에 이어 올해는 주요 정상의 양자 회담에서만 역내 정세에 관한 논의가 오갔다. 일부 회원국 사이에선 APEC이 지정학적 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자리가 아니라는 인식이 공유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볼루아르테 대통령은 내년 APEC 정상회의 의장국 정상인 윤석열 대통령에게 페루 전통 양식으로 만든 ‘의사봉’을 전달했다. 내년 회의는 경주에서 개최될 예정이다. 이는 도널드 트럼프 2기 정부 출범 후 처음 열리는 APEC 정상회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