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초동 법풍경] "시간 간다고 잊히지 않아"…법정서 '계엄 트라우마' 호소하는 군인들

2025-11-03

'법조 1번지' 서울 서초동에서는 하루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법 때문에 울고웃습니다. [서초동 법풍경]은 법원과 검찰·법조계 인물·실제 재판의 이면 등 취재에 다 담지 못한 에피소드를 알기 쉽게 전합니다.

[서울=뉴스핌] 백승은 기자 = "제가 그걸 어떻게 잊습니까. '문 부수고 의원 (끄집어내)' 얘기도 마찬가지입니다. 시간이 간다고 잊히는 게 아닙니다."

"이 내용을 알면서도 침묵하는 저 자신이 부끄럽고, 누구한테 말을 못 한다는 (중략) 잠이 안 오고, 저 혼자서 스트레스를 계속 받는 것 같아서 말하게 됐습니다."

'12·3 비상계엄'이 발생한 지 한 해가 꼬박 채워지는 가운데 내란 재판은 여전히 현재 진행 중이다. 수많은 증인이 서울중앙지법 법정에서 본인이 겪은 비상계엄에 대해 말했다.

법정에서 명확한 상황 설명을 위해 개인적인 경험도 한 숟갈 섞이곤 한다. 당시 적지 않은 사람들은 연말 송년회를 즐기고 있었다고 언급했다. 비상계엄 선포 직후 국회에 출동했던 한 정일현 전 서울 영등포경찰서 강력7팀장(경감)은 "부끄럽지만 그 전에 술을 조금 한 상태라 계엄 상황인지 제대로 몰랐다"라고 털어놓기도 했다.

쌀쌀한 날씨에 컨디션이 좋지 않은 사람도 있었다. 김영호 전 통일부 장관은 "상태가 악화해 독한 약을 처방받았다. 기억에 일부 혼돈이 있지 않았나 생각된다"라 진술을 번복하기도 했다. 한덕수 전 국무총리에게 '대통령이 계엄 선포하려는 것 같다'라는 말을 들었다고 진술했지만 이같은 말을 들은 적이 없다고 뒤집은 것이다.

그 시각 가장 바쁘게 움직였던 인원 중 하나는 군인들이다. 연말의 들뜬 분위기는 없고, 늦은 밤까지 두 눈을 또렷하게 뜨고 있던 군인들이 현장에 있었다. 누군가는 국회에서, 누군가는 선거관리위원회에서 당시의 상황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 '침묵한 자신이 부끄러워서' 법정서 작심발언한 군인

"총 얘기를 했던 것 같다. '계엄을 다시 하면 된다'라고……"

지난 8월 18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5부(재판장 지귀연) 심리로 열린 윤 전 대통령의 내란우두머리 혐의 재판에서 이민수 중사가 이렇게 말했다. 네 차례 수사기관의 조사에서는 한 번도 꺼내지 않았던 얘기였다.

이 중사는 비상계엄 당일 이진우 전 수도방위사령관이 탄 차량을 몰아 국회로 출동한 인물이다. 이 중사는 당시 이 전 사령관과 윤 전 대통령이 두 차례가량 통화했지만, 수사기관 조사 당시에는 통화 내용에 대해서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라고 했다. 이날 증인으로 신청한 쪽조차 검찰이 아닌 윤 전 대통령 측이었다.

이날 법정에서 이 중사는 두 번째 전화에서 윤 전 대통령이 총과 계엄을 다시 하면 된다고 했다고 밝혔다. 총과 관련해서는 "총을 이용하라는 취지로 말했던 것 같다"라고 상세히 설명했다. 이 중사의 발언은 당시 차에 함께 탑승해 있었던 오상배 전 수방사령관 부관(대위)의 증언과 일치한다.

"이 사건을 이 내용을 알면서도 침묵하는 저 자신이 부끄럽고, 누구한테 말을 함부로 못 한다는 내용에 잠이 안 오고 저 혼자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거 같아서 말하게 됐습니다." 이 중사는 진술을 번복하게 된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방청석을 향해 등을 돌린 채였기에 이 중사의 얼굴은 볼 수 없었지만, 해당 발언을 하는 내내 목소리가 크게 흔들리고 있었다.

◆ 비상계엄 투입 장병 절반이 '심리적 부담 경험해' 답변

"저는 부하들을 못 속입니다."

'3스타' 곽종근 전 육군 특수전사령관 역시 지난달 30일 같은 재판부가 심리하는 윤 전 대통령의 내란우두머리 재판에 증인으로 서 울먹이는 목소리로 증언했다. 이날 곽 전 사령관이 증언하는 모습은 재판 중계 카메라에 생생히 담겼다. 피고인석에는 윤 전 대통령이 함께하는 가운데 한 증언이었다.

이날 곽 전 사령관은 작년 10월부터 윤 전 대통령에게 '비상대권'이라는 단어를, 11월 9일에는 '특별한 방법이 아니고서는 해결할 방법이 없었다'라는 말을 들었다고 했다. 11월 9일 이후로 곽 전 사령관은 머릿속에서 비상계엄을 생각했다고 했다.

곽 전 사령관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 표결 당시 윤 전 대통령에게 '문짝을 부수고서라도 안으로 들어가 인원들을 다 끄집어내라'고 지시했다는 취지로 증언했다. 이는 국회와 헌법재판소에서 진술한 내용과 같다.

관련 증언을 하며 곽 전 사령관은 "이것도 트라우마 아닌 트라우마 같다. 지금도 TV를 보면 그 생각이 계속 나고, 자면서도 생각난다"라고 말했다. 짧은 문장이었지만 곽 전 사령관은 입가를 만지작거리거나 허공을 바라보는 등 여러 번 망설이는 모습이었다.

부하들을 속일 수 없다는 말과 함께 "그 부분(비상계엄 관련)은 그래서 제가 사실대로, 정직하게 얘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라며 "숨긴다고 될 것도 아니고, 말 안 한다고 안 될 게 아니지 않냐"라고 강조했다.

한편 비상계엄 투입 장병 중 상당수가 이 중사와 곽 전 사령관과 같은 심리적 부담을 겪고 있다는 사실은 수치로도 확인된다. 국가인권위원회가 비상계엄 투입 장병을 대상으로 실시한 온라인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407명 중 52.1%(212명)가 '계엄 투입에 따른 심리적 부담을 경험했다'고 답했다.

부담 요인으로는 '계엄 투입 자체(26.3%)'가 가장 컸다. 언론 보도(25.1%), 이웃 등의 평가(22.1%), 형사처벌 가능성(20.1%), 인사상 불이익(17.7%) 등이 뒤를 이었다.

100wins@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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