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59년 여름. 날씨는 부드럽다. 홀로되신 할머니와 손자가 저녁을 난다. 마당 한가운데 놓인 평상에서 노닥거린다. 주변은 어둑어둑해진다. 호롱불도 켜놓지 않았다. 온 동네가 칠흑 같은 암흑이다. 말린 쑥대를 태운다. 모기는 연기 냄새가 맵다고 넌덜머리 친다. 별빛이 마당을 연한 은빛으로 비출 뿐이다. 장난감은 없다. 은하수가 살짝 기울어져 진 채 북쪽에서 남쪽으로 그 웅장한 자태를 과시하고 있다. 이 세상 그 어떤 것보다 더 크다.
저녁을 먹을 때 밥은 늘보리로 가득 차있다. 저녁을 든 후, 할매! 언제쯤이면 쌀밥 먹어? 손자가 묻는다. 저 하늘 은하수가 정지 간(부엌) 앞으로 오면 쌀밥 먹는다 한다. 손자는 어느덧 스르륵 잠이 든다. 밤이 더 깊어지기 전, 할머니는 손자를 안고 방으로 옮겨 눕힌다. 새벽녘에 손자가 이슬 맞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날이 샌 다음 해가 동녘을 밝힐 때쯤 손자는 일어나 오른손으로 눈을 비비며 잠을 깬다.
이 무렵 손자는 초등학교 4학년 또는 5학년쯤 이었다. 당시 대한민국 정부는 국민에게 전력을 공급하기 위해서 원자력 기술과 산업을 발전시키려 했다. 이승만 대통령은 원자력을 이용해 에너지 자립이라는 비전을 설정했다. 원전 인재개발을 위해 대학에 원자력학과를 설립하고, 위 할머니와 함께하는 손자 또래에게 가르칠 초등학교용 원자력 교과서를 만들었다. 초등학교 6학년용 우리들의 원자력, 알기 쉬운 초등 원자력 공부 5학년용, 두 종이다. 그 교과서가 최근 청계천 중고서점에서 발견됐다. 이 교과서는 원자력문화재단에 기증돼 보존 전시 중에 있다. 당시 달빛에 저녁을 맞이하는 초등학생들에게 교과서를 통해 미래 원자력 불빛을 전하고 있는 것이다.
5학년 이 교과서를 지은이가 말한다. '원자란 어떠한 것이며, 그 속에서 어떻게 그 무서운 원자력이 나타날까? 원자력은 자연의 비밀을 풀어 주는 열쇠다. 이 원자력은 지구를 부수어 버릴 수도 있고, 또 잘만 쓰면 그것을 살기 좋은 낙원으로 만들 수도 있다. 1g의 원자(우라늄) 연료로 3000톤의 석탄이 탈 때에 나오는 열을 얻을 수 있다. 무게 기준 300만배. 작은 그릇에 들은 휘발유라 할지라도, 경우에 따라서는 폭발해서 사람이 죽고 집을 부수기도 한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들은 휘발유를 버리고 야만 생활을 할 수 없다. 우리들은 휘발유로 자동차, 트럭, 비행기 등을 움직이고 있다. 원자력을 폭탄에 이용하면 우리들 문명은 전멸한다. 그러나 원자로를 이용하면, 자동차에 이용되는 휘발유와 같이 안전하며, 우리들의 노력을 줄이고, 병을 없애고, 식량을 증산하게 될 것이다. 장차 원자력에 대해 더욱 연구될 것이며, (초등학교 5학년) 여러분들도 이러한 연구에 참가하게 될 것이다. 원자력을 인류 평화를 위해 쓰게 되면, 이 세상은 참으로 행복스럽게 될 것이다.'
초등학교 6학년용 교재에는 원자로의 원리를 설명하고 있다. '최초의 원자로가 분렬을 일으키게 되면 계속해서 튀겨나는 중성자로 말미암아, 급기야 원자 폭탄처럼 폭발할 위험이 있을 뿐 아니라, 무서운 방사선으로부터 일하는 이들을 보호하는 장치도 없었다. 방사선을 막으려면 두꺼운 콘크리트로 원자로의 둘레에 벽을 쌓아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시험을 하기 전까지는 원자로가 활동을 못 하도록 하며, 분렬이 위험 상태에 이르기 전에 중지시키는 장치가 필요하며, 과학자들은 카도미움(카드뮴, Cd)이라는 원소로 만든 금속의 막대기를 원자로 속에 집어 넣는다. 카도미움은 튀겨 나오는 중성자를 그 속에 머무르게해, 다른 원자핵에 부딪치지 못하게 하는 성질이 있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6학년에게 원자력 발전의 핵심 기술을 언급하고 있다. 퀀텀 점프를 한 것이다. 요즈음 땡볕 더위에 에어컨을 켜 놔도 전원이 차단되지 않는다. 무한 전력공급 체계를 만든 에너지 자립에 공헌한 선현, 선각자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갖는다.
여호영 지아이에스 대표 yeohy_gis@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