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 축소와 AI 개발 정책의 딜레마… 신재생 에너지로 대체 어려워 [뉴스+]

2025-06-28

AI 개발 고도화 속 전 세계 전략 사용량 급증… “계속 늘어나는 중”

IEA, 데이터센터 전략 소비 비중 1.5%… 2030년엔 3∼8%로 증가

원전 필요하다는 목소리 커져… 당장 대체할 신재생에너지 모자라

한국 원전 갈림길… 이 대통령, 대선 땐 생산 확대 없는 유지 입장

모피어스는 네오에게 파란 약을 먹으면 달콤한 가상 세계에 계속 살 수 있게 되고, 빨간약을 먹으면 고통스러운 진실을 알 수 있게 된다고 말한다. 네오는 진실을 알고 싶어 빨간약을 먹고, 자신을 비롯한 수많은 인간이 지금까지 잠에 빠진 채 AI(인공지능)를 위한 배터리로 이용됐다는 진실과 대면한다.

1999년 개봉한 워쇼스키 형제의 SF영화 ‘매트릭스’와 후속 시리즈는 뛰어난 완성도와 신선한 소재로 큰 팬덤을 일으켰다.

우리가 사는 현실은 과연 진짜인가에 대한 의심을 불러일으킨 이 영화는 비록 허구지만, 인간이 AI에게 정복당할 것이라는 우려는 점점 커지는 중이다. 상상력을 동원한 영화적 장치지만, 적어도 영화에서처럼 AI가 엄청난 전력을 필요로하는 것도 사실이다.

27일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2024년 기준 전 세계 데이터센터의 전력 소비량은 약 460테라와트시(TWh)로, 이는 전 세계 전력 소비의 약 1.5%에 해당한다. 이 수치는 2030년까지 3∼8%로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처럼 데이터센터의 전력 소비량이 폭증하는 이유는 AI 때문이다. AI에 특화된 대형 데이터센터는 연간 약 100메가와트(㎿)의 전력을 소비하는데, 이는 약 10만 가구의 연간 전력 소비량과 맞먹는다. 일부 초대형 데이터센터는 이보다 20배 이상의 전력을 소비할 것이라는 게 IEA의 예상이다.

좀 더 쉽게 비교해보면, 미국의 가정에서 평균적으로 사용하는 연간 전력은 약 1만600킬로와트시(㎾h)이고, 10MW 규모의 데이터센터는 연간 약 8억7600만㎾h의 전력을 쓴다. 다시 말해 8만2600가구가 쓰는 전력을 1개 데이터센터에서 소비한단 뜻이다.

이 데이터센터가 몇 개 되지 않는다면 큰 문제가 아닐지도 모르지만, 실제로 미국의 경우 2023년 기준 전체 데이터센터의 전력 소비량은 147TWh로 플로리다 주 전체의 연간 전력 소비량과 맞먹는다.

이마저도 지금 현재의 수치로 앞으로 AI의 전력 사용량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AI의 사용이 늘어나고 있고, AI 기술도 고도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통상적으로 더 높은 수준의 AI 결괏값을 뽑아내려면 더 많은 전력이 필요하다. 집에 흔히 있는 PC와 마찬가지다. PC 그래픽카드를 성능이 더 뛰어난 최신 제품으로 바꿀 경우 더 많은 전력이 요구되고, 더 많은 열이 배출된다. (이 때문에 AI의 고도화는 지구온난화를 가속화할 것이란 우려가 크다.)

이런 이유로 원자력 발전은 다시금 전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IEA 등은 2024년에서 2030년 사이 AI 연산 비중이 연평균 15% 성장해 2030년엔 전 세계 전력의 약 3%인 945TWh를 사용할 것으로 전망한다. 2023년 프랑스 전체 소비 전력인 446TWh의 2배 이상이다.

특히 AI를 선도하고 있는 미국 데이터센터는 전력 사용량은 2023년 147TWh에서 2030년엔 606TWh로 미국 전력의 무려 11% 이상을 차지할 것이란 게 매켄지의 관측이다.

마이크로소프트와 오픈AI가 구상하는 AI를 위한 데이터센터는 원전 5기의 전력을 필요로한다는 외신의 보도도 있다.

시장분석기관인 골드만삭스는 2030년까지 데이터센터의 전력 수요 증가를 충족시키기 위해 85∼90GW 용량의 새로운 원자력 발전이 필요하다고 전망했다.

실제 뉴욕주는 23일(현지시간) AI 데이터센터의 전력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1GW 규모의 원자력 발전소를 건설하겠다고 밝혔고, 구글은 2030년까지 500㎿의 전력을 공급받기 위해 카이로스 파워와 소형 묘듈원자료(SMR) 개발 협력을 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의 원자력 발전 용량을 2050년까지 4배로 늘린다는 계획이다.

미국을 제외한 각국의 고민도 커지고 있다. 스위스는 2017년 주민투표로 신규원전을 금지했는데, 지난해 8월 정부가 신규원전 금지 해제 법률을 추진한다고 밝히며 가능성을 열었다. 벨기에도 AI 수요가 늘어나며, 2003년 제정된 탈원전 법을 올해 5월 의회가 공식 폐기했다.

대만은 5월17일 모든 원전이 가동을 멈추며 원전 없는 나라가 됐다. 하지만 야당인 국민당 주도로 ‘원전 재가동’ 국민 투표를 추진하는 등 내홍이 일고 있다.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는 대만의 원전이 모두 멈춘 뒤 같은 달 24일 대만에서 열린 ‘AI 트렌드 통찰’ 포럼 강연에서 “대만은 원전에 반드시 투자해야 한다. 원전에 낙인을 찍어선 안 된다”고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TSMC나 엔비디아 등이 국가의 핵심 산업으로 성장한 대만으로선 여전히 고심이 깊을 수밖에 없다.

원전의 위험성, 핵폐기물 후처리 문제는 원자력 발전이 풀어야 할 숙제다. 각국이 대체 에너지 개발에 열을 올리는 까닭인데, 단시간에 빠르게 늘어나는 전력 수요를 신재생에너지만으로 감당하기는 어려운 게 현실이다.

우리나라 원전 정책은 갈림길에 서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대선 후보 토론에서 “원전이 기장 위험한 에너지란 생각은 여전하다”면서도 “이미 지어진 원전을 계속 잘 쓰자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어 “추가로 원전을 짓는다면 어디에 지을 터가 있는지 묻고 싶다”고 말했다. 원전 추가 건설에 부정적 입장을 밝히면서도, 당장 발전을 중단하지는 않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이 대통령의 1호 공약인 AI 세계 3대 강국 실현을 위해서도 당장의 발전 중단은 어려워 보인다. 이재명 대통령은 하정우 네이버클라우드 AI 혁신센터장을 AI 미래기획수석에 임명하고, 배경훈 LG AI연구원장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에 내정하며, 관련 정책에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엄형준 선임기자 ting@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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