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도 벌써 중순이다. 예년 같으면 춥다고 느껴야 할 때, 나는 오늘 더워 죽는 줄 알았다. 그렇지만 축제나 행사하기에는 좋은 딱 좋은 것 같다.
내년에 촬영하는 영화 리허설이 있어서 서울엘 다녀왔다. 이재권 전 이장님은 일정 때문에 KTX를 타고 따로 왔고, 동네 오래비 영근, 나, 연출하는 교수님, 촬영 감독님, 이렇게 울산에서 다섯 명이 갔다. 우리가 먼저 도착했고, 잠시 후 연기자들이 열한 명 왔다. 그들 중에 내가 텔레비전과 영화에서 자주 보던 배우도 대여섯 분씩이나 왔다.
한 분은 성함이 기억나지 않으나 드라마 ‘도깨비’ 마지막 편에서 정비공 역을 맡았던 분이다. 또 한 분은 선한 얼굴이었는데 출연한 드라마 제목이나 맡았던 배역은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지만, 항상 선한 역을 맡았던 분이다. 또 한 분은 무서운 역과 강한 역을 맡는 배우님이었다.
촌에서 올라간 나와 우리는 종일 대사를 맞췄고, 리허설이 끝난 뒤 바로 앞 통닭집에서 맥주를 마시며 우리들의 이야기인 반구대 영화가 대박 나기를 기원하는 건배도 했다. 술을 못 먹는 나야 콜라로 건배했지만.
교수님이 드라마, 영화 이야기를 작년부터 했는데 지난 일요일 오후 4시쯤 갑자기 나를 두왕동 사무실로 오라 했고 오후 6시부터 새벽 4시까지 표준말로 쓰인 시나리오를 내가 쓰는 사투리로 바꿨다. 오늘 리허설까지 하고 대사를 맞춘 배우들과 대박을 기원하는 건배까지 하고 보니 이제야 실감이 났다.
저녁 7시가 조금 안 됐을 때 우리는 회식 자리에서 나와야 했다. 운전을 맡은 촬영 감독님이 안전하고 시몬스침대처럼 부드럽게 운전을 해줘서 차에서 잠시 잠을 잘 수 있었다. 촬영 감독님의 운전은 마치 내 남편이 하는 듯 편안했다. 먼 거리를 와야 했기에 조금 이른 듯한 시간에 출발했음에도 자정이 다 되어서야 도착했다.
이렇게 늦은 시간에 반구대 입구에 도착하니 함께 간 동네 오래비 차 앞 유리에는 마치 비 온 듯이 물 서리가 흠뻑 내렸고 근처 대곡댐 영향으로 고개 ‘만디’는 옅은 안개가 끼어 가뜩이나 눈이 나쁜 오래비를 쩔쩔매게 한다. 옅은 안개와 물 서리가 앞 유리에 내리니 오래비는 연신 와이퍼를 저어댔고, 눈마저 나쁜 오래비는 운전대를 양손으로 바짝 잡고서는 벌벌거리며 반구서원 앞에 도착했다.
그런데 낭떠러지 쪽에 허연 건물이 눈앞에 떡 하니 나타났다. 나도 엄청나게 놀랐지만, 오래비는 더 엄청나게 놀랐다. 짐작컨대 이번 토요일 전국 궁도대회 때문에 필요한 부대 시설인 듯하다.
작년이었던가, 집청정 앞 상수도 보호구역 안에 궁도 관역이 설치되었다. 시위를 당기는 모습을 나는 보지 못했으나 활시위를 당기는 걸 본 사람들은 경악했다. 과녁 사용을 마치고 철수했는지 민원으로 철수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어쨌든 탐방객 누군가가 민원을 넣고 난 다음 날 철수했다.
이번 주말은 전국 궁도대회가 인보에 있는 ‘화랑 운동장’에서 개최된다는 이야기를 며칠 전에 들었다. 그런데 생뚱맞게, 그것도 수자원 보호구역 안에 떡 하니 설치가 또 되어있는 것이다.
과녁이 설치되어있는 곳 바로 옆은 길이 아름답다고 명승 지정이 되었고, 탐방객들에게는 이 길이 아름답다고 박물관에 타고 온 차를 주차해 두고 걸어갈 수 있게 유도하는 길이다. 지난주부터 우리 마을 산이 단풍들로 절정을 이루었고 걷기가 딱 좋은 기온으로 주말이면 탐방객들이 끊임없이 오고 있다. 그런데 안전 조치 하나 없이 여기에서 활시위를 당기려나 보다.
지난 올림픽 때 국가대표도 여기에서 4점이 나왔던 걸로 기억한다. 이번 주에 활시위를 당길 궁사는 그 국가대표보다 더 출중한 사람인가. 아무리 그렇다고 치더라도 이건 아니지 않을까. 골프공에 사람이 맞아서 죽었다는 기사도 나는 판에, 저 화살들이 여기저기 날아다니는 것도 위험하고, 무엇보다 수자원 보호구역 안에 저런 체육시설이 설치되려면 보호구역을 먼저 해지한 뒤에 해야 하지 않을까. 수자원 보호법이 엄청 엄중하던데 그 법에 잣대는 선별적으로 해당하는 것이었나. 딱히 저곳이 아니어도 집청정 안에는 과녁이 설치되어있어 탐방객들 대상으로 궁도 체험을 진행하고 있다.
이번 주말 우리 마을을 찾을 탐방객들은 목숨을 여유롭게 가져오셔야 할 것 같다. 이번 전국 궁도대회가 우리 마을, 아니 울산시나 울주군에 얼마만큼의 이익을 창출하는지는 알 수 없으나 우리 마을 주민과 반구대를 찾은 탐방객들의 안전을 먼저 챙겨 주셔야 하지 않을까요? 높으신 나라님들! 제발요, 우리같이 촌사람 목숨도 가엽게 여기시고 좀 챙겨 주세요.
나는 오늘 모처럼 피곤하면서도 서울 나들이, 그것도 말로만 듣던 신사동에서 텔레비전과 영화에서만 보던 배우들을 만나고 같이 리허설도 하고 왔다. 그냥 신기하고 재밌었다. 사투리를 쓰는 나를 보며 그들은 나를 더 신기해했고, 내가 쓰는 언어와 말투를 그들은 나에게서 배워야 한다. 오늘은 이렇게 행복한 하루로 마무리하고 싶었다. 그랬는데 전국 궁도대회가 끝이 나고 저 과녁이 철수해야 발을 뻗고 잘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손방수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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