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기업들은 때론 돈만 가지고는 설명하기 어려운 결정을 한다. 그 속에 숨어 있는 법이나 제도를 알면 더욱 자세한 내막을 이해할 수 있다. ‘알아두면 쓸모 있는 비즈니스 법률(알쓸비법)’은 비즈니스 흐름의 이해를 돕는 실마리를 소개한다.

공정거래위원회의 발표에 따르면 2024년 다단계판매 시장의 총매출액, 후원수당 총액, 다단계판매업자 수, 다단계판매원 수는 모두 전년보다 감소했다. 총매출액은 4조 9606억 원에서 4조 5373억 원으로, 후원수당 총액은 1조 6558억 원에서 1조 5099억 원으로, 다단계판매원 수는 720만 명에서 687만 명으로 줄었다. 각각 전년 대비 8.5%, 8.8%, 4.6% 감소한 수치다. 다단계판매업자 수는 112개에서 105개로 소폭 줄었다.
다단계판매 시장의 총매출액은 2022년 5조 4166억 원으로 최고치를 기록했다. 그 후 지속적으로 감소하면서 2024년에는 4조 5373억 원으로 2년 만에 1조 가까이 줄어들었다. 이처럼 다단계판매 시장의 규모가 감소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여파가 있다. 대면 영업은 중단됐고 판매 조직은 붕괴했는데, 시간이 한참 지났음에도 후유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판매 조직을 다시 구축하기 위해서는 신규 투자가 필요한데 경기가 침체해 투자 유치로 판매 조직을 회복하는 것이 어렵기 때문이다.
둘째, 국내 유통시장의 중심은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이동했지만 다단계판매업은 기존의 영업 관성으로 인해 여기에 적응하지 못했다. 다단계판매 조직 대부분은 비교적 연령층이 높아 온라인보다 오프라인을 더 익숙하게 여긴다. 사업의 미래를 위해 온라인 채널이나 젊은 연령층을 공략하는 것이 필요하나, 기존의 오프라인 판매 조직을 홀대하는 문제가 발생한다.
한 때 온라인 채널에서 젊은 층을 공략한 판매 조직이 있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온라인 재택 부업’ ‘SNS 유사 다단계’ 등으로 인한 폐해가 대대적으로 보도됐고, 온라인 진출 시도는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필자는 온라인 판매 조직의 흥망성쇠를 옆에서 지켜봤다. 다단계판매업의 온라인 전환은 시대적 흐름이다. 그러나 기존의 규제를 무시하고 의욕만 앞세워 많은 논란을 야기한 것도 사실이다. 국내 다단계판매업은 규제 준수와 신규 시장 개척 사이에서 방법을 찾지 못해 방황하고 있다.
셋째, 판매 조직 중 경제적 이익만을 추구하는 부류가 볼 때 다단계판매업은 매력적인 채널이 아니다. 무등록·유사 다단계, 유사수신업 등에서 활동하면 훨씬 더 많은 수입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최근 능력 있는 운영자나 판매 조직이 적법한 다단계판매업에서 이탈하는 사례가 증가하고 있다.
필자가 봤을 때 방문판매법을 준수하면서 활동하는 다단계판매업자는 오히려 지자체·경찰·공정위 등으로부터 이중, 삼중의 규제를 받는다. 규제 자체가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규제의 풍선효과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무등록·유사 다단계, 유사수신 업체 등도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데, 이들은 규제기관에 등록하지 않았기 때문에 현황이 파악되지 않고, 폭탄 돌리기가 끝나 다수의 피해자가 발생하기 전까지는 별다른 규제도 받지 않는다. 이 때문에 위험을 감수하고 이익을 추구하는 부류는 무등록·유사 다단계, 유사수신업에 과감히 뛰어들어 한탕 거둔 후 문제가 발생하기 전에 신속히 탈출하는 전략을 사용한다.
역삼, 선릉, 삼성, 청담 일대에서 적법한 다단계판매업은 사멸해가고 무등록·유사 다단계가 창궐하는 모습은 필자만의 추측이 아니다. 현직 판사의 저서 ‘빨대 사회’를 보면 적나라한 현실을 알 수 있다. 무등록·유사 다단계를 방치한 채 적법한 다단계판매업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잘 모르겠다.
넷째, 다단계판매 시장에도 양극화 현상이 극심해 신규 사업자가 진출하거나, 새로운 형태의 비즈니스를 소개하는 것이 어렵다. 공정거래위원회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상위 10개 다단계판매업자의 대부분은 외국계 회사다. 외국계 회사는 소규모 국내 회사에 비해 자본과 기술이 뛰어나다. 이에 더해 전산 구축, 후원수당 지급 등에서 융통성을 발휘할 수 있다.
업계에 있는 사람이라면 다음의 내용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것이다. 다단계판매업에서 전산은 핵심이다. 다른 것이 다 무너져도 전산만 확보하면 재기할 수 있다. 그 전산은 국내에 있는 것보다 외국에 있는 것이 안전하다.
또한 유통 환경의 글로벌화로 외국에서 영업하고 외국에서 수당을 받는 것은 어색하지 않은데, 외국에서의 영업 활동은 우리나라 규제기관이 파악하기 어렵다. 결국 외국계 회사는 국내 회사에 비해 전산 구축 및 운영, 후원수당 지급 등에서 압도적으로 유리한 위치에 있고, 격차는 점점 벌어지고 있다.
다섯째, 이 모든 상황이 결합해 최근 시장에서 새로운 인력이나 새로운 자본이 투입된 사례, 또는 히트 상품을 찾기 어려워졌다. 과거에는 주기적으로 히트 상품이 있었다. ‘사해 소금’ ‘가시오가피’ ‘천연 생약’ ‘대마 성분’ 등 이런저런 네이밍과 성분으로 시장에서 인기를 끌었던 제품이 있었지만, 최근에는 이러한 사례를 찾기 어렵다.
특히 의아한 것은 화장품이다. 화장품은 다단계판매업의 핵심 품목이다. 그러나 최근에는 화장품 시장에서 다단계판매업의 존재감이 드러나지 않는다. 과거 절대강자였던 2개 회사의 비중이 줄었고, ODM에 외주를 줘 개발하는 것이 일반화하면서 좋은 기획력과 마케팅만 있으면 승부를 보는 것이 가능해졌음에도 말이다. K-뷰티 현상에도 다단계판매 업계는 전혀 편승하지 못하고 있다.
여기까지 시장의 비관적인 상황을 언급했다. 업계에 있는 사람이 보면 함부로 말한다고 섭섭하게 느낄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필자는 다단계판매업이나 방식은 쉽게 소멸하지 않을 테니 시장의 변화에 적응하는 업체라면 세를 금방 확대할 것으로 생각한다. 그 방안은 다음 칼럼에서 살펴보겠다.
정양훈 법무법인 바른 파트너 변호사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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