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바이오헬스 기업들이 아시아에서 의료 선진국으로 꼽히는 일본 시장 진출에 속도를 내고 있다. 여전히 일본은 신약 개발 경험과 글로벌 시장 진출 면에서 우리나라보다 앞서지만, 국내 기업들의 기술력이 세계 수준으로 올라서면서 시장 침투에 나선 모습이다.
10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강스템바이오텍은 첨단재생의료 분야 선진국인 일본에서 재생치료 사업을 시작했다. 앞서 회사는 지난 달 일본 후생노동성으로부터 지방 줄기세포를 활용한 2종 재생의료 제공계획에 대한 승인을 받아 시장 진출 채비를 마쳤다. 회사는 이달부터 만성통증 환자들의 지방 조직에서 지방 줄기세포를 분리·배양해 일본 의료기관에 공급한다는 방침이다.
또 회사는 제대혈 줄기세포를 이용한 1종 재생의료 제공계획에 대해서도 후생노동성의 심사를 받고 있다. 최종 승인되면 회사는 아토피 치료제로써 자사의 '퓨어스템-에이디주'를 환자들에게 즉시 사용할 수 있게 된다. 자가가 아닌 동종(타가) 줄기세포를 사용하는 1종 재생의료는 고위험군으로 분류돼 승인 절차가 매우 까다롭고 복잡하지만, 기존 항체치료제 불응 환자들의 치료 접근성을 높인다는 점에서 긍정적 의견을 받고 있어 빠르면 2분기 내 허가 받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일본 재생의학협회에 따르면 올해 일본 재생의료 시장 규모는 2900억엔(2조6800억원) 규모로 예상되며, 오는 2040년엔 9100억엔(약 8조 4300억원)으로 확대가 전망된다. 그 중 만성통증 질환은 일본 내 줄기세포 기반 질환별 재생의료 중 약 25.8%로 높은 점유율을 보이고 있다. 일본 아토피 환자 수는 약 150만명으로, 한국의 3배 정도로 알려진다.
메디포스트는 일본에서 무릎 골관절염 줄기세포 치료제 '카티스템'의 임상3상을 진행 중이다.
동종 제대혈유래 중간엽줄기세포를 주성분으로 하는 카티스템은 이례적으로 일본 임상 1상과 2상을 생략하고 바로 임상 3상에 진입한 국내 최초의 첨단바이오의약품이다. 지난 2012년 국내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품목허가를 받았고, 일본 후생노동성 산하 의약품의료기기종합기구(PMDA)로부터 국내 임상 결과를 인정받았다.
카티스템 일본 임상3상은 2023년 첫 환자 투약을 시작으로 일본 총 13개 기관에서 중등증 및 중증(K&L 2~3등급)의 무릎 골관절염 환자 총 130명을 대상으로 진행됐고, 지난해 11월 환자 투약을 마쳤다.
회사는 카티스템의 일본 시장 진출을 위한 사업개발 논의에 속도를 내고 있다. 특히 1000명에 달하는 국내 카티스템 치료 환자를 대상으로 실사용 근거(RWE)를 확보, 분석 중에 있으며 향후 일본 보험급여 및 품목허가 제출을 위한 근거 연구 자료로 활용한다는 방침이다.
한올바이오파마는 미국 파트너사 이뮤노반트와 함께 자가면역질환 치료제 '바토클리맙'(HL161BKN) 임상3상을 일본에서 진행하고 있다. 올 하반기 탑라인(Top-line) 결과 발표 후 2027년 상용화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최근에는 후생노동성으로부터 갑상선안병증(TED)에 대해 희귀의약품 지정(ODD)을 받았다. ODD는 희귀 질환의 치료와 예방을 위한 의약품으로, 유병인구가 약 5만명 이하에 속하면서도 환자 수, 미충족 수요(medical needs), 개발 가능성 등 요건을 충족하는 치료제에 부여된다. 현재 일본에서 갑상선안병증을 앓고 있는 환자는 약 3만5000명으로 추정되고 있다.
한올바이오파마 정승원 대표는 "이번 희귀의약품 선정은 한올바이오파마의 연구개발 역량이 일본 시장에서 경쟁력을 인정받은 결과"라며 "바토클리맙은 임상 단계부터 환자들이 집에서 직접 투약을 하고 있어 의료인의 모니터링 없이 자가투여 가능한 치료제로의 허가를 받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의료 인공지능(AI) 기업들의 시장 진출도 늘고 있다. 일본은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어 의료 수요가 높고, 정부 차원에서도 의료AI 산업 활성화를 위해 가산 수가 형태의 건강보험 급여 제도를 지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일정 시설 조건을 갖춘 의료기관에서 AI 소프트웨어를 활용할 경우 이에 따른 수가를 추가해 청구할 수 있다.
뉴로핏은 알츠하이머병 환자의 뇌 MRI(자기공명영상)에서 발견되는 비정상적인 뇌 위축을 분석하는 소프트웨어 의료기기 '뉴로핏 아쿠아'와, PET(양전자 방출 단층 촬영) 영상을 활용해 알츠하이머병의 원인 물질인 아밀로이드 베타 단백질의 뇌 세부 영역별 침착 정도를 정량적 수치로 제공하는 '뉴로핏 스케일 펫'의 건강보험 적용으로 시장 확대를 노리고 있다.
두 제품은 지난 2022년 일본 후생노동생으로부터 의료기기 인증을 획득한 바 있다.
현재 뉴로핏은 일본 디지털 헬스케어 솔루션 전문 유통 기업 크레아보와 일본 현지 판매를 위한 업무 제휴 계약을 체결하고 일본 현지 약 1350개 의료기관을 대상으로 영업 활동을 진행 중이다. 빈준길 뉴로핏 대표이사는 "현지 파트너와 업무 협력을 강화해 영업 및 마케팅을 적극적으로 진행하고, 일본을 시작으로 보다 많은 국가에서 의료 AI 솔루션에 대한 보험을 적용 받을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전했다.
제이엘케이도 일본에서 AI 기반 뇌졸중 진단 솔루션들을 잇달아 허가 받으며 시장 진출에 나서고 있다. 현재까지 PMDA(일본 의약품의료기기종합기구) 승인을 받은 솔루션으로는 ▲뇌 CT 관류 영상 솔루션 JLK-CTP ▲AI 관류영상 뇌졸중 솔루션 JLK-PWI ▲비조영 CT 기반 뇌졸중 솔루션 NCCT 등이 있다.
회사는 최근 일본 오사카 국제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일본 뇌졸중 학회(Stroke 2025)와 한일 합동 뇌졸중 컨퍼런스(KJJSC 2025)에 참가해 일본 의료진 및 관계자들에게 자사 기술력을 알리는 한편, 마케팅 활동을 본격화했다. 이번 행사 참가를 기점으로 일본 유명 상사 및 의료기기 전문 자회사들과의 대리점 계약을 마치는 등 일본 내 공급망을 빠르게 넓혀나간다는 방침이다.
일본 미용 의료 시장 침투에 나선 곳도 있다. 전 세계적인 K-뷰티 열풍 속에서 '뷰티 강국'으로 꼽히는 일본 시장에 진입해 영향력을 높여가기 위해서다.
미용 리프팅 '슈링크'로 잘 알려진 클래시스는 일본 미용의료기기 시장 내 최고 전문가로 알려진 요시카와 타다시를 일본 법인 클래시스 재팬(CLASSYS JAPAN)의 법인장으로 최근 선임했다.
클래시스는 작년 클래시스 재팬을 설립하고 일본에서 직영 영업 체제 구축을 시작했다. 일본은 클래시스 해외 매출 기준 브라질, 태국에 이어 3위에 해당하는 매우 중요한 시장으로 최근 3년간 연평균 35% 성장했다. 올해는 전년 대비 약 60% 내외의 성장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일본은 비침습적 시술에 대한 선호도가 증가하고 있고, 피부과·미용레이저 중심으로 시장이 발전하고 있다. 회사측은 "다운타임(피부가 회복되는 시간) 없이 기대 효과를 실현할 수 있는 클래시스 제품이 일본 시장의 트렌드를 이끌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메디톡스는 일본 시장 진출을 위해 비동물성 액상 톡신 제제 'MT10109L'의 임상시험을 진행하고 있다. 일본은 소수의 톡신 기업만 정식허가를 받아 블루오션으로 평가받는다. 2023년 일본 야노경제연구소가 발간한 자료에 따르면 일본의 보툴리눔 톡신 제제 시장은 약 640억엔(한화 5800억원, 시술가 기준)으로 추산된다.
메디톡스는 지난 2015년 설립한 현지 법인 '엠디티 인터내셔널(MDT)'을 통해 일본 피부미용 시장에 진출했으며, 작년 초 글로벌 임상시험수탁기관(CRO)과 계약을 체결하고 MT10109L의 임상을 추진했다. 회사는 2028년 허가 받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밖에도 동아제약 파티온, 지놈앤컴퍼니 유이크, HK이노엔 비원츠 등 제약바이오 기업들의 코스메틱 브랜드들이 일본에 잇달아 진출하며 브랜드 인지도를 높여나가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