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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설 업계가 최근 권영진 국민의힘 의원이 발의한 ‘건축법 개정안’ 때문에 술렁이고 있다. 개정안은 불특정 다수가 이용하는 민간의 대규모 건축물에 대한 부실시공 방지를 위해 허가권자가 지정하는 감리 대상을 확대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개정안에 따르면 현재 공동주택에 적용 중인 인허가권자 감리 지정이 5000㎡ 이상의 문화와 집회, 판매 시설 또는 16층 이상의 건축물 등 다중 이용 건축물로 확대된다. 연면적 5000㎡ 이상의 판매 시설을 건설할 때 사업 시행자나 건축주의 의견과 달리 인허가권자가 직접 감리 업체를 지정해 민간의 부실 공사와 시공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겠다는 것이다.
이는 정부가 2023년 12월 발표한 ‘건설 카르텔 혁파 방안’에 담긴 대책을 법제화하기 위한 시도다. 대책이 발표될 당시에도 정부가 부실시공의 본질을 외면한 채 손쉬운 규제 강화만으로 사태를 수습하려 했다는 비판이 나왔다. 그런데도 정부는 의원입법 형태로 이를 강행할 태세다. 이번 개정안은 부실시공 등을 막기 위해 정부나 지방자치단체 등 공공이 직접 나서겠다는 의미로 비치지만 실제로는 부실시공을 막기 위해 규제 강화만이 해법이 될 수 있다는 규제만능주의 인식이 담겨 있다.
이 법안의 가장 큰 문제는 건축주가 직접 감리자를 지정하는 경우 감리자가 건축주의 입김에서 벗어날 수 없어 부실시공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전제에서 출발했다는 점이다. 과연 어떤 사업 시행자나 건축주가 자신이 자금을 조달해 짓는 건축물이 부실하게 지어질 것을 원하겠는가. 전제부터가 잘못된 것이다. 감리는 실제 도면대로 공사가 이뤄졌는지 검증하는 제도다. 정부는 건축주가 감리자를 직접 선정해 과거 광주 화정동 아파트 사고 등이 발생했다는 전제하에 이 같은 규제 강화 카드를 추진하고 있는 셈이다.
실제로 개정안은 제안 이유에서 인천 검단 지하주차장 붕괴 사고를 민간 부실감리의 대표적인 사례로 지적하고 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인천 검단과 광주 화정 공사 현장은 건축주나 시행자가 아니라 공공기관이나 인허가권자가 감리 업체를 선정한 사업장이다. 결국 이 개정안이 실제 법제화로 이어지면 오히려 부실시공과 안전사고가 늘어날 가능성을 더욱 높이는 결과만 초래할 수 있다. 건설공사에 대한 감리자별 안전사고 발생 비율을 보면 인허가권자가 지정하는 건축물의 안전사고 발생 비율이 발주자가 직접 선정할 때보다 오히려 24.5%나 높다는 조사 결과도 있을 정도다. 정부가 인허가권자의 감리 업체 선정을 오히려 개선해야 하는 이유다.
더욱이 정부의 계획대로 인허가권자가 감리 업체를 지정할 경우 절차와 공정만을 강조하는 발주 시스템 구축으로 경쟁력 없이 요건만 갖춘 감리 업체의 양성을 유도할 수 있다. 우후죽순으로 설립된 감리 업체들은 생존을 위해 담합마저 벌일 수 있다. 지난해 검찰이 아파트와 공공건물의 감리 용역 발주에서 68명을 담합 혐의로 기소하고 수억 원의 과징금을 부과한 것이 대표 사례다.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한다면 감리 업체들의 감리비가 올라 결국 민간사업의 건축비 상승으로도 이어질 수밖에 없다.
전 세계 어느 나라에도 우리나라가 시행하는 감리제도를 법으로 강제하는 국가는 없다. 정부의 감리제도 강화 방안은 전기차 배터리의 화재 발생을 막기 위해 차량 인허가권자가 제3의 업체를 통해 배터리 제조 생산공정을 감독하겠다는 것과 다름없다. 자동차 결함으로 차량 사고가 난다면 정부는 차량 생산공정에 정부 지정 감리자를 두자고 할 것인가. 현실을 외면한 탁상행정의 결과물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부실시공과 안전사고를 원천적으로 차단하기 위해 발주자부터 설계자·시공자에 이르기까지 공정별 참가자들이 최선의 결과를 이끌어내야 한다. 만일 문제가 발생하면 이에 대한 법적·경제적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다. 부실공사 원인을 감리제도 미비에서 찾고 규제 강화를 통해 해결하려는 것은 후진적인 발상에 불과하다. 오히려 공사 모든 단계에 걸쳐 체계적인 건설사업 관리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건설 산업의 선진화를 꾀할 때다. 그렇지 않으면 또 다른 건설 카르텔만 조장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