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터 프리즘] 중앙은행 독립성 시험대

2025-08-29

전쟁터는 무역에서 금융으로 옮겨갔다. 관세 포화가 멎자, 통화정책이 새로운 전장이 됐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최근 리사 쿡 연방준비제도(Fed) 이사에게 “즉시 해임”을 통보했다. 연준은 곧바로 “정당한 사유 없는 해임은 불가하다”는 법적 방패로 맞섰다. 13년 임기를 남긴 이사를 주택담보대출 의혹을 구실로 몰아내려 한 시도는 선을 넘어섰다는 평가다. 쿡 이사는 소송으로 응수했다. 금리의 조타실에서 법과 정치가 정면충돌하는 초유의 상황이다.

트럼프 연준 압박 “불법이자 위험”

거센 통화전쟁, 한은 대응력 주목

권력은 언제나 금리에 눈독을 들여왔다. 미국 누적 국가부채가 37조 달러를 넘어섰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대규모 감세를 밀어붙였다. 그 부담을 연준의 금리 인하로 상쇄하려는 계산이다. 트럼프가 연준 장악을 위해 금기의 선을 넘는 이유다.

시장은 즉각 반응했다. 해임 소식 직후 미 국채 수익률 곡선은 스티프닝(장단기 금리차 확대) 현상으로 출렁였고 금 가격은 연중 최고치를 재차 두드렸다. 불확실성이 커지자 자금이 안전자산으로 몰린 결과다. 그러나 시장은 빠르게 안정세를 되찾고 있다. 당장은 트럼프의 칼날보다 9월 금리 인하 가능성에 더 주목하는 분위기다.

그러나 경제적 역풍은 여전히 도사리고 있다. 연준 의장과 재무장관을 지낸 재닛 옐런은 27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 기고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조치를 “불법일 뿐 아니라 매우 위험하다”고 직격했다. 그는 연준 독립성 훼손이 장기적 인플레이션을 부추기고 달러 가치를 떨어뜨릴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어 독일·헝가리·아르헨티나·튀르키예 등에서 정치권이 중앙은행을 장악했던 사례를 언급하며 “나라 이름은 바뀌어도 패턴은 동일하다”고 지적했다.

튀르키예의 리라화 가치는 2021년 말 급락했다. 에르도안 대통령이 금리를 ‘만악의 근원’으로 몰아붙이며 중앙은행 총재를 연이어 경질하고 금리 인하를 강요한 결과였다. 그 대가는 2022년 10월 연 85.5%에 이르는 초인플레이션으로 돌아왔다. 충격을 받은 튀르키예는 강력한 긴축 정책으로 진화에 나섰지만, 지금도 물가 상승률 연 30%를 웃도는 고인플레이션에 시달린다. 아르헨티나도 다르지 않았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총재가 흔들렸고 중앙은행이 예산 창구로 전락하자 한때 물가는 211%(2023년)까지 치솟았다. 통화·재정·환율이 한꺼번에 붕괴했다.

중앙은행의 독립성 훼손은 먼 나라 얘기만은 아니다. 한국은행은 한때 ‘재무부의 남대문 출장소’로 불렸다. 1998년 개정된 한은법 시행 후 형식상 독립은 이뤄졌지만 정부 입김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것은 아니다. 이명박 정부 시절 당시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은 “한은의 결정에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다”며 한은 총재를 압박했다. 윤석열 정부도 지난해 한은의 연속 금리 동결에 대해 용산 대통령실에서 이례적으로 “아쉽다”는 논평을 내며 압력을 행사했다.

독립성 논란은 국경도 넘나든다. 과거 이창용 한은 총재가 “(한은은) 정부로부터는 독립적이지만 미국 연준으로부터는 완전히 독립하지 못하다”고 고백했듯, 트럼프와 연준의 전쟁은 한국에도 파고든다. 미국 금리는 세계 자금의 기준금리다. 장기 미 국채 금리가 정치 리스크로 요동치면 한국 국채도 덩달아 흔들린다. 외환시장 불안도 가파르다. 달러가 정치의 바람을 타는 순간 원·달러는 ‘진동’이 더 커진다.

현재 우리 통화정책의 운신 폭은 그 어느 때보다 좁다. 한은은 28일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을 0.9%로 발표했다. 1%를 밑도는 저조한 수치다. 경기 하강은 분명한데, 금리를 쉽게 움직이지 못한다. 거세지는 통화 전쟁의 파고 속에서 한은은 독립성을 지키는 동시에 대응력을 입증해야 한다. 한은이라는 방파제가 무너지면 파도는 곧장 우리 경제를 덮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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