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테크 인공지능

2025-11-30

얼마 전 해외 대형 금융기관의 AI 안전 책임자를 만날 기회가 있었다. 평소 마음에 담아두었던 질문을 던졌다. “언제쯤이면 AI가 인간보다 투자를 더 잘해 높은 수익률을 낼 수 있을까요?” 그녀의 대답은 의외였다. “AI에 기대해야 할 것은 시장을 이기는 수익률이 아닙니다.” 그녀는 대신 ‘위험 관리’를 강조했다. AI가 개인의 재무 상태나 목표에 맞추어 위험 수준을 적절히 조절하도록 도와줄 것이라는 이야기였다. 순간 무릎을 쳤다. 참으로 맞는 말이다.

모두가 AI 활용해 재테크하면

누구도 시장평균 못 벗어날 것

AI는 큰 수익 내는 마법사 아냐

감정·편향 줄이는 데 활용해야

경제학에는 ‘공짜 점심은 없다’는 말이 있다. 투자도 마찬가지다. 높은 수익률을 얻으려면 필연적으로 높은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AI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다. 누구나 높은 위험을 감당할 수 있는 것은 아니고, 굳이 감당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AI를 쓰면 위험 없이 수익률이 저절로 높아질 것이라 기대한다면, 그것은 과한 욕심이다.

집으로 돌아와 곱씹어 보니, AI가 개인의 재무 관리를 돕는 일이 우리나라에서 더욱 시급하고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의 투자 지형은 유난히 감정적이고 극단적이다. 어떤 이들은 주식 투자를 여전히 도박처럼 여기고, 부동산 같은 현물 자산에 투자해야 한다고 믿는다. 반대로 지나치게 모험적인 투자에 몰입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신용을 끌어다 레버리지 투자를 하거나, 가상화폐 같은 변동성 높은 자산에 무리해 투자하는 모습도 흔하다.

문제는 자신이 어떤 위험을 얼마나 지고 있는지 제대로 이해하는 이들이 드물다는 점이다. 누구도 이들에게 맞춤형으로 조언해주지 않는다. 유튜브 추천 영상이 온라인 재무 설계사 역할을 대신하는 것이 현실이다. 재무 관리를 위해 전문가의 도움을 얻는 문화가 자리 잡지 못한 탓도 있다. 중산층 가정도 정기적으로 재무 전문가와 상담하는 여러 나라와 비교해 보면, 우리는 여전히 재테크는 각자의 몫이라는 생각에 갇혀 있다.

AI를 잘 활용하면 이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된다. 최근 재무 분야 연구들은 AI가 개인 투자자의 성과를 개선하는 데 기여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그 이유는 소위 대박 낼 종목을 맞히는 능력이 뛰어나서가 아니다. 각자의 상황에 맞춘 도움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제 막 사회생활을 시작한 초년생과 은퇴를 앞둔 노령자가 같은 입장일 수는 없다. 서로 다른 위험 수용 능력에 맞춰 적절한 계획을 세우고, 그것을 꾸준히 지켜나가도록 돕는 일이 AI가 맡을 수 있는 핵심 역할이다.

한때 AI 투자자문, 이른바 로보어드바이저 열풍이 분 적이 있었다. 알파고와 이세돌의 대국 이후 ‘이제 AI가 돈을 벌어다 주는 시대가 되었다’는 기대가 쏟아졌다. 그러나 결과는 달랐다. AI는 많은 이들이 기대했던 높은 수익률을 가져다주지 못했고, 관심은 금세 식었다. 그 이후 AI 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그러다 보니 AI가 초과수익을 가져다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다시 자란다. 하지만 마법과 같은 투자 AI가 등장하리라는 기대는 앞으로도 실현되기 어렵다. AI를 먼저 활용하는 일부 투자자가 잠시 성과를 낼 수 있겠지만, 그 효과는 오래가기 힘들 것이다. 결국 모두가 AI를 쓰게 되면, 누구도 시장 평균을 벗어나기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결국 우리가 AI에게 기대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 초과수익이 아니라, 우리의 인지적 한계를 보완하는 일이다. AI를 활용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AI에 무엇을 기대하느냐’를 스스로 점검하는 태도다. 금융 AI가 제공하는 진짜 가치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겪는 약점을 보완하는 데 있다. 시장이 폭락하면 공포에 질려 팔고, 급등하면 뒤늦게 쫓아 사는 것은 본능에 가깝다. AI는 이런 순간에 감정적 대응을 억제하고, 원칙을 유지하도록 돕는다. 꾸준함과 규율이 장기 성과를 좌우한다는 점은 수많은 금융 연구가 확인해온 바다.

채용이나 인사 평가에 쓰이는 AI도 마찬가지다. 사람은 누구나 다른 사람을 평가할 때 편향을 벗어나기 어렵다. 능력이 아니라 외모를 기준으로 삼거나, 장기 성과가 아니라 최근 기억에 좌우되기도 한다. AI는 이런 편향을 점검할 기회를 준다. 스스로 통제하기 어려운 감정과 편향의 영향을 줄여 공정성을 높이도록 돕는다.

올해도 저물어 간다. 한 해를 돌아보고 내년 계획을 세울 때다. 원하는 재무 목표가 있다면 AI와 이야기를 나누어 보는 것도 좋겠다. 예를 들어 ‘5년 뒤 결혼 자금 마련’이나 ‘안정적인 노후 현금 흐름’ 같은 식이다. 하지만 AI가 족집게처럼 시장을 예측해 어떻게 할지 알려 주리라 기대해서는 안 된다. AI는 마법사가 아니다. 대신 AI에게 우리가 흔히 범하는 실수가 무엇이고 어떻게 극복할지 물어보자. 제대로만 활용한다면 우리의 약점을 보완해 주는 좋은 조력자가 될 것이다.

김병필 KAIST 기술경영학부 교수

Menu

Kollo 를 통해 내 지역 속보, 범죄 뉴스, 비즈니스 뉴스, 스포츠 업데이트 및 한국 헤드라인을 휴대폰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