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은 그리움과 함께 온다

2024-09-19

며칠간 시간을 내어 부산과 통영을 다녀오게 되었다.

이왕 나선 김에 울산을 거쳐 가는 길이니 세계문화유산 통도사에도 가보고 싶었다.

이 사찰은 부처의 진신사리를 안치하고 있어 불보사찰이라고도 부른다 하여 오래 전부터 마음에 점을 찍어 놓고 있었다.

천년고찰의 향기를 느낄 수 있는 경내에는 “백중기도”라고 쓴 직사각형의 흰 종이가 간격을 두고 벽에 붙어 있었는데 불교에서 중요시 여기는 의식 중의 하나로 여겨졌다.

천왕문 앞 양 옆으로 활짝 핀 배롱나무 두 그루에서 떨어진 연분홍 꽃잎이 8월에 내린 분홍 빛 눈 같아 밟으면 왠지 뽀드득 소리가 날 것만 같았다.

자장암으로 오르는 산자락에 붉게 핀 배롱꽃은 멀리서 바라보니 화사한 꽃다발이다.

산사로 접어드는 계단 옆으로 때 늦은 수국 몇 송이가 사랑스럽기 그지없고, 꽃들도 우리 사람들과 같이 다양한 피부색과 제 빛깔에 어울리는 향기와 이름을 가졌다는 것이 신기하다.

추녀를 살짝 들어 올린 곡선을 배경으로 하얗게 핀 배롱나무와 푸른 하늘은 뛰어나게 아름다운 풍경이다.

이번 여름은 이상하게 가는 곳마다 배롱나무만 눈에 들어오니 여럿이 섞여 있어도, 홀로 있어도, 저만치 있어도, 가까이 있어도, 어디를 가나 마주치는 꽃 고깔을 쓴 배롱나무를 보면 웬일인지 흥분이 되었다.

나는 딸이 다섯, 아들이 둘인 홀어머니 밑에서 자랐다.

아버지는 막내 동생이 두 살 때 하늘나라로 떠나셨으므로 아버지와의 그 어떤 일도 음미하고 기억할 게 없었다.

그러나 딸이 다섯이나 되는데도 딸들을 굉장히 예뻐하셨다는 딸 바보 아버지의 사랑을 당숙 할머니께 전해들은 이후엔 몰래 아버지를 그려보기도 하고 은근히 자부심을 갖게 되었다.

어머니는 군대 간 오빠 대신 큰언니를 데리고 하숙집을 하셨는데 어머니를 닮아 음식 솜씨가 좋고 얼굴이 예뻤던 큰언니는 하숙생이었던 형부와 눈이 맞아 일찍 결혼을 해 아기를 연년생으로 낳았다.

형부의 발령에 따라 거처를 옮겨야 했던 큰언니는 날 데리고 가고 싶어 했다.

어머니와 잠시라도 헤어지는 건 싫었지만 귀여운 조카들과 함께 지낼 수 있다는 점은 살짝 설레었다. 내 나이 열두 살 때의 일이다.

나의 도움에도 육아로 인한 큰언니의 체력적인 부담은 좀체 줄지 않았는지 언니는 우울증으로 감정의 기복이 심해지면서 나를 외롭고 힘들게 했다.

큰언니가 화를 내는 날엔 괜히 서럽고 속상해서 구석으로 숨어들어가 한없이 울었다.

집에 가고 싶다고 말하면 처음엔 나를 달래주시던 형부도 나중엔 큰언니 입장에서 변호하거나 묵인했다.

소심하고 외로움을 많이 탔던 나는 사택 한쪽에 있는 배롱나무를 바라보며 조용히 속울음을 토해내곤 하였다.

이제 와 생각해 보니 내 마음의 오래된 수장고에는 그 옛날 나의 위로자로 동무로 나의 눈물을 닦아주던 배롱나무가 있었고, 그 앞에서 어머니를 기다리며 그리워하며 눈물짓던 열두 살 어린 아이가 있었다.

이번 여행은 의도치 않게 내 안의 나를 만나는 시간이었다.

한편 고인이 된 어머니와 큰언니를 만나는 아름다운 해후의 시간이기도 하였으니 큰언니는 마흔을 갓 넘기고 배롱나무 꽃보다 더 짧은 생을 살다가 꽃잎처럼 덧없이 지고 말았다.

모두가 다 지나고 보면 외로움도 오해도 사랑도 여과되어 잠재된 기억 속에서 애틋한 그리움으로 피어나는가 보다.

아, 그립다! 어머니, 그리고 큰언니......

차창 밖으로 배롱나무 가지마다 무량한 꽃잎들 피고 진다.

한없이 지고 핀다.

그리 무섭던 여름도 언제부터인지 한복판을 벗어 나 기가 꺾여 가고 있다.

△최윤옥 시인은 계간 문예지 '자유문학'과 '시조문학'을 통해 등단했다. 전북문인협회, 전북시인협회, 전라시조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저서로는 시집 '이만 사랑을 잠재우고 싶다', '흔들릴 때 더욱 푸르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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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 #그리움 #최윤옥

기고 gigo@jj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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