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타워] 가짜 정보와 30년 전 ‘약사법’

2025-08-20

의약품 정보 홍수 속 해묵은 법에 막혀 ‘바로잡기’ 못해

최근 한 글로벌 제약사는 뉴스 확인 중 발견한 블로거의 글을 놓고 내부에서 갑론을박을 벌였다. 이 블로거가 올린 전문의약품 정보가 ‘가짜 뉴스’ 수준으로 잘못된 만큼 회사에서 블로거에게 연락해 수정하도록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그러나 결론은 “그냥 모른 척하자”로 났다. 회사 관계자는 “자칫 ‘약사법’ 위반으로 회사가 난처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있었다”고 말했다.

여기서 언급된 약사법은 ‘약사법 제68조’. “전문의약품, 전문의약품과 제형, 투여 경로 및 단위제형당 주성분의 함량이 같은 일반의약품, 원료의약품에 해당하는 의약품은 광고해서는 안 된다. 의학·약학에 관한 전문가 등을 대상으로 하는 의약전문매체에만 가능하다”는 내용이다.

제약사는 잘못된 블로그 내용을 수정해달라고 요청하는 것이 자칫 “사실상 광고”라고 오해받을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물론 블로거도 의사의 처방전이 있어야 살 수 있는 전문의약품에 대한 정보를 올리면 안 된다.

그러나 현실은 다르다. 지난 14일부터 인터넷과 신문은 위고비와 마운자로 얘기로 도배가 됐다. 국내에서 비만치료제로 허가된 위고비와 마운자로는 식욕 억제, 지방 흡수 억제에 초점을 맞췄던 펜터민, 오를리스타트 등과 달리 GLP-1 유사체 계열이다. 무엇보다 기존 비만약에 비해 식욕 억제 효과뿐 아니라 혈당 조절과 체중 감량에서도 뛰어난 효과를 보여준다. 이런 혁신적인 약물들이 효과를 두고 경쟁까지 하는 상황이 되니 관심이 높아질 수밖에 없었다. 이들이 대중적인 입소문을 탄 것 역시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라온 한 줄의 문장이었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가 다이어트 비법을 묻는 질문에 “단식과 위고비(Fasting and Wegovy)”라고 적으면서다.

비만과 다이어트가 대중적 관심이 높은 분야기도 하지만, 전문의약품의 제품명·성분명은 일반인에게 더 이상 미지의 영역이 아니다. 인터넷 검색만 해도 정보가 홍수처럼 넘쳐나기에 각종 면역항암제나 표적 치료제, 백신 종류 등 다양한 제품명에 능통한 사람이 적지 않다. 아울러 관련 정보는 SNS를 통해 순식간에 확산한다.

약사법이 만들어진 것은 1991년이다. 의약분업조차 실시되기 전이다. 당시에는 빠른 속도로 신약이 나오지 않았고, 소비자 선택의 폭이 좁았다. ‘혁신적인 약’도 흔치 않았다. 불필요한 의약정보의 범람으로 인한 오남용을 막는, ‘전문적인 정보 유통’의 의미가 있었던 시기다. 그러나 지금은 누구나 정보를 생산·소비하고, 공유한다.

이런 상황에서 해묵은 약사법 눈치를 보느라 제약사·병원 홈페이지나 신문 등에서 전문의약품 정보가 제대로 나오지 못한다. 치료에 대한 절박함이 매우 큰 난치병, 희소질환 환자들은 치료제와 관련한 더욱 많은 최신정보를 바라지만 접근이 제한된다. 그 와중에 건강기능식품과 일반의약품 정보는 ‘과잉’ 상태라 건강기능식품에 의존하는 잘못된 길로 빠지기도 한다. 제약사는 법 때문에 말을 하지 못하고, 과장·왜곡된 정보는 활개를 치는 ‘악순환’ 고리가 만들어지는 셈이다.

약물 오남용 문제는 국민 건강과 직결된 만큼 규제가 필요하다는 데 이견이 없다. 다만 무서운 속도로 변화하는 인터넷, 미디어 환경과 의약품에 대해 높아진 관심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올바른 정보는 더 쉽게 전달되고, 잘못된 정보는 더 빨리 바로잡히는 방향으로 규제가 이뤄져야 한다.

정진수 문화체육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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