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아이템은 왜 비트코인이 되지 못했나? [위클리 디지털포스트]

2025-08-20

[디지털포스트(PC사랑)=이백현 기자] 지난주 컴투스에서 게이머들에게 다소 충격적인 사건이 터졌습니다.

컴투스 모바일 다중 접속역할수행게임(MMORPG) ‘아이모’에서 한 직원이 관리자 권한을 이용해 테스트용으로 지급된 아이템을 외부로 유출하고, 이를 시중에 판매해 수익을 챙긴 사실이 드러난 겁니다.

유저들 사이에서는 “실제로는 수천만 원에서 많게는 1억 원대의 이득을 취했을 것”이라는 추측까지 나왔습니다. 하지만 회사는 “엔진 교체 이전의 거래 내역은 확인이 어렵다”며 전체 피해 규모를 명확히 밝히지 못했죠. 이 직원은 징계를 받고 퇴사한 이후에도 아이템을 생성해 판매해왔습니다.

부정 행위의 금액도 물론 중요하겠지만, 저는 게임을 플레이하는 유저들의 허탈감이 걱정됐습니다. 몇달, 몇년을 노력해서 얻은 장비과 재화가, 직원 하나의 부정 행위에 의해 생성·복제되고 시장에 퍼질 수 있다는 걸 다시 한번 체감할 수 있게 됐으니까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게임 아이템의 가치에 대한 ‘신뢰’가 붕괴한 겁니다.

물론 ‘게임 내 아이템은 결국 데이터 쪼가리에 불과한데, 왜 과몰입을 하느냐’는 원론적인 비판을 할 수도 있겠습니다. 그런데 이 즈음에서 어떤 분들은 기시감을 느낄 수도 있겠습니다. 게임 아이템과 정확히 같은 방식으로 비판받았던 대상이 있는데, 바로 비트코인과 같은 가상자산이거든요.

하지만 가상자산은 게임 아이템과 다르게, ‘가치 없는 데이터 조각’이라는 비판이 쏙 들어간 상황입니다. 최근 비트코인 가격을 보니 1억 6,000만원 정도더라구요.

그렇다면 비트코인은 이처럼 승승장구하며 ‘디지털 금’이라는 평가까지 받고 있는데... 게임 아이템의 가치는 왜 이렇게 취약한 걸까요?

주식시장에서, 어떤 상장회사 주식이 가진 금전가치를 모두 합치면 이를 시가총액이라고 부릅니다.

이 시가총액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다양하지만, 그 중 가장 큰 요소는 주식의 가진 ‘미래 역할에 대한 신뢰’라고 표현할 수 있겠습니다. 이 주식으로 당장 뭘 할 수 있는지(의결권, 배당 등)보다는, 이 주식이 가진 잠재력을 평가한다는 겁니다.

주식의 핵심 역할은 의견을 낼 수 있는 권리(의결권)와, 수익을 나눠가질 수 있는 권리(배당)를 준다는 건데, 이런 주식의 ‘미래 역할에 대한 신뢰’가 가격을 지탱합니다(투기적 변수를 제외하고요.). 그런데 만약, 이때 회사가 총 주식의 숫자를 늘리기로 결정하면 어떨까요? 주식 1개당의 역할(의결권, 배당)은 축소되니까, 주가는 떨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무상증자가 주가에는 악재인 이유죠.

이게 게임이랑 무슨 상관이냐고 물을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앞선 컴투스 사건을 이와 같은 맥락에서 해석하면, ’아이템 무단 복제·판매’가 게임 내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이해할 수 있거든요. 만약 회사가 주주의 동의 없이 주식을 몰래 찍어내는 게 가능하고, 실제로 그렇게 한다면 회사는 어떻게 될까요? 주식은 '미래의 역할에 대한 신뢰'를 잃고 가파르게 추락할 겁니다. 미래에 이 주식의 의결권, 배당이 제대로 기능하리란 기대를 할 수 없으니까요. 그리고 아이템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아이템이 마구 복제되어 유통된다면, 주주의 동의 없는 신주 발행과 정확히 똑같은 원리로 '아이템의 현금가치'를 떨어뜨리게 됩니다.

게임 내 아이템과 재화의 총 원화가격(₩) 합산을 ‘총 현금가치(일종의 시가총액)’로 표현해 봅시다. 그러면 게임 내 아이템은 '특수한 규칙(중요)'을 통해 발행되는 주식으로 볼 수 있습니다. 아이템은 각각 고유한 ‘역할’을 가지고 있죠.

유저들은 아이템을 획득하거나 구매할 때도 아이템의 ‘미래의 역할’을 기대합니다. 강력한 장비 아이템으로 더욱 등급이 높은 적을 쓰러뜨리고, 이를 통해 더 많은 보상을 얻기를 바라죠. 장비 아이템도 '미래 가치'를 본다는 점에서는, 주식과 마찬가지인 속성을 갖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게임사가 유저 모두에게 '강력한 장비'를 지급한다면, 이때 게임의 '총 현금가치(시가총액)'는 어떻게 될까요? 현금가치가 상당한 아이템이 모두에게 지급됐으니, 그 장비의 가치만큼 게임의 '총 현금가치'가 갑자기 오를까요? 주식시장만 봐도 그럴 리가 없다는 걸 잘 알 수 있습니다. 모두가 다 가지고 있는 아이템은 ‘강력한 장비’라고 더 이상 표현할 수도 없죠.

신주 발행이 함부로 이뤄져서는 안 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원칙적이라면 강력하고 희소한 아이템은 특정한 규칙(획득 방법)을 통해 질서있게 주어져야 합니다. 그러면 사람들은 그 규칙을 신뢰하고, ‘아무에게나 대가없이 주어지지 않을 것’을 믿고서 장비를 획득하기 위해 노력하거나 많은 비용을 지불합니다.

사람들이 종이조각에 불과한 주식에 가치를 두는 이유도 본질적으로는 같습니다. 아무에게나 대가없이 주어지지 않고, 쉽게 늘어나지도 쉽게 줄어들지도 않기 때문입니다. 어떤 회사가 주주의 동의 없이 주식을 마구 찍어내서 길거리에 뿌리고 다닌다면 어떨까요. 우리는 그걸 휴지조각이라고 부릅니다. 원화나 달러를 마음껏 프린터로 찍어내도 된다면, 그것 또한 휴지조각으로 부르겠죠.

그렇다면 게임 아이템과 화폐, 주식의 차이는 뭘까요? 게임 아이템은 ‘규칙 없이 마구 발행될 가능성’이 구조적으로 높다는 점입니다. 알려지지 않은 버그로 인해 유저가 아이템 복제에 성공하고, 그 결과가 큰 파장으로 이어지는 사례는 게임업계에서 흔한 일입니다. 게임 운영진의 의사결정 하나에 쉽게 아이템 가치가 하락하기도 하죠. 게임 아이템이 취약한 가치를 지니는 건 '내재가치가 없는 데이터 쪼가리'이기 때문이 아닙니다. ‘주주 동의 없는 무상증자’와 같은 일이 쉽게, 빈번하게, 불법적으로든 합법적으로든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게임 아이템과 정 반대로, ‘신뢰성’만을 강점으로 삼아 시장에 안착한 '디지털 쪼가리'의 사례도 있습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비트코인이 그렇습니다. 비트코인을 얻기 위해서는 고성능 반도체를 통한 채굴하거나 사람들에게 구매해야 하는데, 이는 게임 아이템을 얻기 위해 강력한 적을 쓰러뜨리거나, 사람들에게 구매하는 행위와 본질적으로 동일합니다. 특정한 규칙을 통해 새로운 재화가 발행되고, 그 결과 재화의 총량이 늘어나는 거죠. 다른 점이 단 하나 있다면, ‘이 분배하는 규칙’의 신뢰성입니다.

비트코인은 구조적으로 복제하거나 위조할 수 없게 만들어졌습니다. 발행 총량도 설계 단계에서부터 정해져 있죠. 가장 중요한 건 ‘분배 규칙’의 절대적이라는 겁니다. 비트코인의 총량은 ‘채굴’이 아니면 절대 늘어나지 않습니다. 국가와 회사가 일정한 절차를 거쳐 화폐와 주식을 임의를 발행할 수 있는 것과 다르게요. 게임 아이템처럼 운영진에 의해 쉽게 생성되는 일은 결코 없죠. 그 덕분에 비트코인은 의결권과 배당을 인정받는 주식보다 오히려 더 안정적으로 보이기까지 합니다. 일부 국가 화폐의 신용을 뛰어넘기도 했죠.

이러한 맥락에서, 기자는 컴투스 사례와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게끔 가상자산을 게임에 도입해보는 것도 고려해 볼만하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게임으로 돈을 벌 수 있게 한다는 ‘P2E(플레이 투 언)’와는 다른 접근법입니다. 게임 운영의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서만 가상자산을 도입하면, '아이템 가치'를 지키는 데 상당한 효과가 있지 않을까요? 실제로는 투기·작업장 등의 세력과 결별하고, 게임 운영의 투명성과 공정성을 담보하는 데만 집중할 수 있느냐는 현실적인 문제가 있겠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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