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남희 백선엽기념재단 명예이사장 “다부동 승리 이끈 父 백선엽 상하일체 리더십, 재조명 필요” [세상을 보는 창]

2025-03-25

존망 기로서 6·25 전세 역전 발판 마련

“내가 물러서면 나를 쏴라” 일화 유명

분단상태선 父 공과 객관적 평가 어려워

자유민주주의 승리는 아버지 평생 업적

韓·美는 피땀으로 맺어진 ‘철통 동맹’

韓도 美에 도움 줘… 상호 호혜 알려야

혼란 정국… 전우들 희생 헛되선 안돼

제복 영웅들 존경 받는 사회 만들어야

“아버지 백선엽을 상관으로 모셨던 노병(老兵)들은 부하를 아끼던 부하 사랑을 회상하는 경우가 많다. 장군이면서도 진격할 때 병사의 81㎜ 박격포를 나눠 메고, 고지에 올라선 전우 장병과 화랑 담배를 나눠 피우며 부하와 함께하는 리더. 부하와 하나가 된 참 리더십이 전장의 승리를 이끈 것 같다.”

고 백선엽(1920∼2020) 장군 장녀 백남희(77) 백선엽장군기념재단 명예이사장은 한·미 정부로부터 6·25전쟁 영웅으로 선정된 아버지의 리더십 요체를 부하를 사랑하는 ‘진정성’, ‘참’이라고 여러 번 강조했다. 전장뿐 아니라 세상의 모든 회사나 조직의 상사, 선배가 새겨야 할 말이다.

평남 강서군 출신인 백선엽은 해방 후 국군에 투신해 1950년 6·25전쟁 발발 땐 육군 제1사단장을 맡고 있었다. 국가 존망이 걸린 낙동강 전선의 다부동전투에서 백선엽이 부하들에게 “내가 물러서면 나를 쏴라”라고 외치며 전세를 역전시킨 일화는 상하일체의 리더십을 상징하는 사례가 됐다.

백 명예이사장은 1961년 주프랑스 대사로 부임하는 부친을 따라 도불(渡佛)해 캐나다를 거쳐 미국에 거주했다. 2023년 6월 △관련 자료 수집·연구 △참전용사 위로 △한·미동맹 증진 등을 목적으로 하는 재단 설립을 계기로 주로 국내에 체류하며 재단 행사와 노병과의 만남을 소화하고 있다. 주한미군전우회(KDVA), 백 장군과 함께 6·25전쟁 영웅으로 선정된 제임스 밴플리트 전 미8군사령관을 기리는 밴플리트재단 고문도 맡고 있다.

백 명예이사장은 2023년 7월 경북 칠곡군 다부동전적기념관의 부친 동상 건립을 이야기할 때는 감정이 북받치는 듯 여러 차례 울먹이기도 했다. 그는 “이철우 경북지사, 김재욱 칠곡군수 등 동상이 서기까지 고생해 주신 분들께 고마운 마음”이라며 “아버지는 1사단 전사자 명부와 무명용사 묘가 있는 전적기념관 영내에 묻혀 전우들과 조국을 수호하는 혼령이 되는 것을 노병의 마지막 간절한 소망이라고 했다. 유해는 (다부동에) 못 왔으나 그곳에 동상이 선다는 것이 가슴 아프면서도 자랑스러웠다”고 했다.

―곧 5주기다. 어떤 아버지였나.

“늘 했던 말씀이 대(大)를 위해서는 소(小)는 희생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대는 첫째 나라, 둘째 군인이고, 소는 첫째 본인 백선엽, 둘째 가족이었다. 본인이 나라를 위해 존재한다는 것과 참군인이어야 한다는 마음을 한시도 잊지 않았다.”

―간도특설대 복무 문제로 논란이 있다.

“아버지가 친일파라고 하는 것에 대해 정말 담담하게 생각한다. 아버지 역시 담담했다. 왜냐하면 사실이 아님을 역사가 바로잡아 줄 것이기 때문이다. 아버지가 동포를 죽였다는 악담은 6·25전쟁 당시 북한이 남한에 뿌린 삐라에서 시작됐다. 아버지는 만주 펑톈(奉天)군관학교를 졸업하고 22세 때 (만주군) 소위로 임관해 1943년 2월 명령을 받아 간도특설대에 복무했다. 간도 지역의 중국공산당 게릴라와 싸우기 위해 창설된 부대이나, 1943년 간도에서 조선의 독립운동가는 떠난 지 오래돼 활동이 없었다. 중국공산당 군대를 추적하는 과정에서 해방을 맞았고, 그들과의 교전 실적도 별로 없다.”

―일제강점기 군을 택한 이유는.

“아버지는 7세 때 할아버지(백 장군의 부친)가 사라져 할머니(백 장군 어머니)에 의존해 자랐다. 할머니는 조선이 결국 독립할 것으로 보고 ‘문(文)을 할 사람은 많으니 너는 무(武)를 하는 것이 좋겠다’고 하셨다고 한다. 할머니의 부친, 즉 아버지의 외할아버지(방흥주)는 조선(대한제국)의 참령(현재의 중령)까지 올랐다. 아버지는 어머니의 무가(武家) 기질 영향을 받고 외할아버지 영정을 보고 자랐다.”

―현대사는 아버지를 어떻게 평가할까.

“역사가 평가하기엔 아직 너무 이르다. 남북이 갈라져 있는 한 객관적 평가는 힘들다. 아버지는 늘 영토가 없으면 나라도 존재할 수 없다고 했다. 그 신념으로 북한군의 남침으로부터 이 땅을 지키지 않았나. 6·25전쟁뿐만 아니라 평생의 업적은 자유민주주의의 승리자라는 것이다. 인천상륙작전처럼 극적인 모습은 아니지만 다부동전투를 통해 존망 위기의 대한민국이 마지막 순간에 직접 일어나는 역량을 보여줬다. 또 군사동맹이 정식 체결되기 전 미군과의 협력을 통해 미국이라는 거대한 문명의 소나기를 한반도에서 맞이하는 접점의 역할을 했다. 우리가 미국과의 접점을 형성함으로써 한·미동맹뿐만 아니라 이후 대한민국 발전의 중요한 흐름이 되는 미국의 질서에 올라탔다.”

―엄혹한 6·25 전쟁을 헤쳐나간 아버지의 리더십은.

“전우 노병을 작년에도 35분 정도 뵙고, 올해도 100분 만날 계획이다. 아버지가 덕장(德將)이었다고들 말한다. 어느 노병은 ‘내가 후퇴하면 나를 쏴라’라는 말이 사단 전체에 퍼져서 ‘사단장님이 저렇게 싸우시는데 우리가 어떻게 용감히 싸우지 못하겠느냐’라며 사단의 기(氣)가 완전히 바뀌었다고 했다. (한 노병에게) 내가 ‘나라를 위해 훌륭히 싸워줘서 고맙다’고 했더니 그분 말씀이 ‘훌륭한 지휘관이 있었기에 잘 싸울 수 있었다’고 했다.”

―현재 한국의 혼란한 상황을 어떻게 보나.

“나는 그저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해 6·25전쟁 중 스러진 수많은 전우의 희생과 그 유족의 아픔이 헛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최근 한·미동맹이 동요하는 듯한 모습이다.

“6·25전쟁을 계기로 맺어진 한·미 군사동맹은 더욱더 강해지고 앞으로도 변함이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양국의 피와 땀으로 맺어진 철통 같은 동맹, 누구도 끊으려야 끊을 수 없는 동맹이기 때문이다. 전쟁터에서 죽음을 같이한 전우들로부터 시작한 것이 한·미동맹의 기초다. 그렇지만 한·미동맹은 현실에 충실해야 한다. 미국은 대한민국이 정말 아무것도 없이 힘들 때 구제하는 입장에서 도왔다. 하지만 그것은 80년 전의 일이다.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에서 지금은 선진국으로 성장했다.”

―한·미동맹을 강화하기 위해 어떤 노력이 필요하나.

“현재 미국의 정책은 미국민의 민심이다. 지난 80년 동안 한국도 미국을 도운 것이 계속 많아지고 있으나, 미국민에게 홍보가 잘 안 되고 있다. 그래서 대미 홍보가 중요하다. 홍보를 통해 미국민의 인식을 현실화해야 한다. 상부상조하는 호혜적인 진정한 동맹관계임을 미국민은 전혀 모르고 있다.”

―역대 정권에서 아버지에 대한 예우가 어땠나.

“아버지나 나나 역대 정권의 예우에 대해서는 별로 개의치 않았다. 아버지는 어떤 정권을 위해 일하지 않았고 오직 나라와 국민을 위해 사심 없이 주어진 임무에만 충실했기 때문에 정권의 평가를 개의치 않았다.”

―미국이나 미군의 예우는 어땠나.

“미군은 아버지를 외국군이라기보다는 본인들의 직접적인 상관으로 모셨다. 정말로 미국 역사상 없었던 일이다. 아버지를 명예 미8군사령관으로 추대하고 명함도 만들어줬다. 한반도에서 전쟁이 발발하면 최전선에서 전쟁을 지휘할 전방지휘소와 주한미군사령부가 있는 캠프험프리스 회의실에 아버지 이름을 붙였다.”

―앞으로 보훈사업이 어떻게 되어야 한다고 보나.

“내가 그런 의견을 제시할 위치는 아닌 것 같다. 다만 6·25전쟁 참전용사분들을 찾아뵙고 ‘마지막 소원’을 물어보면 대다수 분이 부족하나마 정부·지방자치단체의 금전적 지원은 받고 있어서 괜찮지만 사회적으로 참전용사에 대한 예우가 미국이나 다른 유럽국가와 차이가 있어 아쉽다고 말한다. 그래서 참전용사에 대한 사회적 예우를 높이는 홍보와 교육을 확대했으면 한다.”

―재단 활동 방향은.

“이 땅의 젊은이들이 한·미동맹과 자유민주주의에 기초한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자긍심을 갖고 더 나아가 제복의 영웅들이 존경받는 나라를 만드는 데 일조하고 싶다.”

―올해 광복 80주년이자 한국전쟁 75주년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인가.

“독립과 대한민국 설립을 위해 희생하신 독립운동가와 유족, 그리고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해 6·25전쟁 때 희생하신 분과 유가족, 나아가 이분들을 뒷받침해 온 우리 전 국민이 서로 자부심을 갖고 한마음이 되어 존경받는 대한민국을 이루기 위해 함께 노력했으면 한다.”

―앞으로 부친이 어떤 인물로 남기 바라나.

“후손에게 아버지가 참군인의 모범, 애국자의 모범이 되었으면 한다. 임진왜란에 이순신 장군이 있듯이 6·25전쟁을 통해서도 대표적 리더십을 이야기해야 한다. 전쟁은 한 민족의 역량이 총결집하는 일대 사건이다. 그 점에서 우리는 다른 나라와 달리 민족의 존망, 생사가 달린 전쟁이나 전쟁의 리더십에 대한 연구가 부족한 측면이 있다. 군인 백선엽, 리더 백선엽을 통해 전쟁터의 죽느냐, 사느냐 하는 리더십을 볼 수 있다.”

김청중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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