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수능 역대 최대 ‘사탐런’ 예고…예측 실패가 혼란 불렀다

2025-08-25

이과생들이 수능 사회탐구 몰리는 교육 현주소

올해 고3인 이모(18·서울 강남구)군은 요즘 고민에 빠졌다. 2026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원서 접수 마감이 다음달 5일인데 수능에서 응시할 탐구 과목을 아직도 정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공계 진학이 목표인 이군은 고교에서 화학과 생물 과목을 공부했다. 당연히 수능에서도 과학탐구(과탐) 두 과목을 선택해 시험을 치르려 했지만 최근 불안한 소식이 들려왔다.

고교 이과 과정을 이수했음에도 수능에서는 사회탐구(사탐) 과목을 택하는 학생들이 매우 많아지면서 과탐 과목으로 수능 시험을 치렀다가는 상대적으로 손해를 볼 수 있다는 얘기가 들렸기 때문이다. 실제로 같은 학교에 다니는 친구 중에는 화학이나 생물, 물리, 지구과학 등 과학 과목을 이수했지만 수능에선 사탐 사회문화나 생활과 윤리 과목 등으로 갈아타겠다는 경우가 꽤 있다. 이군은 “내신에서 공부한 과목을 당연히 수능에서도 볼 생각이었는데 사탐으로 갈아타지 않으면 입시를 모른다고 해 헷갈린다”며 “배우지도 않은 과목을 지금부터 갑자기 준비해도 되는가 싶지만 오히려 그게 이익일 거라고들 하니 입시가 무슨 수 싸움이 된 것 같다”고 토로했다.

지난해 이어 6월 모평에서 '사탐런' 뚜렷

올해 말 치러지는 2026학년도 수능을 앞두고 출제기관인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주관한 6월 모의평가에서 두드러진 현상이 나타났다. 우선 영어 1등급 비율이 2018학년도 절대평가 도입 이후 가장 높은 19.1%로 나왔다. 지난해 6월 모의평가 영어 1등급 비율이 1.47%로 너무 낮았던 것과 정반대였다. 이는 난이도 조정에 실패한 경우에 해당되기 때문에 본 수능에서는 난이도 조정이 필요하다는 지적을 받았다.

하지만 정작 더 놀라운 결과는 ‘사탐런’의 강도였다. 사탐런은 고교에서 과학탐구를 배운 자연계열 학생들이 수능에서는 사회탐구 과목으로 옮겨 시험을 치르는 방식을 가리킨다. 과거에도 사탐런이 없지 않았다. 하지만 지난해에 이어 올해 3월 모의평가에서부터 유난히 사탐런 경향이 강하게 나타나고 있다. 올해 6월 모의평가에서 사탐만을 응시한 학생의 비율은 전체 응시자의 58.5%에 달했다. 2022학년도 통합수능 체제가 도입된 이후 가장 높은 비율이다.

6월 모의평가 기준으로 과탐 과목만을 응시한 수험생 비율은 24.6%였는데 지난해 40.8%의 반 토막 수준이 됐다. 지구과학 I과 생명과학 I 과목의 경우 총 응시 인원이 지난해 대비 각각 21.8%, 18.3% 하락했다. 반면 사탐 과목만 응시한 수험생 비율은 지난해 50.3%에 이어 올 6월 58.5%로 급증세를 이어가고 있다. 과탐 한 과목에 사탐 한 과목을 치르는 조합도 지난해 8.9%에 이어 올 6월 16.9%로 뛰었다.

수능에서 고득점을 얻을 수 있다는 이유로 수험생들이 고교에서 배우지 않은 과목을 선택하는 자체를 못 하게 하거나 비난할 수는 없다. 하지만 역대 최대 사탐런의 파장은 올 수시와 정시 대입에 여러 모습으로 밀어닥칠 전망이다.

종로학원이 분석한 데 따르면 사탐런의 영향으로 대입 수시모집에서 수능 최저학력기준을 맞추기 어려워지는 학생이 속출할 가능성이 있다. 과탐 과목 응시 인원 자체가 줄어들면서 지난 3월, 5월, 7월 고3 학생들이 치른 전국연합학력평가 과탐 과목에서 2등급 이내에 든 인원은 전년 대비 큰 폭으로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생명과학 I 과목에서는 평균 1671명 줄었고, 지구과학 I에서도 1656명 감소했다. 화학 I 과목의 경우 1562명이 줄어들었다.

평가원이 주관한 6월 모의평가에서도 2등급 이내 인원은 전년 대비 지구과학I에서 3641명, 물리 I에서 1966명 등이 줄었다. 이에 따라 올해 수능에서도 과탐 I 과목들에서만 2등급 이내 인원이 1만명 이상 줄어들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의대 등 상위권 대학 학과의 경우 수능 최저학력기준이 매우 높기 때문에 2등급 이내 인원이 줄어들었다는 얘기는 이 최저학력기준을 만족시키지 못하는 수험생이 늘어날 수 있음을 의미한다. 2등급 이내 인원이 줄어드는 것은 과탐 과목의 성적 중하위권이 사탐으로 대거 빠지면서 전체 응시 인원이 감소한 데 따른 것이다.

수시 최저 미충족 속출 가능성

이와 달리 사탐 과목에서는 6월 모의평가에서 2등급 이내 인원이 사회문화의 경우 8643명으로, 지난해 대비 46.5%나 늘어났다. 윤리와 사상 과목도 2등급 이내 인원이 전년 대비 36.8% 증가했다. 올해 말 실시되는 본 수능에서도 비슷한 경향이 나타날 전망이어서 의대 등 최상위권 자연계 학생들이 수시에서 수능 최저학력기준을 충족하기에 비상이 걸린 상태다.

지난해 대입에서 연세대·고려대·가톨릭대 등 주요 14개 의대 수시 수능 최저 충족률은 학생부 교과 전형의 경우 33.3%, 학생부 종합 전형의 경우 46.3% 수준이다. 지방 의대 학생부 교과 전형에서 수능 최저 충족률은 20%대로 더 낮다. 임성호 종로학원 대표는 “수능 원서접수 결과 응시 인원 증감이 어떤 과목에서 크게 발생할지 가늠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라며 “과탐 과목 중 어느 과목에서 사탐런이 얼마나 발생하는지에 따라 수험생 실력과 무관하게 수시와 정시 모두에서 유불리가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중하위권이 과탐에서 대거 사탐으로 이동한 영향은 지난해 수능에서도 대입의 변수였다. 수능 화학 I 과목의 응시자 수가 급감하면서 한 문제만 틀려도 백분위가 대폭 하락해 변환표준점수에서 큰 불이익을 받아야 했다.

교육부 정책 따라 과탐 필수 폐지

사탐 쏠림이 늘어난 것은 정부의 정책 방향이 영향을 미쳤다. 교육부의 정책에 따라 많은 대학이 이공계열 지원 때 과탐 과목을 필수로 응시토록 하는 제도를 폐지했다. 의대 등 상당수 대학이 과탐 과목을 응시하면 3~5%가량의 가산점을 주고 있긴 하다. 하지만 현 고2가 치르는 2027학년도 수능 때는 지금보다도 더한 규모의 사탐런이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고 입시 업계는 보고 있다.

2027학년도에 고려대·성균관대·서강대·한양대 등 서울 소재 대학의 학생부 교과 전형과 서울대 간호·의류 등 일부 학과, 연세대·고려대 등의 학생부 종합전형, 고려대·성균관대·서강대 등의 논술 전형에서도 자연 계열 학과 지원시 수능 사탐 과목이 허용되고, 수능 최저 충족 여부에도 사탐 과목을 인정하기로 한 상황이다.

과탐 수능 문제 자체가 안고 있던 문제점도 사탐런이 늘어난 데 한몫하고 있다. 의대 열풍 등과 맞물려 고득점 수능 N수생이 양산되면서 응시생들의 학업 수준이 높아져 왔다. 과탐I 과목의 경우 시험을 아무리 어렵게 내더라도 최상위권이 너무 두터워 다른 과목에 비해 표준점수나 백분위에서 손해를 보는 현상이 나타났다. 급기야 과탐에선 학문적 의미는 없이 극히 복잡한 초고난도 문제나 지엽적인 계산 문제가 출제되는 현상이 나타났다. 이러다 보니 사회탐구로 눈을 돌리는 학생들이 많아진 것이다.

대입 제도에 따라 수험생들이 유리한 점수를 받기 위해 사탐런을 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일지 모른다. 하지만 학교에서 배운 과목으로 수능을 치르면 손해가 나는 상황을 교육 당국이 방치하고 있는 것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익명을 요청한 서울지역 대학 이공계 학과 교수는 “정부는 AI(인공지능)와 반도체 등이 미래 먹거리라고 강조하지만 입시 정책을 보면 웃음만 나온다”며 “학생들이 고교에서 물리나 화학을 제대로 배우지 않고 수능 시험에서도 사회탐구 과목을 봐야 이득을 본다면 과연 이공계 인력 양성이 가능하겠느냐”고 반문했다. 과거 이공계 학과에선 물리나 화학을 필수 이수 과목으로 지정했었지만 지금은 일부 의대에까지 선택 과목 제한이 없어지는 추세다.

이 교수는 “의대 쏠림 현상이 심해 서울 상위권 대학의 이공계 학과의 경우에도 1차 합격했다가 빠져나가는 경우가 허다하다”며 “요즘 대학들은 충원이 급한 처지이기 때문에 이공계에서도 문과생을 가리지 말고 받으라는 요청을 거부할 이유도 없을 뿐 아니라 자칫 교육부의 눈 밖에 나기만 할 수 있다”고 토로했다.

수능을 둘러싼 사탐런 현상은 현재 고1이 보는 2028년 수능 체제 이전까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임성호 대표는 “사탐런 급증 현상은 30년 만에 처음 본다”며 “교육 당국이 입시 정책을 정하면서 충분한 논의 없이 과도하게 확정적으로 예측했던 데서 비롯된 혼란”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올해 수능 시험을 앞두고 사교육 업계는 물론이고 학교 교사들도 수험생들에게 뚜렷하게 어떻게 하라는 방향성을 제시해주기 어려울 것”이라며 “입시 정책과 관련해 정부의 콘트롤타워도 보이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현재 고1부터는 내신 5등급제가 시행되고 있는데, 요즘 혼란상을 보면 교육 당국은 2028년학년도 대입에 대한 점검도 서둘러야 한다. 지금 수험생들은 탐구 과목을 놓고 곤혹을 치르고 있지만 현재 고1이 치르는 수능에서는 수학도 선택 과목이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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