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트야 사벨, 021갤러리 기획전

2024-12-23

기억·기술·감정 융합해 독창적 예술세계 구축

기술은 인간성 회복 돕는 매개체

신체 영상 압축·분해 새차원 전환

포털 결과물→3D 프린터→조각

기술-예술·기술-인간 ‘협력관계’

운동성 작동 발전된 상태로 진화

“AI-인간 협력해 인간다움 강화”

현대인은 AI를 혁신적이고 유용한 기술로 받아들이는 동시에, 그에 따르는 윤리적, 사회적, 경제적 도전에 대해서도 깊이 있게 고민하고 있다. △스마트폰의 음성인식, 자율주행차 등을 통한 생활의 편리성 △의료·교육분야에서의 삶의 질 향상 △새로운 일자리 창출과 생산성 제고 등의 경제적 가치를 적용한 낙관론과 △감시 기술과 빅데이터의 오남용으로 인한 사생활 침해 △AI의 초지능(superintelligence) 가능성에 따른 통제불가능성 등을 우려한 비관론이 맞서고 있다. 하지만 AI가 인간 삶의 전 분야에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라는 인식은 공통된 견해다.

기술은 양날의 검인 것은 분명하다. 기술을 다루는 이들의 철학에 따라 유토피아의 아이콘일 수도 있고, 디스토피아의 파괴자일 수도 있다. 기술을 활용하는 인간의 태도에 따라 양가적으로 흐를 개연성은 다분하다. 021갤러리 기획전인 ‘AXIS 2024 part2’에 참여한 카트야 사벨(Katya Savel)이 기술의 진화를 바라보는 시각은 낙관론에 가깝다. 정확히 말하면 인간의 대응 태도가 윤리적이라면 낙관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제 작품에는 기술에 대한 그 어떤 편견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미국 코넬대에서 순수미술과 미술사를 전공하고 IT업계에서 경험을 쌓았던 그가 창작의 관심사로 삼은 것은 인간과 기술의 공존이다. 기술이 인간의 삶을 혁신하고 발전시키는 것과 함께 인간성 회복을 돕는 매개체가 될 수 있다는 믿음을 견지한다. 인간과 기술의 공존 가능성에 무게 추를 두고 미술적인 장치들로 가시화하고 있다.

“기술적이고 인공적인 것과 자연적인 날 것의 병치를 통해 인간과 기술, 자연의 조화 가능성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작업은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융합으로 진행된다. 이번 전시작들은 자신이나 지인의 신체를 촬영한 영상 20여개를 신경망과 머신러닝에 입력한 후에 실행 값을 제시해 얻은 결과물들이다. 실행되는 과정에서 20개의 영상은 압축되고, 분해되고, 조합된다. 그 결과 20개의 영상은 3차원의 인간이 경험할 수 없는 새로운 차원인 512차원으로 전환된다.

그가 디지털과 아날로그를 결합하는 과정에서 아날로그의 상징으로 활용하는 것은 신체다. 자신의 신체를 촬영하거나 인터넷에서 찾은 신체 이미지를 작업의 출발에 놓는다. 이때 그가 신체를 어떤 정서의 결과물로 얻을 것인지를 결정하는 요소는 기억이다. 어느 순간 어떤 공간에서 그가 느꼈던 기억들을 소환해 신체를 촬영하는 과정에 이입한다.

이번 전시작들에는 멕시코에서 그가 경험했던 따뜻했던 기억들이 소환됐다. 따뜻하고 좋았던 기억들을 기반으로 직접 촬영하거나 디지털 공간에서 찾은 신체 이미지들은 새로운 차원으로서의 변신을 위한 자료로 컴퓨터 프로그램에 투입된다. 그는 신체 중에서도 특히 손에 관심을 집중한다. 그에게 손은 “창조의 주체이자 기술과 인간성을 연결하는 매개체”로 다가온다.

그에게 디지털 프로그램은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연결되는 포털(문)과 같다. 완전히 다른 세상으로 향하는 문을 통과한 영상은 프로그램이 실행되는 순간 운동성을 확보하고, 그가 입력한 실행 값에 따라 투입된 영상은 변형되고, 새로운 형상으로 재탄생한다. 이런 과정 속에서 기억 또한 변형되고 확장된다.

“AI를 둘러싼 차가운 시선을 따뜻한 시선으로 치환하기 위해 저의 기억과 사랑하는 사람들의 신체 그리고 기술을 접목했습니다.”

그는 디지털 프로그램을 새로운 차원으로 전환하는 문으로 인식한다. 그는 디지털 프로그램을 “슈퍼맨이나 스파이더맨 같은 히어로들이 위력을 발휘하기 위해 입는 옷”에 비유했다. 자신이 촬영하거나 선택한 이미지나 영상들이 컴퓨터 프로그램에 의해 무려 512차원으로 전환되는 것이, 히어로들이 망토를 걸치고 무소불위의 능력을 발휘하는 것과 동일하게 바라본다.

포털에서 변형된 결과물들은 디지털 비디오 또는 변형된 이미지로 출력되거나 3D 프린터를 활용한 조각으로 구현된다. 이번 전시에 걸리 변형된 이미지를 출력한 평면 작품은 렌티큘러에 70~80여개의 이미지를 겹친 작업이다. 렌티큘러는 얇은 플라스틱이나 유리 같은 투명한 렌즈 배열을 사용하여 여러 이미지를 하나의 표면에 겹쳐서 나타내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여러 개의 이미지를 일정한 간격으로 분할하고 렌티큘러 렌즈 표면 아래 배열해 특정 각도에서 한 이미지씩 보이는 기법이다. 관찰 각도에 따라 다른 이미지를 볼 수 있는 전환 효과(Flip Effect)‘나 깊이감 있는 입체감, 확대나 축소 등의 왜곡된 느낌을 주는 ’줌‘ 효과로 연결된다.

또 다른 전시작인 설치 작품들은 영상 속 이미지를 3D 프린터로 제작한 조작들을 조합한 작품이다. 아날로그 세상의 인체가 영상으로 전환되고, 그 영상이 디지털 상에서 512차원으로 거듭나고, 그 중 일부를 다시 아날로그 물성으로 조각으로 구현하고, 제작된 조각들을 조합해 설치했다.

디지털 프로그램을 통해 투입한 영상들이 압축, 분해, 조합되는 과정에서 드두러지는 것은 운동성이다. 끊임없는 운동성 속에서 변화가 거듭된다. 이런 방식을 채택한 것에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엔텔레키(entelecheia)‘의 영향이 컸다. ’엔텔레키‘는 문자 그대로 ’목적을 안에 가지고 있다‘는 뜻이다.

어떤 것이 자신의 잠재력을 최대한 발휘해 완전한 상태에 이르기 마련인데, 본성을 완전한 상태로 실현해 가는 상태, 즉 유동하는 상태를 아리스토텔레스는 엔텔레키라고 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엔텔레키‘를 차용해 기술과 인간의 공존을 설명하고 싶었습니다. 인간과 기술이 끊임없이 서로 관계를 맺으며 긍정적인 변화로 나아가는 과정에 운동성의 작용이 필요하니까요.”

과거의 기억과 현재의 기술, 그리고 개인적인 감정을 융합해 독창적인 예술 세계를 구축해 온 카트야 사벨. 그는 기술과 예술, 기술과 인간을 대척점에 놓기보다 협력적인 관계로 인식한다. 이런 관계 속에서 엔텔레키가 작동하고, 발전된 상태로 진화한다고 믿는다.

기술을 인간 중심적이고 따뜻한 방향으로 활용하는 그의 태도가 기술의 인간성 상실 문제를 극복하는 대안이 될 것인지에 대한 명확한 판단은 아직 유보상태다. 하지만 기술을 여성성과 섬세한 감성으로 접근하는 그의 작업이 기존의 기술 중심적이며 남성적인 접근과는 차별화 되는 것은 명확하다.

“AI와 인간의 집단지성은 유사한 구조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협력을 통해 인간다움을 강화할 수 있다고 봅니다. 기술은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인간의 정신적·영적인 차원을 확장하는 매개체인 것이죠.” 뉴욕, 서울 등 전 세계에서 전시되고, 다양한 상을 수상하며 예술성을 인정받고 있는 그의 작품은 27일까지 021갤러리에서 만날 수 있다.

황인옥기자 hio@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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