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 들어(4월8일 기준)상장사 28곳이 '매매거래정지'됐다. 묶인 자금만 2조원이다. 투자자들은 거래 정지 장기화에 대한 우려를 표하는 동시에 올해부터 시행되는 상장폐지 규정 강화에 기대를 걸고 있다. 한국거래소가 거래정지 장기화를 해결하고 좀비기업 퇴출을 가속화하기 위해 개선 기간을 축소한 것이 효과를 보일 것이라는 기대감이다.
9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연초부터 지난 8일 기준 매매거래정지(스팩합병, 코넥스 제외)된 상장사만 28종목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올해가 시작된 지 4개월 만에 전년(39곳)도의 71% 수준을 기록한 것이다.
구체적인 사유로는 상장폐지 사유발생(10곳), 감사의견 거절(6곳), 상장적격성 실질심사 대상(6곳), 사업보고서 미제출(2) 등 순으로 거래가 정지됐다. 이 밖에 투자경고 및 위험, 투자자 보호 측면 등도 거래 정지 사유로 지정됐다.
보통 상장폐지 사유에는 ▲매출액 미달 ▲자본금 전액 잠식 ▲시가총액 부족 ▲감사 의견 부적정 ▲유동 주식 수 대비 거래량 미달 ▲사업보고서 미제출 ▲횡령·배임 혐의 등이 포함된다. 상폐 사유에 대한 실질심사 절차에 들어가는 경우는 상장적격성 실질심사 대상으로 분류된다.
투자자보호 측면에서 거래를 정지했으나 문제는 개선기간의 장기화다. 개선기간이 길게 부여될수록 거래정지에 묶인 투자자들의 속은 타들어갔다. 앞서 지난해 8월25일 기준 거래정지 상장사는 총 100곳으로 평균 거래정지 기간은 438일이다. 이 중 주성코퍼레이션은 올해 기준 약 5년간 거래가 정지된 상태다. 이들 종목의 시가총액은 10조원 규모로 많은 소액주주들의 자금이 거래 정지에 발목을 잡힌 것이다.
올해는 투자자들의 불안과 기다림이 조금은 해소될 수 있을 전망이다. 올 들어 묶인 자금(시가총액)은 약 2조원 수준(1조9992억원)이다. 연초 한국거래소는 위 같은 문제점을 해소하고, 좀비기업 퇴출 가속화를 위해 개선기간을 축소하는 등 상폐 규정을 강화했다.
상장폐지 절차 효율화 부문에서 살펴보면 코스피는 심의 단계가 기존과 동일한 대신 형식적 사유(이의 신청이 가능한 것)의 개선 기간을 최대 2년에서 1년으로 줄였고, 실질 사유 경우 최대 4년에서 2년으로 대폭 줄였다. 코스닥은 형식적 사유의 심의 단계는 동일하고 실질심사의 경우 심의주체가 동일한 2심과 3심을 합쳐 2심제로 축소, 실질심사 최대 기간 역시 2년에서 1년 6개월로 줄였다.
상폐 사유 중 가장 빈도가 많은 감사의견 미달은 사유 발생 이후 다음 사업연도 감사의견 미달(사업보고서 미제출도 포함)시 즉시 상장폐지 되는 것으로 강화했다. 기존에는 이의신청이 허용되는 형식적 상장폐지 사유로 다음 또는 다다음 사업연도 감사의견이 나올 때까지 개선 기간을 부여했었다. 세칙 사항인 최대 개선기간 축소와 형식·실질 병행심사는 3월 중으로 시행됐으며 규정 사항인 심의단계 축소는 오는 7월부터 시행될 예정이다. 이에 따라 매매거래 정지 기간을 최대 2년 축소할 것으로 기대된다.
이상호 자본시장연구원은 "상장폐지 요건 강화 방안은 한계기업의 시장 퇴출을 촉진하고 자본시장의 신뢰도를 회복하는 데 있어 중요한 진전으로 평가된다"며 "특히, 감사의견 비적정 기업에 대한 개선기회를 1회로 제한하고 퇴출 절차를 신속화하는 조치는 퇴출제도의 비효율성을 완화하고 시장 건전성을 높이는 긍정적인 변화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매매거래정지 부여 사유가 20개 정도로 많고, 거래재개 요건으로 '원인 해소'에 초점을 맞춘 것이 문제라는 지적도 존재한다. 미국의 경우 '공시'를 거래재개 요건으로 해 상대적으로 신속한 거래가 재개되고 있다. 파산·회생절차 등 계속 계속기업으로서의 존속 능력에 중대한 의문이 제기되는 사안에 대해서도 해당 사안이 투명하고 충실하게 공시됨을 전제로 거래의 연속성을 보장하고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감사의견 비적정성은 재무제표가 정상적이지 않은 것이기 때문에 심각한 정보 비대칭 상태로 거래를 즉시 정지하는 게 맞다"며 "하지만 이런 상황이 아니고선 관련 정보만 충분히 공시가 된다면 거래를 허용해 시장 가격으로 형성하는 방안이 거래 절차의 효율성을 크게 높일 수 있는 방안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