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밸류업프로그램이 실시된 지난해 코스피 상장사의 배당 규모와 배당수익률 모두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1년새 주가순자산비율(PBR)이 오히려 후퇴해 주가가 여전히 저평가 되어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주요 기업이 밸류업 공시를 외면하고 오너 중심 지배구조가 여전해 배당금이 늘어났더라도 ‘코리아디스카운트’ 해소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평가다.
한국거래소가 16일 유가증권시장 결산 법인의 현금배당 실적을 분석한 결과, 지난해 결산을 마친 상장사(807사) 중 70%(565사)가 현금배당을 실시, 총 배당금은 30조3451억원으로 집계됐다. 배당을 한 법인 수는 전년 대비 7사 늘어나는데 그쳤지만 총 배당금은 같은 기간 10.5% 늘어났다. 평균 배당금은 537억원으로 지난 2020년(627억원) 이후 4년 만에 가장 컸다.
코스피 보통주와 우선주 평균 시가배당률은 각각 3.05%, 3.70%로 집계돼 최근 5년 내 가장 높았다. 보통주 시가배당률은 국고채 평균 수익률(3.17%)보다도 낮았지만 우선주 시가배당률은 2년만에 국고채 수익률을 넘어섰다. 지난해 배당법인의 평균 배당성향은 전년 대비 0.43%포인트 증가한 34.74%를 기록했고, 배당법인의 평균 주가등락률은 -5.09%로 코스피 수익률(-9.63%)보다 4.54%포인트 높았다. 밸류업프로그램을 계기로 전반적으로 배당 규모가 늘어나는 등 주주환원 움직임이 커진 것이다.

그러나 ‘국내 증시 저평가’ 해소라는 밸류업프로그램의 목표와는 여전히 거리가 멀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코스피 PBR은 15일 기준 0.87배로 1년 전(0.97배)보다 낮아졌다. PBR이 1배보다 낮다는 것은 주가가 기업의 청산가치(자산)보다도 낮을 정도로 주가가 저평가됐다는 뜻이다. 배당금을 늘리는 등 주주환원 정책을 펼쳤지만 여전히 고질적인 ‘코리아디스카운트’ 해소엔 역부족이었다는 뜻이다.
특히 메리츠증권에 따르면 밸류업프로그램이 추진되기 시작한 지난해 3월 전체 코스피 상장사의 69%가 PBR 1배를 밑돌았지만, 지난달에는 73%로 오히려 비중이 늘어났다. PBR이 0.5배 미만인 상장사가 같은 기간 38%에서 45%로 늘어나면서다.
이처럼 오히려 한국 주식의 저평가가 심화되면서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 신흥지수에서 지난달 기준 한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8.99%까지 추락했다. 메리츠증권 투자전략팀은 보고서에서 “구조적 저평가의 핵심에는 낮은 PBR, 불투명한 지배구조, 단발성에 그치는 주주환원 정책이 자리잡고 있다”며 “지배구조 개혁 없는 단기 정책만으로는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해소하기 어렵다”고 짚었다.
당장 기업들의 밸류업 참여 의지도 부족하다. 신한투자증권에 따르면 밸류업 공시를 마친 기업(16일 기준)은 126곳에 불과했다. 밸류업 ‘모범생’인 메리츠금융지주는 이행평가를 포함 총 네번 밸류업공시를 올렸지만 코스피·코스닥 상장사 중 약 95%는 공시에 참여조차 하지 않았다. 삼성, 한화, GS, 네이버, LS그룹 등은 일부 비핵심계열사만 공시를 올리거나 아예 공시를 올리지 않았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차기 정부에서 윤석열 정부의 밸류업을 그대로 이어가려하진 않을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기업들도 나설 유인을 느끼지 못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정빈 신한투자증권 연구원은 “상장사의 저조한 참여는 밸류업 정책의 확산과 실질적 성과 창출에 있어 가장 큰 제약 요인”이라며 “밸류업 공시가 실질적으로 이뤄지면 기업 평가와 투자자 반응까지 긍정적 효과가 나온다는 선순환 구조를 설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