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꽈배기, 다이아몬드 등 언제봐도 변함없이 정겹고 고급스러운 니트의 클래식 아란 무늬는 어떻게 한국까지 전해졌을까. 본격 니트 시즌을 맞아 이 궁금증을 해결할 수 있는 기회다. 제주 로컬 니트 브랜드 ‘한림수직’이 오는 8일부터 16일까지 서울 계동 한옥 갤러리 창창당에서 ‘한림수직, 기억의 흔적’을 주제로 팝업 전시를 연다.
1954년에 아일랜드에서 제주로 부임한 패트릭 맥그린치(1928~2018) 신부는 가난한 지역민을 자립시킬 방법을 고민하다 면양 35마리를 사서 목장을 조성한다. 이어 아일랜드 수녀 3명을 초청해 제주 여성들에게 뜨개질을 가르쳤다. 푸른 눈의 수녀들은 아일랜드 서쪽 아란섬에서 유래한 꽈배기, 다이아몬드 등 다채로운 아란 무늬를 전수했고, 제주 여성들은 꼼꼼한 손기술로 탄탄하면서도 보드랍고 고급스러운 니트를 만들어냈다. 1959년 제주 한림읍 성이시돌목장에서 시작된 한림수직은 제주 지역 최초의 양모 니트 브랜드로 스웨터와 카디건, 담요 등 문양의 아름다움과 품질이 입소문이 나면서 금세 명품 대접을 받았다. 한림수직은 제주 칼호텔과 서울 조선호텔에 직영매장을 운영할 정도로 호황을 누렸으나 외국산 원사와 화학섬유의 저가 공세와 속도전에 밀려 2005년에 문을 닫았다.

전설로 끝나는 듯했던 한림수직은 2021년 제주 기반 콘텐츠그룹 재주상회가 이시돌농촌산업개발(성이시돌목장)과 함께 ‘한림수직 재생 프로젝트’를 시작하며 다시 조명을 받았다. 성이시돌목장에서 버려지던 양모와 재생 양모를 섞은 울 100% 실로 한림수직 니트류를 일부 복원해 펀딩을 시도한 결과, 며칠만에 1억원어치가 팔렸다. 한림수직을 기억하는 세대와 한림수직의 이야기에 매료된 이들의 성원으로 매년 성장을 거듭해 2024년까지 10억원 넘는 누적 매출을 달성했다. 현재 한림수직은 성이시돌목장의 성이시돌센터와 디앤디파트먼트 제주 외에 한림수직 온라인몰과 더현대닷컴, 29cm에서 만나볼 수 있다.
이번 팝업전시는 ‘한림수직 재생 프로젝트’ 5년째를 맞아 재주상회가 서울과 제주, 일본 도쿄에서 여는 릴레이 형식의 기념 행사다. 서울 계동에서 열리는 팝업은 한림수직의 전통, 복원, 재해석 과정을 하나의 서사로 엮고, 서울과 제주를 연결하는 전시다. 국내에 아란무늬 니트를 처음 선보인 한림수직의 이야기와 더불어 옛 한림수직 고객들이 오랫동안 간직한 한림수직 제품 13점과 거기에 얽힌 사연을 액자 형식으로 선보인다. 전통의 장인정신에 현대적인 감각을 더한 2025년 제품도 선보인다.
또한 생계를 위해 이방인에게 배운 기술로 한 땀 한 땀 명품을 만들어낸 제주 여성들과, 그 섬세한 손기술로 완성된 니트류를 아껴 입고, 소중히 대물림해 온 사람들의 기억을 엮어 하마터면 잊힐 뻔했던 스토리를 만날 수 있는 자리다. 전시가 열리는 첫 주말엔 프랑스 자수 전문가로부터 자수 포인트 수선을 받을 수 있는 ‘사용의 흔적-나의 오랜 니트에 새긴 자수’ 프로그램도 진행한다. 오래됐지만 소중한 옷을 가져오면 된다.
재주상회 관계자는 “한림수직 재생 프로젝트는 한림수직의 제조 기술과 뜨개질 문화를 계승하는 ‘기술 복원’을 넘어 제주의 일상과 문화에 관한 ‘기억의 복원’을 목표로 한다”며 “한림수직이 만드는 이와 입는 이, 전통과 새로움을 연결하는 제주 대표 로컬 브랜드로 성장해 나가도록 많은 관심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