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언제부턴가 ‘슬로 라이프’라는 게 유행하기 시작했다.
정신없이 바쁘게 사는 ‘속도 중독’ 사회에 브레이크를 걸고, 천천히 삶을 돌아보며 여유와 균형을 갖추며 살자는 라이프스타일.
패스트푸드에 대한 반감이 대표적이다. 전통 조리법을 따르는 ‘슬로 푸드’라는 게 건강식으로 더 맛있고 더 고급져 보인다.
이 바쁜 세상에 천천히 살아가는 것.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아니라 그렇게 살아도 된다는 것.
삐죽한 생각으로 보면 그것도 특권이다.
나는 요즘의 고독사란 ‘천천히, 스스로 선택하는 죽음’이라고 생각하게 됐다.
그런 말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슬로 데스(death)’라고나 할까.
슬로 라이프와는 전혀 결이 다르다.
그러니까 ‘천천히 죽음을 선택한다’는 건.
자살 같은 ‘빠른 죽음’이 아니라,
죽음에 이르기까지 자기 자신을 내버려두는…
자포자기하는, 긴 죽음의 여정이라고나 할까.
패스트푸드 쓰레기에 뒤덮인 사내가 스스로 천천히 죽어갔다.
아, 사실 죽기는 ‘빨리’ 죽었다.
그 사람은 아직 50대 후반이었으니까.
고독사 현장에선 가득 쌓인 술병과 담배꽁초를 반복적으로 접한다.
그리고 늘 대충 때운 즉석조리 식품들.
다가구주택에서 의뢰가 왔다.
짧은 계단을 올라 현관문을 열었더니 발 디딜 틈도 없이 쓰레기 더미가 가득 차 있었다.
페트병으로 쏟아 마신 소주병들.
라면 봉지.
그리고 믹스커피를 털어마신 대용량 박스들이 나뒹굴고 있었다.
발길이 닿는 모든 곳에서 쓰레기가 밟혔다.
그중에서도 쓰레기가 가장 많은 곳은 안방이었다.
고인의 마지막 흔적은 그곳이었다.
그러니까 그는 쓰레기 더미 위에서 죽은 것이다.
장작 더미를 쌓고 화장하는 고승들의 장례처럼, 그는 좁은 안방에 부피 있게 쌓인 쓰레기 더미 위에서 죽었다.
누군가 불을 댕겼다면 그 또한 장엄한 다비식 못지않았을 거란 불경한(?) 생각조차 들었다.
“혼자 살다보니 귀찮아서 즉석식품이랑 라면만 드셨나봐.”
집 안 한편에 조그만 주방은 있었다.
하지만 싱크대도 쓰레기통이었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