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 비상계엄 사태
대통령 주변의 ‘수상한 사람들’- 정국을 보는 ‘새의 눈’⑤
국회의원을 지낸 한 원로 교수는 개탄했다. 최근 윤석열 대통령을 둘러싼 ‘무속 비선’ 논란에 대해 묻자 이렇게 털어놨다.
그리고리 라스푸틴의 스토리는 유명하다. 그는 러시아 제국의 몰락을 앞당긴 ‘괴승’ ‘요승’이었다. 떠돌이 수도승이었던 그는 차르(Tsar·황제) 니콜라이 2세에 하나뿐인 외동아들의 병을 주술로 낫게 해 황제·황후의 전폭적 환심을 얻었다. 이후 정실 인사를 남발하며 국정을 주무르는 비선 실세가 됐다. 전쟁터에 나간 황제에게 신의 계시라며 군사작전까지 지시해 러시아군의 참패를 불렀다. 그가 1916년 12월 살해되고 두 달 뒤 로마노프 왕조는 붕괴했다.
‘무속’이 12·3 계엄 정국을 흔들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의 주변을 맴돈다는 법사·도사·보살이 잇달아 수사 대상에 오르면서 비선 의혹이 부상하고 있다. 대선 후보 시절 불거졌던 무속 논란이 재점화했다.
진작 눈치챘어야 했다. 2021년 국민의힘 대선 경선 TV토론 때 윤석열 대통령 후보는 손바닥에 임금 ‘왕(王)’ 자를 적은 채 나왔다. 손바닥 안의 ‘왕’ 자를 보며 대권을 꿈꿨던 것일까.
무속 네트워크를 의심했어야 했다. 김건희 여사는 “내가 신(내림)을 받거나 한 건 아닌데 웬만한 사람보다 (점을) 더 잘 본다”고 했다. “남편도 약간 영적인 끼가 있어서 나랑 연결된 것”이라고 말한 적도 있다고 한다.
윤석열 대통령 주변의 ‘무속인’들
12·3 비상계엄 ‘설계자’로 의심받는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이 점집에서 역술인으로 활동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논란은 증폭됐다. 노 전 사령관이 운영하던 점집에서 계엄 선포 후 군부대 배치 계획이 적힌 수첩을 경찰이 확보했다고 한다. 정보사는 북한 정보와 첩보를 수집하고 과학적으로 분석하는 군 정보기관이다. 그 책임자였던 노 전 사령관이 점과 관련됐다는 소식에 사람들은 더 놀라고 있다.
‘지리산 도사’로 알려진 정치 브로커 명태균씨는 윤 대통령 부부와 연락하며 공천에 개입했다는 의혹 등으로 구속기소 됐다. 그가 “김건희 여사와 영적 대화를 많이 한다”고 말했다거나 대통령실 이전에 개입한 듯한 정황이 발견됐다는 주장이 정치권에서 나오기도 했다.
‘건진법사’ 전성배씨는 윤 대통령 대선 캠프 산하 네트워크본부에서 활동했던 인물이다. 2018년 공천 대가 억대 금품을 받은 혐의로 체포된 그는 구속을 면했지만, 이권에 개입했다는 의혹을 사고 있다.
역술인 천공은 18일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 게시한 영상에서 “(윤석열 대통령은) 하늘이 내린 대통령”이라며 “하느님을 의심하면 안 된다"고 주장했다.
천공은 윤 대통령이 검찰총장이던 시절부터 정치 활동에 조언을 해줬다고 한다. 김건희 여사의 소개로 윤 대통령과 인연을 맺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윤 대통령 후보가 2021년 대선 경선 토론회를 할 때 손바닥에 ‘왕(王)’를 그려준 인물로 지목된다. 윤 대통령 부부와 친분을 내세우며 자신을 국사(國師)가 될 인물이라고 말하고 다녔다는 보도도 있었다.
시대착오적 신정 정치 시대?
주술이나 무속의 세계에 대한 관심을 갖는 것 자체는 문제가 없다. 기성 종교이 채워주지 못하는 부분을 샤머니즘이 메워주고 기능을 부정할 수 없다. 한국뿐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도 동서고금에 걸쳐 다 있는 현상이다.
다만 주술 무속이 '정치 권력'이란 공적 영역에 침입하면 얘기가 달라진다. 라스푸틴이나, 공민왕의 총애를 얻어 호가호위하다 고려를 망하게 한 요승 신돈(辛旽)의 사례처럼 이성적 판단이 결여된 ‘주술정치’ ‘무속정치’는 비극적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이재묵 한국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줄줄이 나오는 ‘수상한 사람들’에 대해 이렇게 진단했다.
왜 윤석열 정권에서는 무속 논란이 끊이지 않는 걸까. 기존의 권력자-비선 관계와 무엇이 다른가. 권력자가 무속에 집착하면 어떤 문제가 발생하나. 정치·사회·종교학자들과 접촉해 무속 논란의 실체를 추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