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스턴 클러스터 성공 모델 이식하기 위해 한국 찾아간다”[최준호의 혁신창업의 길]

2025-09-04

혁신창업의 길 88. 요하네스 프루에하우프 랩센트럴 회장

‘지구상에서 가장 혁신적인 1제곱마일(the most innovative square mile).’ 미국 매사추세츠에 있는 캔달스퀘어(Kendall Square)를 표현하는 말이다. 이곳은 세계 바이오산업의 심장이라 불리는 보스턴 클러스터에서도 핵심 중 핵심인 지역이다. 코로나19 백신을 개발한 모더나가 이곳에서 태어났고, 구글·아마존·바이오젠 등 글로벌 기업 연구소들이 몰려있는 곳이기도 하다. 현대차가 인수한 세계 최고의 로봇기업 보스턴다이내믹스의 AI연구소가 있고, 인근 수㎞ 안에 매사추세츠공대(MIT)와 하버드대 캠퍼스가 위치해 있다. 이 좁은 곳의 연구실에서 탄생한 아이디어와 기술이 창업으로 이어지고, 다시 학계와 산업으로 이어지는 혁신 순환의 구조를 이룬다. 이런 첨단 생태계의 한복판에서 수백 개 바이오 스타트업을 길러낸 인물이 있다. 요하네스 프루에하우프. 랩센트럴의 회장이자 바이오랩스의 최고경영자(CEO)다. 그는 켄달스퀘어 한복판에 자리한 스타트업 인큐베이터를 기반으로 연구자와 창업가·투자자·글로벌 제약사를 연결하며 보스턴을 세계 최고 바이오 클러스터로 키운 주역 가운데 한 사람으로 꼽힌다. 코로나19 팬데믹이 끝나고 전 세계적 긴축이 시작하면서 스타트업 투자도 혹한기에 들어갔지만, 보스턴은 여전히 전 세계가 주목하는 혁신 클러스터다. 한국도 서울대병원이 지난 4월 이곳에 ‘글로벌 R&D 허브센터‘를 열었고,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도 내년 초를 목표로 ’코리아-보스턴 브릿지센터‘를 준비 중이다. 프루에하우프 회장은 오는 10~11일 대전 KAIST에서 열리는 ‘혁신창업국가 대한민국 국제포럼’의 기조연사로 참석하기 위해 방한한다. 첫 한국 방문이다. 그는 본격 방한에 앞서 본지와 화상 인터뷰를 갖고, 코로나19 이후 투자 환경의 변화, 보스턴 생태계의 성공 요인, 한국 스타트업 창업 환경의 과제와 가능성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의견을 밝혔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보스턴의 스타트업 투자 상황이 궁금하다.

팬데믹 기간 동안 보스턴에서 특히 생명공학 산업은 코로나 백신을 단기간에 개발한 성과로 큰 호황을 누렸다. 기존 전문투자자 외에도 이른바 ‘관광 자금(tourism money)’이라는 단기자금이 대거 유입됐다. 그러나 2022년 중반 이후 이런 비전문 투자자들이 빠져나가면서 시장이 급격히 위축됐다. 2023년과 2024년 내내 자금 조달 환경은 극심한 침체를 겪었다. 지난해 말 잠시 회복세가 있었지만, 올 상반기 트럼프 정부가 들어서면서 정치·경제적 불확실성으로 투자 심리가 다시 얼어붙었다. 겉으로는 대형 투자가 몇 건 있어 총액은 유지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초기 단계의 소규모 투자는 사실상 고갈됐다.

신약 개발의 산실, 보스턴 클러스터

그럼에도 보스턴 클러스터는 여전히 전 세계에서 가장 성공적인 생태계로 꼽히는데.

이곳의 대표적 성과는 모더나가 개발한 코로나19 백신처럼 세계적으로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신약 개발이다. 이런 성공의 배후에는 학계와 스타트업·인큐베이터·제약사가 한 공간에 밀집해 긴밀히 협력하는 구조가 있다. 이 속에서 연구자가 연구개발 결과를 바탕으로 창업하고 기업을 키운 뒤, 다시 학계로 돌아가는 유기적 순환 구조가 가능하다. 이런 지리적 근접성과 네트워크가 핵심 성공 요인이다.

당신의 랩센트럴과 바이오랩스은 어떤 역할을 하나

바이오 스타트업이 태어나고 성장하는 데 필요한 실험실과 사무공간을 제공하는 인큐베이터 역할이다. 하지만 단순히 스타트업에게 실험실 공간을 제공하는 수준을 넘어, 보스턴 클러스터 전체를 연결하는 핵심 허브 역할을 해왔다고 자부한다. 학계와 바이오 스타트업·글로벌 제약사·벤처캐피털이 서로 긴밀하게 협력할 수 있는 플랫폼을 마련했고, 이를 통해 연구자가 아이디어를 기업으로 발전시키고 제약사와 투자자가 혁신을 발굴하는 순환 구조를 가능하게 했다. 특히 정부 보조금이나 기부에 의존하지 않고 스타트업의 사용료와 제약사 파트너십으로 운영되는 자립형 모델을 구축해, 공공과 민간 모두가 이익을 얻는 ‘윈윈 구조’를 만들어냈다. 제약사는 혁신 스타트업을 가까이에서 발굴할 수 있고, 스타트업은 이곳의 고비용 장비와 인프라를 저렴하게 활용할 수 있으며, 투자자들은 잠재력 있는 기업을 빠르게 포착할 수 있는 생태계가 형성된 것이다.

(바이오랩스는 프루에하우프 회장이 2010년 설립한 민간 인큐베이터다. 보스턴에서 시작해 미국 여러 도시와 해외로 확장했다. 랩센트럴은 2013년 매사추세츠 주 정부 지원으로 만든 비영리 기관으로, 보스턴 켄달스퀘어에만 있다. 프루에하우프 회장은 최근까지 두 곳의 CEO를 겸임했으나 최근 랩센트럴은 이사회 의장으로만 활동한다.)

랩센트럴과 바이오랩스 출신 기업 중 잘 알려진 곳을 소개해달라.

랩센트럴 출신으로는 신생아용 폐렴구균 백신을 개발한 아피니백스가 대표적이다. 보스턴 아동병원 한 연구자가 신생아용 폐렴구균 백신 아이디어를 낸 게 스타트업이 됐고, 랩센트럴에서 성장했다. 이후 임상 2상에 진입할 즈음, 글로벌 제약사 GSK에 약 28억 달러에 인수됐다. 바이오랩스에서는 팬디온 테라퓨틱스가 유명하다. 면역조절 치료제를 개발하다 임상 1상 단계에서 머크에 약 18억 달러에 매각됐다.

랩센트럴 입주로 기술력 인정받아

입주 경쟁이 만만치 않겠다.

입주 수요가 워낙 많다 보니 경쟁도 치열하다. 실제로 입주를 원하는 스타트업은 심사를 거쳐야 하며, 한정된 공간을 두고 선발 과정이 존재한다. 따라서 입주에 성공했다는 사실만으로도 해당 스타트업이 일정 수준 이상의 기술력과 잠재력을 인정받았다는 의미를 가진다.

한국 스타트업도 있나.

랩센트럴에 ‘K2B 테라퓨틱스’가 입주해있다. 이 회사는 서울에 있는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의 기술을 기반으로 설립됐다. 보스턴대 경영대학원 김종성 교수가 창업자로 참여하고 있다.

(K2B테라퓨틱스는 siRNA(짧은 간섭 RNA) 전달체 기술을 바탕으로 항암제를 개발하는 바이오스타트업이다. 권익찬 KIST 박사와 김종성 교수가 2020년 공동창업했고, 현재 전임상 단계에 와있다. 김 교수가 최고경영자(CEO), 권익찬 박사 등 KIST 연구진들이 기술자문을 맡고 있다. 회사명 K2B는 ‘From KIST To Boston’(KIST에서 보스턴까지)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한국이 보스턴 클러스터에서 배워야 할 점이라면.

‘위험을 감수하는 기업가 정신’이다. 미국에서는 실패가 낙인이 아니라 학습으로 여겨져 재도전이 장려된다. 한국도 이런 문화적 장벽을 극복해야 한다. 또 장기적 안목을 가진 벤처캐피털(VC)의 성숙도도 중요하다. 미국은 1940년대부터 벤처 모델을 발전시켜 초기 기술 스타트업이 매출 없이도 성장할 수 있었다. 한국도 기초과학 역량을 창업으로 연결하려면 기술 이전의 단순화와 VC 역량 강화를 해야 한다.

한국도 독일도 R&D 패러독스 앓이

한국은 R&D 패러독스가 문제다.

한국은 세계 5위 수준의 R&D 투자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성장 엔진이나 일자리 창출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거로 안다. 내 조국 독일도 크게 다르지 않다. 막스플랑크나 프라운호퍼 같은 세계적 연구소가 있음에도 R&D 패러독스를 겪는다. 연구·개발 지출은 많고 논문 성과도 뛰어나지만 창업가와 유니콘 기업은 부족하다. 결국 기초과학이 논문에 머물고 사회적 혁신으로 이어지지 않는 게 문제다. 연구 성과가 창업과 상업화로 이어질 수 있도록 제도와 환경 개선이 필요하다.

랩센트럴 모델이 한국 같은 환경에서도 적용될 수 있을까.

충분히 가능하다. 다만 조건이 필요하다. 기술이전 절차 단순화, 장기적 벤처캐피털 활성화, 그리고 정부·학계·산업계·투자자가 함께 참여하는 협력 플랫폼이 그것이다. 이런 조건이 갖춰지면 한국도 보스턴 같은 혁신 생태계를 구축할 수 있다.

한국과 협력 계획은 있나.

이번 방한의 목적 중 하나가 랩센트럴과 바이오랩스의 성공 모델을 한국에 이식하기 위한 파트너를 찾는 거다. 한국에 인큐베이터를 설립해 우리의 글로벌 네트워크에 편입시키고 싶다. 네트워크가 늘어날수록 경험이 공유되고, 한국 연구자와 스타트업들도 글로벌 생태계와 긴밀히 연결될 수 있다.

요하네스 프루에하우프(Johaness Fruehauf)

독일 시민권자다. 프랑크푸르트대에서 의학을 전공하고, 하이델베르크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2002년 하버드대 의대에서 박사후과정을 밟기 위해 보스턴으로 왔다. 처음엔 독일로 돌아가 교수가 될 계획이었지만, 현지에서 바이오텍 산업을 접하며 진로를 바꿨다. 2005년 첫 바이오텍 기업 시퀀트 파마슈티컬스를 창업했고, 2010년 약 1억5000만 달러에 매각하면서 성공한 창업가로서의 입지를 다졌다. 이후 보스턴의 혁신 생태계를 이끄는 인큐베이터 랩센트럴과 바이오랩스를 설립해 수백 개의 스타트업을 지원해왔다. 현재 랩센트럴 회장과 바이오랩스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보스턴 클러스터

1000개가 넘는 생명과학 기업이 밀집해 있는 세계 최대 규모의 바이오 허브다. 약 14만 명이 넘는 종사자가 이 지역 바이오 산업에 몸담고 있다. 이 중 연구개발 인력만 5만 명에 달한다. 코로나19 팬데믹 시기인 2021년 벤처 투자가 137억 달러로 정점을 찍었지만, 최근 경기 침체 속에서도 올해 상반기에만 27억 달러가 넘는 투자가 이뤄졌다. 켄달스퀘어를 중심으로 노바티스·화이자 등 30여 개 글로벌 제약사와 MIT·하버드·매사추세츠종합병원 등 세계 최고 연구·임상 기관들이 몰려있어 스타트업과의 협력이 일상화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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