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는 다시 온다

2025-10-23

금융의 역사는 금융위기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금융산업의 역사는 길지 않지만, 개별 국가나 세계는 이미 크고 작은 위기를 수없이 경험했다. 17세기에 금융업이 본격적으로 발전하기 시작한 이후 미국과 영국에서는 거의 10년을 주기로 금융위기가 반복되었다. 21세기 들어서도 세계는 닷컴버블 붕괴, 글로벌 금융위기, 유럽재정위기 등 크고 작은 위기를 경험해 왔다. 그 뿌리에는 변함없는 사람의 본성인 망각과 탐욕이 있다. 위기 직후 금융감독규제가 대폭 강화되었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다시 풀어지는 현상도 반복되어왔다. 금융위기의 역사를 연구했던 킨들버그 교수는 “금융위기는 다년생 잡초처럼 질긴 것”이라고 표현했다. 그럼에도 갤브레이스 교수의 말처럼 “금융의 세계만큼 역사의 교훈으로부터 가르침을 받지 못한 분야도 없다”는 것은 오늘날에도 사실인 것 같다.

금융위기 가능성 점점 높아지나

위기대응 기제는 점점 취약해져

안정적 재정·통화정책 유지하고

실용적 정책 방식 신뢰 확보해야

관세 충격으로 일시 조정되었던 미국 증시는 지난 4월 이후 40% 넘게 오르며 연일 신기록을 경신하고 있다. 금과 가상자산들의 가격도 천정부지다. 사람들은 이 뜨거운 머니 게임에서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 돈을 빌려서라도 투자를 늘리고 있다. 올해 미국 가계의 부채 노출도는 사상 최고치에 달했고, 마진대출 규모는 경제 규모 대비 최고수준에 근접하고 있다. 코스피도 올해 들어 60% 가까이 올라 세계 증시 상승률 최고를 기록하고 있고 서울의 집값 역시 가파르게 올랐다. 유동성은 전 세계에 넘쳐나고 있다.

20세기 초까지 미국의 주식시장은 주로 부유한 자산가들의 놀이터였다. 그러나 1920년대 들어 대중적 투자 열기가 번지면서 주가는 1921년부터 1929년 10월까지 4배 이상 오르다가 결국 대공황 폭락을 맞게 되었다. 당시 자동차, 전기 등 2차산업혁명 신기술에 의한 대규모 투자가 일어나고 미래 성장에 대한 낙관론이 팽배해지면서 대출증가, 주식투자 열기가 불며 거품이 발생했다. 오늘날에도 AI 디지털 낙관론이 주식시장의 열기를 주도하고 있다. AI는 분명 인쇄술의 발명 이후 인류 문명에 가장 큰 변화를 가져올 혁신이다. 그러나 AI 관련 기업들의 기대수익률이 지금 시장이 매기는 주가만큼이나 단기간에 실현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전력공급, 지적재산권, 도덕성 기준과 규제체계가 갖추어질 때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고 AI 디지털 혁명은 2차산업혁명에 비하면 고용이나 성장에 대한 파급효과가 그리 크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2008년 글로벌위기 이후 G20 국가들을 중심으로 대폭 강화되었던 금융감독규제는 트럼프 정부 들어 완화 움직임이 강해지고 있다. 2008년 위기는 시장과 감독 당국이 주택담보대출증권(MBS)과 이에 기초한 파생금융상품들에 내재한 위험도를 제대로 평가, 감독하지 못했기 때문에 일어났다. 그 결과 미국에서만 약 1000만 가족들이 살던 집을 잃었고, 가계순자산은 수개월 만에 당시 미국 총생산액의 3분의 2를 넘는 10조 달러 이상 줄었다. 한국도 1997년 외환위기를 겪으며 이듬해 경제가 -5.7% 성장을 기록했고, 당시 연간 국민총생산의 절반가량인 200조원 이상의 공적자금을 투입하게 되었다. 기업, 가계를 포함한 경제 전체가 감당해야 했던 손실은 이보다 훨씬 컸다. 경제위기는 시장의 가격 매김이 실물경제의 현실과 점점 괴리되면서 실물경제가 더 이상 이를 지탱하지 못하게 될 때 급격한 조정으로 일어나게 되는 것이다. 언제 무엇이 그것을 촉발할지는 예견하기 어렵다. 파티의 흥이 극에 달하기 전에 술병을 치우는 일이 결코 쉽지 않지만, 그것이 국가정책과 감독 당국이 해야 하는 역할이다.

위기를 예상하면 오지 않는다고 한다. 대비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향후 5년 내에 세계가 금융위기를 맞을 위험은 점점 커지고 있다. 미국증시의 거품증가, 미국과 달러화에 대한 신뢰 저하, 규제 틀 밖에서 거래가 급속히 확대되고 있는 디지털 코인과 가상자산은 그런 위험을 높이고 있다. 경제 불확실성 지수와 시장 변동성은 이미 크게 높아져 있다. 반면 이에 대응할 기제는 점점 취약해지고 있다. 세계정치 기류는 국제적 공조, 국제기구들의 역할을 축소했고, 각국의 정부부채 증가는 위기대응 능력을 떨어뜨려 왔다.

한국의 증시는 장기간 크게 위축되어 있어 지금의 상황이 거품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그러나 세계최고수준의 가계부채, 부동산 거품, 제2금융권의 부동산 PF대출 부실화 등 국내에도 취약한 부분이 많다. 외부로부터 닥치는 위기를 견딜 힘을 갖추지는 못했다. 지금은 안전장치를 강화하고 방화벽을 쌓아야 할 때이다. 재정, 통화정책 모두 안정적 기조가 최선이다. 위기의 최대 방지책은 시장과 해외투자자들의 신뢰를 확보하는 것이다. 현 정부의 실용적 정책 접근이 단순히 임기대응식 접근이 아니라 혁신체계와 상호일관성, 방향성을 갖춘 정책 접근이란 것을 보여줄 필요도 있다.

조윤제 연세대 경제대학원 특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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