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 2373명. 배를 타고 한 시간 가야 하는 섬에 63억원짜리 세계적인 미술 작품이 들어섰다. 지방소멸을 막기 위한 ‘1도(島) 1뮤지엄 프로젝트’의 하나로 전남 신안 도초도에 설치된 작품 ‘숨결의 지구’ 이야기다. ‘숨결의 지구’는 덴마크 출신 세계적인 설치미술 작가인 올라퍼 엘리아슨이 참여했다. 자연과 예술이 어우러지는 도초도에 직접 찾아갔다.
2024년 12월20일 오전 7시50분, 목포여객선터미널에서 도초화도선착장으로 향하는 쾌속선에 몸을 실었다. 쾌속선은 매일 오전 7시50분과 오후 2시30분 하루 두번 운행한다. 만약 차를 가지고 간다면 신안 암태남강여객터미널에서 도초도와 연결된 비금도 가산선착장으로 가도 좋다. 2시간이 걸리지만 1시간마다 배가 있어 원하는 시간대에 차를 싣고 방문할 수 있다.
차가운 바닷바람을 맞다보니 어느새 도초도에 다다른다. 도초도는 신안에서 네번째로 큰 섬으로 바다가 맑고 깨끗하기로 유명하다. 지금은 노인 인구가 40%를 넘는 인구감소지역으로 꼽힌다. 신안군은 이 현실을 극복하고자 2021년부터 섬마다 한가지 예술작품을 설치하는 ‘1도 1뮤지엄 프로젝트’를 추진해왔다. 군은 2026년까지 신안 15개 섬에 미술관·박물관 30곳을 조성할 계획이며, 도초도·비금도·안좌도·자은도엔 특별히 세계적인 작가의 작품을 설치한다.
도초도는 ‘퍼플섬’으로 유명한 반월도·박지도처럼 주요 건축물과 지붕을 푸른색으로 칠했다. 도초도 선착장엔 ‘숨결의 지구’가 있는 도초수국공원으로 가는 공영버스가 다닌다. 10분이면 도착한다. 천천히 걸으면 약 40분이 걸린다. 수국공원 입구에 서면 완만한 산책길이 펼쳐져 있다. 일곱가지 가로수길과 수국으로 꾸며진 이곳은 30분 정도면 한 바퀴를 돌 수 있다. 입구에서 5분가량 걸으면 ‘신안1004카페’가 나온다. ‘숨결의 지구’ 관람권을 구매하고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장소다. ‘숨결의 지구’를 포함해 이곳 전체를 ‘대지의 미술관’이라 부른다. 마치 미술관 같아서다.
‘숨결의 지구’는 밖에서 보면 직경 8m의 돔 모양 구조물이다. 2021년부터 짓기 시작해 2024년 11월 완공됐으며 같은 달 25일 일반에 공개됐다. 왼편으로 돌아 내려가면 작품 안으로 들어가는 독특한 터널이 나온다. 터널에 들어가자 주변은 보이지 않고 앞뒤 빛만 느껴져 눈과 귀의 감각이 곤두선다. 터널 끝에 도달하면 곧 스물다섯가지 색깔 타일이 반짝이며 반긴다. 용암석으로 만든 1200개 타일은 지구를 형상화한 것으로, 보는 것 자체로 신비롭게 느껴진다. 천장은 뚫려 있어 햇빛이 쏟아지는데 마치 작품에 안겨 있는 듯하다.
올라퍼 엘리아슨은 작가의 말을 통해 “도초도는 먼 옛날 화산 활동으로 남겨진 섬”이라며 “‘숨결의 지구’는 땅의 소리를 듣고 자연 앞에 겸손해지는 작품”이라고 밝혔다.
‘숨결의 지구’는 여러 번 관람할 때 진가가 드러난다고 한다. 천장은 삼각 격자가 쌓인 틀이 모두 뚫려 있다. 위를 올려다보면 파란 하늘이나 붉은 노을 빛깔이 그대로 비쳐 보이고 바람소리나 생물의 울음소리도 작품 내부에 울린다. 그야말로 신안의 자연을 온전히 느낄 수 있다.
섬 주민이자 영어 안내를 맡은 결혼이민여성인 알마에이 발바로나씨는 “들어올 때마다 행복·평온·여운 같은 다채로운 느낌을 주는 작품”이라며 “서울이나 대구에서 새벽부터 보러 오는 사람들도 있다”고 말했다.
곧 다른 섬에 세워질 다른 미술관도 추천한다. 신안 안좌도 신촌저수지엔 일본 야나기 유키노리 작가 작품이 올해 상반기에 공개된다. 커다란 육면체의 전시실이 물 위에 떠 있는 ‘플로팅 뮤지엄’이 주제다. 올해 하반기에는 푸른 바다가 아름다운 비금도에 영국의 철 조각 거장인 안토니 곰리가 참여하는 ‘바다의 미술관’이 문을 연다. 이곳엔 ‘엘리멘탈’이라는 작품이 설치되는데 계획에 따르면 38개 육면체가 밀물 때는 물속에 잠겨 일부만 보이고, 물이 빠져나가면 ‘웅크려 휴식을 취하는 인간’을 표현한 모습이 온전하게 드러난다. 자은도엔 바다 위를 걸으며 갯벌과 바다 풍광을 볼 수 있는 ‘무한의 다리’가 있다. 이와 연계해 스위스 건축 거장 마리오 보타가 참여하는 ‘인피니또 뮤지엄’을 2026년 상반기 공개할 예정이다.
신안=정성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