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한 해 농사를 좌우할 수 있는 외국인 선수, 그 중에서도 투수 영입은 10개 구단 모두가 심혈을 기울이는 작업이다. 하지만 확실한 투수를 건지는 것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LG는 지난 시즌 13승을 거둔 왼손 투수 디트릭 엔스와 결별했다. 그리고 새 외국인 투수 요니 치리노스와 27일 총액 100만 달러(계약금 20만 달러·연봉 80만 달러)에 입단 계약을 합의했다. 인센티브 하나 없는 풀 개런티다.
베네수엘라 태생의 치리노스는 지금까지 KBO리그를 밟았던 외국인 투수들과 비교해 경력 면에서 하나도 밀릴 것이 없는, 어쩌면 더 좋은 투수다. 2013년 탬파베이 레이스에 입단해 2018년 메이저리그에 데뷔했다. 이후 애틀랜타 브레이브스를 거쳐 올해는 마이애미 말린스에서 뛰었다. 올해 6경기에 선발 등판해 30이닝을 소화하면서 승리 없이 2패만을 기록했고, 평균자책점은 6.30에 그쳤다.
메이저리그 통산 75경기에서 356.1이닝을 던져 20승17패 평균자책점 4.22를 기록했다. 트리플A에서도 62경기에 등판해 22승14패 평균자책점 3.43으로 좋았다.
경력만 놓고 보면 밀릴 것 없는 선수다. 다만 그동안 수많은 메이저리그 선수들이 KBO리그를 거쳐갔으나, 그중 성공했다고 할 수 있는 경우가 그리 많지는 않다. KBO리그에 데뷔할 치리노스에 대한 지나친 ‘낙관론’은 금물이다.
엔스는 지난해 다승 공동 3위, 외국인 투수 중에서는 1위였다. 하지만 팀의 ‘에이스’로써는 부족한 부분이 있었다. 우선 평균자책점이 4.19로, 2점대에서 3점대를 기록한 타구단 외국인 투수들과 비교할 때 위력에서 밀렸다. 여기에 30경기에 등판했으나 이닝은 167.2이닝에 그쳤다. 전체 7위에 해당했지만, 경기당 평균 6이닝을 채 소화하지 못한 것은 에이스로 분명히 아쉬운 부분이었다.
마땅한 결정구가 없다보니 카운트를 유리하게 가져가고도 쉽게 마무리짓지 못하는 경우가 잦았다. 투구수는 늘어났고, 이는 이닝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LG는 치리노스에 대해 “낮은 코스의 제구력이 좋고 싱커와 스플리터가 뛰어난 땅볼 유도형 투수다. 효율적인 투구수 관리가 가능해 많은 이닝을 책임져줄 것이라 기대한다”고 영입 이유를 밝혔다. 효율적인 투구수와 많은 이닝은 엔스가 하지 못했던 것들이다.
치리노스는 포심, 싱커, 스플리터, 슬라이더의 4가지 구종을 주로 구사한다. 이중 포심의 비중이 가장 낮다. 전형적인 싱커 투수다. 올 시즌 싱커의 평균 구속은 92.7마일(약 149.2㎞)로 메이저리그 기준에서 빠른 것은 아니지만, KBO리그에서는 충분히 통할 수 있다. 메이저리그에서 싱커의 유행이 지나간지 오래이긴 하지만 KBO리그와는 또 다른 이야기다.
다만 불안한 부분은, 올해 싱커의 피안타율이 무려 0.522나 됐다는 것이다. 땅볼 투수는 강속구 투수에 비해 피안타율이 높은 경우가 많다. 팀 내야 수비의 안정성, 그라운드 상태 등 여러가지 변수가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걸 감안하다고 하더라도 너무 높다. 만약 이게 일시적인 문제로, 시즌을 앞두고 수정이 가능한 부분이라면 충분히 위력을 발휘할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하면 LG의 플랜이 또 꼬일 수 있다.
LG는 앞서 KIA에서 자유계약선수(FA)로 풀린 불펜 투수 장현식에게 옵션 없는 4년 52억원 계약을 안겼다. 장현식의 영입으로 2023년 한국시리즈 우승의 힘이었던 LG 불펜은 다시 단단해질 수 있는 원동력을 얻었다. 이제는 선발 투수 쪽에 눈을 돌리고 있고, 나름대로의 합당한 이유와 함께 보강에 성공했다. 아직 5선발 한 자리가 남았지만 LG가 대처 못할 부분은 아니다.
LG는 이번 시즌 중반 오랫동안 에이스를 맡아왔던 케이시 켈리와 작별하며 그와의 ‘6년 동행’을 끝났다. 그리고 올해 치리노스와 엘리어에저 에르난데스로 새 외국인 투수진을 꾸렸다. 켈리 시대가 끝나고 새롭게 다가오는 시대에서, 치리노스가 새로운 에이스가 되어줄 수 있을지 관심이 집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