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는 사랑이 운명적인 만남에서 시작되고, 극적인 사건으로 끝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진짜 사랑은 지극히 평범해서 아침 출근길 커피를 건네는 손길에서, 피곤한 저녁 “오늘 어땠어?”라는 일상적인 물음에서 자란다.
관계도 마찬가지다. 진정한 관계는 평범한 순간에 만들어진다. 눈에 띄지 않는 사소한 배려가 진짜 관계를 만들고 지켜간다. 관계를 무너뜨리는 것 역시 작은 무관심이 반복적으로 일어나면서 시작된다. 무심히 던진 날 선 말 한마디, 상대 이야기에 집중하지 않는 시선, 지켜지지 않은 작은 약속들. 이런 것들이 쌓여 관계에 보이지 않는 균열을 만든다. 마치 작은 물방울이 바위틈에 스며들어 결국 바위를 쪼개버리는 것처럼 말이다.
물론 거창한 선물이나 특별한 이벤트가 관계에 활력을 더해주는 건 틀림없다. 하지만 매일 반복되는 작은 배려, 눈에 띄지 않는 세심함, 평범해 보이는 예의가 관계를 든든히 쌓는 진짜 기초가 된다. 그렇다면 관계를 살리는 사소한 습관, 작은 예의는 어떤 것이 있을까.
첫째, 상대에 대한 배려다. 사람은 작은 배려에서 진심을 읽는다. 승강기 문을 잡고 기다려주는 손길, 무거운 짐을 들어주는 마음, 우산을 기울여 받쳐주는 세심함, 바쁠 때 “뭐 필요한 거 없어?”, “내가 도울 일 있으면 언제든 말해.”라는 짧은 말 한마디…. 이런 작은 행동이 상대방 마음의 문을 연다. 매일 아침 간신히 일어나 허겁지겁 세수하고 나왔을 때 가지런히 개 놓은 속옷과 양말을 보면 조금이라도 내 일손을 덜어주려는 아내의 마음이 느껴진다.
둘째, 진심을 담은 말이다. 모든 관계는 일상 속에서 주고받는 진심이 담긴 말 한마디에 의해 형성되고 유지된다. ‘괜찮아’, ‘고마워’, ‘미안해’, ‘잘할게’, ‘멋있다’, ‘대단해’, ‘수고했어’, ‘힘들지?’, ‘너를 믿어’와 같은 말이다. 나는 아내에게 듣는 말 중 ‘다음에 또 그럴 거야?’가 가장 반갑다. 내가 뭔가 잘못했을 때 실컷 혼내고 난 후 어느 정도 직성이 풀렸을 때 아내가 하는 말이기 때문이다. 아내는 자신이 맞벌이해서 집안 경제를 도왔기 때문에 내가 직장을 이곳저곳 마음껏 옮겨 다닐 수 있었다고 생색을 낸다. 이에 대해 나는 “그게 언제 적 일인데 아직까지 유세냐”고 퉁명스럽게 말하지만, 아내는 안다. 내 말이 고마움의 다른 표현이란 것을.
‘긍정 심리학’의 창시자인 미국의 마틴 셀리그만(Martin Seligman) 교수 연구팀은 참가자들에게 자신에게 큰 도움을 주었지만, 제대로 감사 표시를 하지 못했던 사람에게 진심이 담긴 감사 편지를 쓰고 이를 직접 전달하도록 했는데, 이 단 한 번의 경험만으로도 감사 편지를 쓴 사람의 행복도가 크게 상승하는 효과가 나타났다. 이처럼 진심을 담은 말 한마디는 관계의 질과 개인의 행복지수를 끌어올리는 중요한 도구다.
셋째, 시간을 내 들어주는 것이다. 경청은 단순히 상대의 말을 그냥 듣는 게 아니다. 존재 자체를 존중한다는 메시지를 전하는 행위다. 누군가 내 이야기를 끝까지 듣고, 눈을 마주치며 고개를 끄덕여줄 때 우리는 ‘내가 의미 있는 사람이구나’, ‘내 이야기가 가치 있구나’라고 확신한다. ‘그랬구나’, ‘힘들었겠다’라는 작은 반응만으로도 말하는 사람은 큰 위로를 받는다.
하지만 남의 말을 듣는 건 생각만큼 쉽지 않다. 시간을 내야 하고 상대에게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아내도 처음에는 내 말을 그다지 경청하지 않았다. 말이 좀 길어질라치면 ‘그만해, 됐어’, ‘나도 알아’라고 말하기 일쑤였다. 그런데 내 말이 글이 되고 책이 돼서 돈으로 돌아온다는 걸 알아차린 후부터는 경청하기 시작했다. 나 역시 이전에는 아내가 말할 때 딴생각을 다반사로 했으나 이제는 그렇지 않다. 경청의 중요성을 알아서다.

경청은 관계를 변화시키는 마법이다. 누군가 내 이야기를 진심으로 들어준다고 느낄 때, 우리는 그 사람에게 깊은 신뢰를 갖게 된다. 이런 존중은 상호적이어서 내가 존중하며 들어주면, 상대도 나를 그렇게 대한다. 이제 아내와 나는 침묵조차 견딜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상대가 말을 멈췄을 때 성급하게 끼어들거나 조언하려 하지 않고 잠시 기다린다. 때로는 그 침묵 속에서 더 깊은 이야기가 나오고, 상대가 자신의 마음을 정리할 시간을 갖는다.
상대에 대한 기본적인 존중
넷째, 약속시간을 지키는 것이다. ‘10분 정도는 늦어도 괜찮겠지’, ‘5분쯤이야 어떻겠어?’ 우리는 종종 친한 사이니까, 가족이니까, 많이 늦지 않았으니까, 상대방이 이해해줄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런 사소한 착각이 관계에 보이지 않는 균열을 만든다.
시간은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주어진 유일한 자원이다. 그리고 누군가와 약속한 시간은 그 사람이 나를 위해 특별히 비워둔 소중한 시간이다. 늘 늦는 사람을 떠올려보자. 약속할 때마다 ‘또 늦겠지’라는 생각에 스트레스를 받고, 실제로 늦으면 ‘역시나’라며 실망한다. 이런 경험이 반복되면 신뢰는 점점 무너질 수밖에 없다. 반면 항상 약속시간을 정확히 지키거나 미리 나와서 기다려주는 사람에게는 자연스럽게 믿음이 쌓인다.
시간을 통해 관계를 키우는 방법이 있다. 약속시간보다 조금 일찍 도착해서 마음의 여유를 갖고 상대를 맞는 것이다. 예상치 못한 일로 늦을 때는 확실해지는 순간 바로 연락한다. 늦었을 때는 즉시 사과하고, 재발 방지를 위한 노력을 보여준다. 시간을 존중하는 것은 결국 사람을 존중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존중 위에 세워진 관계는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단단해진다.
다섯째, 인사를 잘하는 것이다. 밝은 인사는 상대를 존중한다는 기본적인 표현이다. 인사성이 밝아야 한다. 인사성이 바르다는 소리를 듣는 건 어렵지 않다. 인사를 먼저 건네면 된다. 출근길 승강기 안이나 직장 복도에서, 서부 활극 주인공처럼 상대가 인사하기 전에 선수를 치면 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람을 잘 알아봐야 한다. 인사는 단지 인사말을 건네는 데 그치지 않는다. 아는 체를 하는 일이다. ‘아, 누구시죠’ 하며 알아봐 주는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가장 귀하다. 누군가를 좋아하고 남을 높이는 심리의 기저에는 스스로 존중받고 싶은 마음이 있다. ‘내가 저 사람을 안다’, ‘저 사람을 좋아한다’라는 생각이 일방적이라는 사실을 확인하면 배신감을 느끼게 된다.
인사를 잘 받아주는 것도 중요하다. 누군가 인사했을 때 건성으로 받지 않고, ‘아 누구구나’ 이렇게 이름을 불러주거나, 시간이 없으면 눈이라도 마주쳐야 한다. 인사성이 좋다는 것은 인사를 잘한다는 뜻과 함께 인사를 잘 받는다는 의미도 포함돼 있다. 인사를 잘 안 받는 사람일수록 남이 자신에게 얼마나 인사를 잘하는지에 민감하다. 직장 초년병 시절, 인사를 해도 잘 안 받는 상사가 있었다. 인사를 해도 안 받으니 나도 언제부턴가 그 사람을 보면 자연스럽게 고개를 돌리게 됐다. 그런데 그게 패착이었다. 그분이 ‘누구는 인사도 안 한다’라며 동네방네 씹고 다녔다. 그런 분은 말발도 세서 파급효과가 컸다. 누군가 내게 와서 “너 그 사람에게 큰 잘못한 것 있어?”라고 물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우리는 관계의 비밀을 거창한 곳에서 찾으려 한다. 답은 의외로 가까운 데 있다. 상대의 시간을 존중하고 감정에 공감하며 진심을 담아 소통하려는 태도에 그 답이 있다. 오늘부터 작은 습관 하나씩 시작해보자. 그 작은 변화가 모여서 관계라는 이름의 아름다운 기적을 만들어낼 것이다. 벽돌 하나하나가 튼튼한 집을 만들듯이, 작은 예의 하나하나가 평생 갈 소중한 인연을 쌓아간다.
<강원국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