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수필] 바람 앞의 꽃잎처럼

2025-10-09

심란한 마음은 언제나 어딘가를 향하게 한다. 무엇이 날 흔들었는지 분명치 않지만, 무던하게 넘기고 감당하기엔 내가 너무 날카로워져 있었다.

조용히 길을 나섰다. 아무 계획 없이, 다만 걷고 싶어서. 발길이 닿은 곳은 소양의 송광사. 문득 떠오른 그곳의 벚꽃길이 나를 이끌었다.

천천히 걸었다. 어깨를 스치는 바람, 머리 위로 내려앉는 꽃잎들. 그건 꽃비였다. 나에겐 그저 조용한 위안일지 몰라도, 꽃잎에는 삶의 끝자락을 맡긴 바람일 것이다. 바람 한 자락에 운명을 실은 그들의 떨어짐은, 찬란한 죽음이자 마지막 눈물이다.

“나는 지금 어디쯤 와 있으며 내 마음은 어디를 향하는 걸까?”

꽃잎은 저마다의 다른 궤적을 그리며 흩어진다. 누구는 바람 속을 유영하듯 길게 선회하고 누군가는 솟구쳐 빙빙 맴돌다 사라지고 또 어떤 이는 힘없이 그저 땅바닥으로 곤두박질친다.

그 흩날림 속에서 수많은 얼굴이 떠올랐다. 함께 교단을 지키던 동료들, 언제나 이름만 부르면 돌아보던 제자들, 그리고 가끔 내 가슴을 뭉클하게 만들었던 선한 인연들. 그들은 어떤 바람 속에 있을까.

때로는 짧은 인연이 깊이 박히고, 정작 오래도록 곁에 있었어도 애써 떠올리려니 희미한 잔상만 아련한 이도 있다. 잊고 지낸 이름들을 꽃잎 하나하나에 담는데 오늘 학교에서 있었던 일이 다시 떠올라 가슴이 저린다.

스무 해 넘게 지켜온 교육자로서 신념이 학부모의 몰이해 앞에서 맥없이 무너져 내릴 수밖에 없는 현실과 제도가 너무 슬프다. 교감이라는 자리가 항상 부담스럽기도 하다.

교감이라는 자리는 늘 어정쩡하다. 교사이되 교사가 아니고, 행정가이되 행정가도 아니다. 교사의 언어를 알면서도, 때로는 관리자다운 단호함도 가져야 한다. 교장, 수십 명의 동료 교사들, 수백 명의 학부모와 아이들 사이에서 나는 하루에도 몇 번씩 균형을 잡으려 안간힘을 쓴다. 어느 땐 충실한 중재자가 되어야 하고, 때론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는 완충역이 되어야 한다. 제일 어려운 것은, 늘 누군가를 위해 자신을 비워야 한다는 사실이다.

떨어지는 꽃잎을 바라보며 다시 묻는다.

“나는 이 자리에서 얼마나 의미 있는 존재일까?”

생각해 보면, 꽃을 피운 것도, 흔들어 흩트리는 것도 결국 바람이다. 시련처럼 느껴졌던 학부모 민원, 억울했던 오해, 설명되지 못한 내 진심도 어쩌면 나를 더 단단히 빚어내려는 바람일지 모른다. 인생의 바람은 혹독하기도, 따뜻하기도 하지만, 멈추지 않게 하는 원동력이기도 하다. 그 바람이 있었기에 나는 멈추지 않고 늘 교단을 지킬 수 있었을 것이다.

벚꽃은 떨어지며 완성된다는 말이 있다. 피어나는 순간의 화려함도 아름답지만, 진정한 감동은, 꽃잎이 허공에 자신을 맡기는 그 순간에 있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다. 찬란한 성공보다, 흔들리고 부딪히면서도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는 그 과정이 진짜 삶의 모습 아닐까.

바람에 흔들린 시간은 무의미하거나 헛되지 않다. 그 흔들림 속에서 삶의 뿌리는 더 깊어진다. 바람은 경륜인 것이다. 오늘, 이 길 위에서 나는 그 사실을 다시 깨닫는다.

벚꽃길을 걸으며 많은 얼굴이 스쳐 갔고, 많은 일이 떠올랐다. 아픈 기억도, 그리운 순간도, 이제는 놓아야 할 것들도. 그 모든 흔들림을 안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준비를 한다.

내일은 또 다른 바람이 불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 바람을 맞으며 자신을 지탱하고 있으리라.

△ 윤가원 수필가는 현재 전주 중앙여고 교감으로 재직하고 있는 교육자이다. 올해 전북특별자치도문인협회의 《전북문단》 신인상으로 등단하여 문단의 기대와 촉망을 받는 신진 작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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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가원 수필가

기고 gigo@jj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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