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떠나 타국서 생활하는 주인공들
불확실성이 야기한 불안에 전전긍긍
소설에서의 이민은 ‘정착’과 엇갈려
이들이 찾는 건 ‘아름답고 강한 혼자’
형국은 늦은 밤 홀로 족발에 소주를 마시는 아저씨다. 조금 특이하다면 그가 캐나다에 있다는 것뿐. 딸과 함께 캐나다로 이민 온 그는 목수로 일한다. “너무 사소해서 눈치챘다는 사실조차 자존심” 상하는 차별을 숱하게 참아내며 그는 교육청에 취직해 정규직 목수가 된다. 그가 새로운 세상의 경계에서 줄다리기하던 사이 아이는 자랐다. “아빠가 그러니까 내가 남의 눈치나 보는 사람으로 자랐어”라며 그를 원망하는 딸은 아버지에게서 점점 더 멀리 떠나 독립하려 한다.
소설은 형국의 딸 지나가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직장을 구해 이사를 가게 되면서 시작한다. 형국은 딸의 이삿짐을 옮겨주기 위해 직장에 휴가를 내고 차를 몰아 캐나다에서 샌프란시스코까지 떠난다. 한때 딸과 함께 로드 트립을 하던 추억이 스쳐간다. 아내를 잃고 캐나다에 정착해 “직장을 바꿔가며 여섯 번의 취업 비자를 신청했고, 비자를 받지 못하면 캐나다를 떠나야 했으므로 나와 지나의 인생 전체를 판돈으로 놓고 게임을 하는 기분이 되곤” 했던 과거는 이제 지난 얘기다.
그러나 불안과 걱정은 사라지지 않는다. 딸의 문신을 보고 형국은 “네가 이상한 애로 보일까 봐 너무 걱정돼”라고 말하지만, 그런 걱정은 딸의 마음을 더 멀리 떠나게 할 뿐이다. 휴가 기간 캐나다에 두고 온 것들에 대해서도 생각한다. 얼마 전 회사에 들어온 후배이자 성소수자인 베리다. 직장 동료들은 논바이너리로 자신을 정체화하는 베리에게 “까다로운 데는 다 이유가 있었다”며 차별한다.

파트타임 여행자
반수연 지음
문학동네 | 276쪽 | 1만7000원
소설집 <파트타임 여행자>의 수록작 ‘조각들’의 내용이다. 한국 이민자 서사를 밑바탕에 두고 진행되는 이야기는 세대와 계급, 젠더 등 다양한 경계로 인해 주류 사회에 속하지 못하는 이들의 모습을 중층적으로 그린다. 지난해 김승옥문학상 우수상을 받았다.
7편의 단편이 실린 책에는 이민자 혹은 여행자 등 경계를 오가는 이들에 대한 이야기가 담겼다. 통영 출신 저자 반수연은 서른 즈음 캐나다로 이주한 이민자이기도 하다. 2005년 등단해 그간 네 차례 재외동포문학상을 받았다.
소설집에서 등장인물들은 멀리서 떠나왔지만 어디론가 다시 여행을 떠난다. 표제작 ‘파트타임 여행자’의 주인공 민은 예순일곱 살의 한국 출신 이민자다. 그는 미국의 국립공원들로 트레일 여행을 떠난다. 새로운 곳에서 살아보고 싶다는 남편을 따라 아이 둘을 데리고 미국으로 왔지만, 폭력적인 남편은 가산을 탕진하고 혼자 한국으로 떠나버린다. 홀로 아이들을 키워냈으나 성인이 된 아이들은 한국으로 떠나버린다. 여행을 하며 민은 스스로에게 묻는다. “이미 너무 오래 혼자였는데, 모두 떠나버린 빈집을 두고 나는 왜 떠나왔을까.”
소설에서 이민자의 삶은 ‘정착’과 연결되지 않는 듯하다. 저자는 작가의 말에서 소설집에 여행하는 이들의 이야기를 주로 묶은 것에 대해 “어느 순간부터 이국의 이방인이라는 이름이 너무 서글퍼서 나를 여행자라고 생각하기로 한 것 같다”며 “사는 내내 불확실성이 야기한 불안에 전전긍긍했는데, 그게 싫어서 불확실성이 미덕인 ‘여행’이라는 이름으로 삶을 부르기로 했는지도 모른다”고 했다.
이민자 서사이나 모국에 대한 어떤 특별한 감정이 서사의 전반을 채우는 소설은 아니다. 주인공들은 그저 자신의 현재를 감각하며 살아가는 이들이다. 그 과정에서 자신이 발 딛고 있는 땅은 선도 악도 아니다. 소설집의 첫 작품 ‘설탕 공장이 있던 자리’는 동두천 기지촌 여성이었다가 남편 조를 따라 미국으로 온 여성 애나가 주인공이다. 폭력적인 남편은 아내를 때리고도 경찰에게 “저 여자는 한국에서 온 창녀이며, 돈을 뜯어내려고 거짓말을 한다”고 말한다. 여성 홈리스가 된 애나에게 한국도 미국도 그리움의 땅이 되기는 어렵다.
결국 등장인물들이 원하는 것은 어딘가에 소속되고 싶은 감정이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파트타임 여행자’에서 민은 여행의 끝에 자신이 원하던 것은 “아름답고 강한 혼자”라는 것을 기억한다. ‘조각들’에서 형국은 여전히 지나와 베리를 이해하지 못하지만 “알지 못하는 것들을 위해 공간을 한 뼘쯤 벌려”두겠다고 마음먹는다. 이외에도 양로원에 살며 노년의 연애를 꿈꾸는 여성의 이야기를 담은 ‘춤을 춰도 될까요’ 등 스스로의 세계를 만들어가려는 이들이 가진 어떤 힘이 소설집을 채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