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씨(30)는 지난 3월까지 18개월 동안 한 업장에서 근무하며 총 4번의 계약서를 썼다. 당시 생계 문제 때문에 계약 연장이 절실했던 A씨는 3개월, 6개월에 한 번씩 다가왔던 계약 만료일이 가장 두려웠다고 한다. 금요일 저녁이나 토요일 오후처럼 바쁜 시간대 근무를 매번 대신 해달라는 사수(선임자)의 요청이 부당하다고 느껴져도 쉽게 거절할 수 없었다. 추가 근무 수당을 받지 못해도, 매장이 바쁠 때는 퇴근 후에도 자진해서 남아 한두시간씩 추가 근무를 했다. 그는 “계약서를 다시 쓰는 달에는 계약 연장이 안 돼서 새 직장을 구하려 헤매는 악몽을 매일같이 꿨다”며 “피가 마르는 기분이었다”고 말했다.

최근 A씨 사례처럼 비정규직을 대상으로 3개월·6개월 등 초단기 계약을 반복하는 ‘쪼개기 계약’이 도마 위에 올랐다. 유명 베이커리 런던베이글뮤지엄(런베뮤)에서 근무하던 20대 직원 정모씨의 과로사 의혹이 불거졌고, 그 배경에 런베뮤의 이같은 단기 근로 계약이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면서다. 유족 측은 정씨가 런베뮤에서 일하는 14개월 동안 3개 지점을 옮겨 다니며 3, 4, 7개월 단위로 계약을 했다고 주장한 바 있다. 런베뮤는 이에 대해 “승진에 따른 급여 인상 및 지점 간 이동으로 인한 배경”이라고 해명했다.
"불법 아니지만 고용 불안 야기"
그러나 권영국 정의당 대표는 지난 3일 성명을 내고 “쪼개기 계약은 현행법상 불법은 아닐지라도 ‘불법에 근접한 편법’이며, 만성적인 고용 불안을 야기해 장시간 노동 분위기나 착취 구조를 만들어낸다”고 비판했다. 이어 “이미 쿠팡 물류센터에서도 3·9·12개월 단위로 근로계약을 쪼개가며 갱신하는 방식을 채택해 왔고, 노동자들은 언제든 일자리를 잃을 수 있는 불안감에 자신을 ‘부품’이나 ‘파리목숨’에 비유하며 절규했다”고 지적했다.
단기 계약을 반복하는 처지에 몰린 사람들은 부당해고 등에 대한 공포에 시달릴 뿐 아니라, 갑질이나 직장 내 괴롭힘에도 다 쉽게 노출된다. 김기홍 노무법인 돌꽃 노무사는 “재계약을 위해서는 부당한 대우를 참고 일할 수밖에 없어, 상사에게 욕설을 듣거나 초과 근무를 하고도 수당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그러나 사용자들은 고용 유연성 등을 이유로 ‘쪼개기 계약’을 선호하고 있고, 특히 비정규직 비중이 높은 업계에선 관행처럼 계속되고 있다. 계약 기간이 짧으면 근무 기간에 따른 사용자 의무를 피할 수 있다. 근로기준법상 3개월 미만 근로자의 경우에는 해고 30일 전 예고하지 않았을 경우 30일분의 통상임금을 지급해야 하는 ‘해고예고수당’에 해당하지 않아 자유롭게 해고를 통보할 수도 있다. 반대로 근무 기간 1년부터는 퇴직금 및 연차 지급 의무가 생기고, 2년이 넘을 경우에는 기간제법상 자동무기계약직 전환 의무가 부여된다.
공공기관도 쪼개기 계약 관행
기업뿐 아니라 공공기관에서도 쪼개기 계약이 관행처럼 이뤄지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지난 6일 광주시 행정사무감사장에서 채은지 광주시의원은 광주시 산하 공공기관 직원 중 9개월과 11개월 계약직이 각각 171명, 132명에 이른다고 지적했다. 채 의원은 “9개월 계약은 상시업무를 비정규직으로 운용하기 위한 꼼수, 11개월은 퇴직금 지급 의무를 피하려는 꼼수”라며 “세금으로 운영되는 공공기관에서 꼼수 계약을 해서야 되겠느냐, 실망스럽다”고 말했다. 한국노동연구원 보고서에 따르면 공기업의 계약 1년 후 정규직 전환율은 2009년 21.7%에서 2021년 14.3%로 오히려 감소했다.

시민단체와 정치권 등에선 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정의당은 지난 6일 기자회견을 열고 ‘초단기계약방지법’ 제정과 고용노동법상 상시 지속 업무 정규직 고용 원칙 명시 등을 제안했다. 초단기계약방지법은 근로계약갱신청구권 및 사용자의 자의적 계약 해지 방지 법제화를 골자로 한다. 옥동진 노무법인 늘품 노무사는 “현실적으로는 행정 감독을 강화하는 것이 필요하다”며 “실제 쪼개서 계약할 필요가 있는 일자리인지, 상시 지속 일자리인지 노동청에서 근로 감독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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