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사회적 약자의 상징이 된 ‘심청’의 현대적 해석…판소리 시어터 <심청>

2025-09-04

연출가 요나 김은 판소리 ‘심청가’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심청> 연출의 글에서 “딸이란 존재는 공동체 내에서 가장 아프고 힘든 부분을 감당하다가 쉽게 버려지거나 죽어가야 했던 가장 힘없고 이름없는 모든 약자들의 다른 이름”이라고 썼다. 무대에서 만난 <심청>은 아버지를 위해 자신을 희생한 ‘효’의 상징이었던 심청을 가부장제 폭력의 희생자이면서 그러한 억압의 구조에 균열을 내는 존재로 완전히 탈바꿈시켰다.

지난 3일부터 오는 6일까지 국립극장에서 공연되는 판소리 시어터<심청>은 지난달 전주세계소리축제에서 공개됐을 당시부터 ‘심청가’ 대목들을 토씨 그대로 사용하면서도 ‘심청가’를 전복해버리는 파격적인 극본과 연출로 화제가 됐다. 유럽에서 활발하게 오페라 연출가로 활동하는 요나 김은 대목들의 맥락과 전개를 비틀어서 기존 권선징악의 틀을 넘어서는 새로운 서사로 확장했다. 라이브 카메라를 동시에 사용하는 무대와 영상의 복합 구조는 인물들의 표정과 장면을 세밀하게 살필 수 있어 치밀한 심리극을 보는 것처럼 느껴졌다.

막이 오르기도 전에 어린 소녀 약 60명이 깔깔대며 무대 앞까지 몰려왔다가 나가면서 극이 시작된다. 작품에서 눈에 띄는 부분은 심청을 ‘세상의 모든 딸들’, 즉 보편적인 약자들의 대변자로 끌어올렸다는 점이다. 그리스 비극의 안티고네, 엘렉트라처럼 가족을 위한 희생을 감내하면서도 부당한 현실에 맞서는 인물이 된 것이다.

용왕과 만나 심황후가 되는 ‘용궁 판타지’는 아예 배제했다. 여성주의적 시각에서 심청이 주변의 무관심과 학대 속에 비극에 내몰리는 모습을 처절하게 그려낸다. 여자만 밝히는 지질한 놈팡이인 심봉사는 울고 보채는 젖먹이 심청을 패대기친다. 심청도 온순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공양미 삼백석을 약조한 아버지의 목을 조르며 미움을 드러낸다. 부녀상봉 대목에서 심청은 “아이고 아버지 여태 눈을 못 뜨셨소?”라고 하는데, 정신 못 차린 아버지에 대한 질타인 셈이다. ‘세상의 모든 맹인’들이 “끔적 끔적 끔적…”을 합창으로 외치는 섬뜩한 장면은 눈먼 세상에 대한 통렬한 각성의 촉구처럼 느껴졌다.

관객의 위화감과 불편함을 극대화하는 연출은 교복 입은 15세 소녀 심청의 수난이다. 심청에게 성폭력 피해자의 이미지를 덧씌우는 모습이 반복된다. 원작에서 장승상댁이 효심 때문에 자신을 파는 심청의 미모와 덕성을 그림으로 남기는 장면이 <심청>에선 아들이 심청의 몸에 올라타 사진으로 찍은 ‘피해자의 초상’으로 바뀐다. 마침내 인당수에 던져지는 장면에서 남경 선인들이 심청을 둘러싸고 있다가 흩어지면 속옷만 입은 심청이 등장하는데 허벅지 위로는 붉은 피가 흐르고 있다. 무대 위에는 붉은 페인트로 칠한 ‘SHE GOT LOVE(그녀는 사랑받았다)’라는 문구가 선명하다.

이러한 비극의 원흉인 심봉사가 심청을 밧줄로 얽어매는 모습에서, 심청의 발목을 밧줄로 묶는 선인들의 모습에서 문득 최승자의 시가 떠오르기도 했다. “내 인생의 꽁무니를 붙잡고 뒤에서 신나게 흔들어대는 모든 아버지들아 내가 이 세상에 소풍 나온 강아지 새끼인 줄 아느냐(다시 태어나기 위하여 中).”

이야기는 고발에서 그치지 않는다. 심청과 노파 심청, 어린 심청, 젊은 심청이 등장해 심청의 비극을 입체적으로 조명하는 동시에 그러한 현실을 넘어서는 연대와 가능성을 암시한다. 심청가의 눈대목인 ‘범피중류(배가 물 한가운데로 떠간다)’가 심청의 희생에 대한 ‘진혼곡’처럼 마음을 두드렸다. 연출은 말한다. “진혼곡이 끝나면 그녀를 되살려 미지의 운명을 향해 혼자 담담히 뛰어나가게 해야한다.”

도대체 어떻게 끝날까 싶던 <심청>의 마무리 역시 도발적이다. 무대에는 허망한 표정으로 심봉사가 쓰러져있다. 상처투성이 얼굴로 등장한 심청은 담배 한대를 맛있게 피운 뒤 극장 밖으로 유유히 걸어나간다. ‘효녀 심청’이라는 텍스트에 더이상 갇히지 않겠다는 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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